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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04-06-03 12:00:38, Hit : 3303, Vote : 596
 (1)천사보다 뛰어난 예수


(1)천사보다 뛰어난 예수  
히브리서 1장 1-14                     (2004. 5. 5 수요예배)
  오늘부터 히브리서를 강해하는데 히브리서를 이해 하기 전에 우리는 히브리서를 읽었던 사람들이 어떤 형편에 있었던 사람들이었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한 역사적 상황은 알 수 있지만 몇몇의 본문을 들어서 그들의 정황이 어떤지 알 수 있다.
   히브리서는 이미 믿고 있는 자들에게 쓰여진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적으로 권면의 말씀을 한다. 흔들리지 말자 박해 앞에서 믿음을 잃지 말라고 권면을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 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옛 선지자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1-3절까지 강조하고 4절부터 14절 까지는 천사보다도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선지자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몇 가지로 그 우월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옛 구약 선지자보도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이 구약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구약의 인용본문들이 70인역을 전부 인용을 하고 있는데 70인 역이라는 ............
   1절과 2절을 보면 옛 적과 지금 말씀하시는 하나님 2-3절은 아들의 신분과 사역에 대해서 나와 있다.
   하나님이 옛 선지자들에게도 말씀하시고 지금 우리에게도 말씀 하셨다. 옛적에 그리고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우리 조상들에게" "우리에게" "선지자들을 통하여" "아들을 통하여" 이런식으로 대조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구약에 있는 말씀들을 보면 아담, 이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 엘리야, 요나, 이사야, 아모스, 다니엘, 예레미야, 학개, 말라기 등등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 하셨다. 어떤 때에는 가시 떨기나무의 불꽃 가운데, 어떤 때에는 폭풍과 뇌성으로, 주의 사자들을 통해서, 작고 세미한 음성으로 어떤 때는 간접적으로 어떤 때는 직접적으로 어떤 때는 음성으로 어떤 때는 꿈으로 어떤 때는 환상으로 선지자들을 통해서 상징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
   구약의 계시들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 하셨는데 신약 시대에는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반복적인 말씀이 아니라 완전하게 한번 말씀 하셨다. 이 아들에 대해서 어떤 설명이 붙느냐하면 7가지 설명이 붙는데 (1)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2)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4)그 본체의 형상이시니라 (5)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말하는데 만물을 창조 하셨을 뿐만 아니라  만물을 유지하시는 분이시다. 붙들고 유지하고 계신다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 것이다.  (6)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7)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렇게 예수님을 7가지 사역으로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모든 구약의 선지자들 보다 위대할 뿐만 아니라 천사들보다도 위대한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다. 여기서도 7개의 구절을 통하여서 천사보다 위대함을 말씀하고 있는데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5절)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5절)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6절)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7절)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하였고"(8-9절)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12절)
  "네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13절)
   이렇게 말한 후에 2장에는 신실함에 대한 경고를 한다. 히 2:1, 3 "떠내려가지 말고,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경고한다."
  예수님이 이렇게 천사보다도 뛰어난 분이시지만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셔서 죽음과 고난을 당하셨다. 2장의 결론은 18절에 시험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3장에는 모세보다 뛰어난 예수님, 모세는 단시 사환으로 충성을 하였지만 예수님은 아들로 충성하였다. 모세의 시대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서 갈 길을 알지 못하였는데 우리도 매일 죄의 유혹으로 강팍함을 면하자고 강조한다.
    히브리서의 청중들은 예수 그리스도(메시아)에 대한 신앙 때문에 이미 어떤 고난들을 겪었고(10:32-34; 12:3-13), 또한 앞으로 더 큰 고난을 받아야 할 사람들(13:13-14)로 묘사하고 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히 10:32-34).
   즉, 히브리서의 청중은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더 큰 고난을 받아야 할 운명을 지닌 사람들로서 이들의 제자도의 대가는 재산을 잃고 자유를 잃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잃을 위협에 처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받은 고난은 비록 죽음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힘든 고난을 받은 사람들로서 이들 가운데에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도 있어 그들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에는 직접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거나 또한 그런 사람들과 사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산업(재산)이 빼앗김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결국 이러한 힘든 고난으로 인해 이들은 영적으로 낙심한 상태가 되어 심지어는 절망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기도 하였다(12:3, 12). 저자가 염려하는 대로 이들은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12:12)을 가진 상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낙심으로 인해 인내하지 못하고 시험과 유혹을 받는 사람(2:18; 3:13), 즉 신앙을 떠나거나(배교의 상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에 둔한 상태이거나 강팍한 마음의 상태에 이르거나 또한 모이기를 폐하는 상태에 이르는 사람, 나태와 부주의에 빠져(2:1) 용기와 신앙과 소망을 잃어버리고 불순종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었다(2:3; 3:12-4:1; 4:11, 14; 5:11-14; 6:4-8, 11-12; 10:23-29, 36-39).  
    특히 10:24-25의 권고는 이들이 신앙으로 인한 고난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지치고 낙담되어서 영적인 일에 무관심과 냉담의 징조를 보이고 있음("모이기를 폐함")을 본다.
    대체로 히 10:32-34에 묘사된 고난의 정황(모욕, 박해, 재산몰수)은 AD 49년에 있었던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에 의해 추방당한 유대 기독인들이 당한 어려움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는 이들 청중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탁월한 모범을 소개하면서 그 분을 바라보도록 그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있다(12:2). 특히 자비하고 충성된(신실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2:17-3:1; 4:14-5:10)고 권면한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능히 죽음에서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5:7). 심한 통곡과 눈물로서의 간구의 결과는 고난과 죽음을 겪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었다(13;20-21). 비록 우리가 고난을 겪고 심지어는 죽음을 겪는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7:25).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13:6).
  히브리서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고난 가운데서 예수를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우리도 이 사렙다의 과부처럼 욥처럼 부르짖는다. "하나님, 앞으로 한순간만이라도 저한테 자유를 주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이 생을 마음껏 누리면서 살게 해주십시오.”
  사람들에게 위기가 찾아 올 때 위기를 관리하는 능력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위기 관리 능력은 피함이 아니라 적군을 향해서 달리는 것이다. 히 12장 4절의 말씀처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라는 말씀이 있듯이 피하지 말라는 것이다.
  요셉도 위기 가운데 있었다. 순식간에 종이 되고 순식간에 강간 미수범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런 위기 가운데 요셉은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산다. 노예일 때는 노예로서 열심히 살고 감옥에 갇혔을 때는 감옥에 갇힌 대로 열심히 산다. 못살겠다 갈아치자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사탄도 예수 잘 믿는 우리를 건드린다. 사탄도 불의한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자를 찾는다고 벧전 5:8절에 말씀하고 있다. 뱀이 화와를 유혹 할 때도 고후 11:3 절에 보면 "뱀이 간계로 이브를 속인 것 같이"(고후 11:3). 또 사탄은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도 한다.(고후 11:14). 사탄은 최선을 다해서 성도들을 넘어지게 한다. 부정적인 생각을 집어넣고 소근 거리는 소리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불순종하는 영이 반발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미하게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할려고 하는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돈이 많고 편안함도 문제이고 박해도 문제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는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는다. 드릴라가 삼손의 비밀을 알게 할 때 불레셋의 5 왕들에게 받은 돈의 액수가 얼마인지 아는가? 은 일천일백개를 주었다. 은 오천오백개를 받았다. 이 돈은 한화로 계산을 하면 55억이다.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스카웃 한다. 아마도 드릴라는 당시에 불레셋의 유명한 텔렌트 정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한사람 무너뜨리기 위해서 이렇게 돈을 투자하는데 우리는 한 사람을 살리는데 얼마나 투자를 하는가? 한 영혼 살리는 일에 얼마나 투자를 하는가? 사탄은 사람을 무너트리는 일에도 이렇게 엄청나게 투자를 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인생을 살아 갈 때 어려움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사탄이 우는 사자처럼 삼킬자를 삼키려고 두루 찾아다닌다고 할지라도 요셉처럼 믿음으로 반응을 하자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을 했듯이 꿈이 있는 것이고 비젼이 있는 것이다. 비젼은 꿈이다. 꿈이 있었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은 것이다. 팔자타령하지 않았다. 도망치지도 않았다. 주저앉지도 않았다. 문제야 와라 너는 네 손안에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단 하루만이라도 마음껏 날개 짓 하면서 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머지 삶 전부를 날개 짓 하면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욥이 깨달은 말씀이 무엇인가? “역경이 닥치면 도망가는 것으로 인생의 문제를 풀 수는 없다. 그냥 주저앉아서 불의와 역경에 적응하여 사는 것만으로 인생의 의미는 없다. 그럼 어떡하면 되느냐? 역경을 올라타고, 기어올라서 역경을 정복해야 한다.”
    파도가 오면 파도를 즐기자 여름이 와서 더우면 여름을 즐기자 이것이 욥의 삶의 태도였다. 물하고 친하게 지내면 물이 나를 뜨게 하지만 물하고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으면 물이 나를 삼킨다는 것이다.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파도를 기대한다. 파도를 즐기는 것이다.
    파도에 몸을 맡기듯이 하나님께 몸을 맡기는 것이다. 요즘은 정말 겁나서 살기 어렵다. 길거리에 다니는 것 자체가 두려운 세상이다. 길조심 차 조심이 아니라 사람 조심해야 할 때이다. 그만큼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없다. 사람 하나 죽어 가는 것이 파리 하나 죽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 시대이다. 돈 때문에 사람 납치하고 돈 요구하고 예전에는 거짓말 잘해서 사기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지금은 범죄 수법이 다양해 졌다. 이럴수록 우리 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생명과 내 인권을 보장받기 어렵고 어디에다가 어떻게 나를 맡겨야 할지 모르겠다. 판단이 서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향해서 호소한다. 내 괴로움을 보살펴 주십시오 한 순간이라도 내가 숨한 번 크게 쉬고 싶다고 말이다. 내 괴로움을 살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눅 18장에 보면 불의한 과부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불의한 과부는 사정이 얼마나 딱한지는 알 수 없으나 밤낮으로 불의한 재판관에게 매달린다. 결국 그 불의한 재판관이 이 과부의 간청에 손을 들었다. 그 여자가 불쌍해서 손을 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괴롭고 귀찮아서 손을 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비유를 하신 후에 뭐하고 묻는지 아는가?  “인자가 올 때 믿음 있는 자를 볼 수 있겠느냐?” 이 마지막 질문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그러나 이 비유는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끈질기게 요구하면 하나님도 들어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 같지는 않다. 그 여자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아신다. 오히려 하나님은 이 비유를 가장 나쁜 인간인 재판관과 대조를 시킨 것이다. 가장 악질적인 인간도 이렇게 간절히 강청하면 마음을 바꾸어 들어 주는데 가장 선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기꺼이 응답하시겠는가? 그러니 하나님의 응답을 든든히 믿고 구하고 구한 것은 이미 얻은 줄로 알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하는 자가 지녀야할 자세이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청원하고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보면 욥의 호소는 단 한 순간만이라고 이 어려움 속에서 날개짓 한번 해 보자는 것이다. 그런데 과부는 아니다. 그래서 이 과부의 믿음을 높이 산 것 같다. 불의한 재판관의 불의한 판결 가운데서도 흙탕물 속에서도 이 여자는 살아 남은 것이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야 어련이 알아서 해 주시겠느냐이다. 살아 남기 위해서 날개 짓 한번 힘차게 해보고 살아 남기 위해서 강청을 해 보다는 것이다.
     힘들고 어렵다. 욥이 당한 고난처럼 힘들고 어렵다. 내가 살 동안에 한번 하나님 문열어 주십시오 그래서 자유롭게 마음껏 기지개를 피기를 원합니다. 살다보면 사자떼가 우글거리는 정글속도 지나쳐야 하고 악어떼가 득실거리는 늪 속도 어쩌면 헤쳐가야 할 것이다. 보이는 것은 빛보다는 어둠이다. 그래서 사람이 기지개 한번 펴보지 못하고 낙심하는 것 아닌가? 네가 욥의 고통을 알아 그러면 할 말이 없다. 고후 4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욥도 자기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것도 아니고 재산이 날라가고 싶어서 날라간 것이 아니다. 자기의 뜻과는 정 반대로 인생이 돌아가니 이런 답답한 일이 어디 있는가?
     데살로니가 전서 5장에 보면, 인생의 암흑기가 올 수 있다. 그런데 예고 없이 찾아온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고 했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면서, 정신을 차립시다.
     그런데 어둠 가운데 있지 않는 사람은  도둑처럼 덮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까 항상 깨어서 정신을 차리면서 있자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정말 무서운 것은 재산이 날라가는 것, 육신적으로 연약해 지는 것 이런 것이 아니라 낙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실망을 한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은 낙심할 이유가 없다. 혈기 왕성한데 뭐가 낙심거리가 있는가? 낙심하지 않는 길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성경에는 해답을 준다. 오늘 누가복음 18장 1절에 보면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라는 말씀이 나온다. 불의한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매달리니까 달라지지 않는가? 히브리서를 우리는 이제 시작하려고 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죽기까지 고난을 받았지만 약속을 받지도 못하고 죽어간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우리의 거울이 되어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 죽어라고 날개짓 해보자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 한순간만이라도 내가 마음껏 살고 싶습니다. 정면대결해서 승리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이 정말 풍요롭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우리와 같으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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