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감리교회
로고
메인이미지


  박성일(2004-06-03 12:02:29, Hit : 3467, Vote : 670
 (3)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3)예수님을 생각하라  
히3:1-6                               (2004. 6. 2 수요기도회)
   벌써 6월입니다. 저는 6월의 색깔이 너무나 좋다. 6월의 아름답고 싱싱한 색깔처럼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도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이 함께 하기를 기도 드린다. 처음 히브리서를 시작할 때 이미 말씀을 드렸지만 히브리서는 박해와 고난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부정하고 떠나려 했던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과 확신, 그리고 위로를 전하기 위해 기록된 말씀이다.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의 성도들은 엄청난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흔들림 없이 예수를 의지하고 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이런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첫 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보다도(1:1-3), 천사보다도(1:4-2:18), 우월하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오늘은 모세보다도 우월하신 분(3:1-4:13)이라고 소개한다.
   이런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깊이 바라보면서 예수를 닮아가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바라봄의 원칙과 생각의 원칙이다. 이 비슷한 말씀이 12장 2절에 나온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는 말씀이다. 그렇게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면 예수님을 어느 순간 닮아 가게 되는데 예수님 닮아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뉴튼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서 지구에는 인력이 있고 만유인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만유인력의 법칙」이 세상에 알려지자 어느 기자가 뉴튼을 찾아와서 물었다고 한다.「선생님, 선생님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거기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하시는데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거기서 이 위대한 원리를 발견하셨습니까?」그 때 뉴튼의 대답이「예, 저는 언제나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위대한 것이 나온다.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르다. 사무엘 스마일은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성품을 거두고 성품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라는 말을 했다. 결국 우리의 운명을 변화시키는 것은 좋은 생각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생각이 변화될 때 인생이 변화 될 수 있다.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결국 좋은 습관을 통해서 바른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습관이 굳어진 사람은 습관적으로 하는 것 매우 쉽다. 매일 조깅하는 사람은 뛰는 것이 쉽다. 그래서 좋은 습관으로 무장된 사람은 미래가 밝다. 책 읽는 습관, 일찍 일어나는 습관, 운동하는 습관, 성경 읽는 습관 이런 것 참 중요하다. 일기 쓰는 습관, 기도하는 습관, 이런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은 평소에 하던 데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생을 쉽게 살 수 있다. 엄청난 재산이다.
   미국의 역사 가운데 제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있다. 아직도 미국 사람들에게 가장 영향력있는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는 사람이다. 1801년에서 1809년까지 미국의 대통령으로 있었는데 그가 10가지 정도의 습관을 이야기 했는데 이 습관이 모든 미국 사람들의 습관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1.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 제퍼슨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그날 할 일을 목록으로 작성했다고 합니다.
  2.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로 남을 괴롭히지 않는다. - 자조정신, 독립성을 말합니다. 남에게 도움받는 것을 수치로 여겼습니다. 기본적으로 스스로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의 청소년들은 19살이 지나면 부모에게 돈 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꼭 배워야 하겠지요? 나이 서른 넘어서까지 용돈 타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3. 번 만큼만 쓴다. - 이것은 제퍼슨도 많이 실수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고백하기를 자기는 오랜 기간, 나이 50이 넘을 때까지 혹독한 시련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라고 합니다. 번 만큼만 쓴다.
  4. 싸다는 이유로 필요 없는 물건을 사지 않는다. - 그는 설명하기를 구매는 물질을 구매한다기보다는 경험을 얻는 것이라고 합니다. 청렴결백한 검소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5. 자만은 허기나 갈증보다 더 많은 댓가를 치른다. - 힘이 있다고 교만하면 안 된다. 겸손해야 한다.
  6. 적게 먹는 소식은 후회가 없다. - 너무 과식해서 비만으로 넘어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7. 낙관적인 태도를 갖는다.
  8. 기우, 쓸데없는 염려는 마음을 병들게 만든다. -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
  9. 무리 없는 일을 처리한다. - 어떤 일을 이루기는 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희생을 요구해서 저항을 촉발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피하자는 것입니다.
  10. 화가 날 때는 1~10을 센다. 그리고 폭발할 것 같으면 1~100을 센다. 이런 얘기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문화 가운데 지금도 이런 문화가 배어있다고 한다.  우리도 좋은 생각을 가지고 그대로 실천하면 그것이 좋은 습관이 될 수 있다. 제가 목회 하면서 정말 힘든 것이 있다면 새벽기도이다. 아직 덜 습관화 되었는데 이것이 습관화되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투쟁하지 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늦게 일어나는 사람보다 인생을 두배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항상 하시는 말씀 가운데 아침에 뜨는 태양이 너를 기다리게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것 실천하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TV가 없는지 10개월이 다 되어 간다. 오히려 tv를 습관적으로 보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켜는데 우리는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이제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더 이상하다. tv보는 것도 습관이다. 다음주일에 그 미니드라마 어떻게 될까 그것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준규가 오늘 하는 말이 나는 텔레비전 생각도 안해 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은 기도할 때이다. 일주일에 한시간 중보 기도도 습관화되어야 한다. 새벽기도가 습관화되고 중보 기도가 습관화되어야 한다. 예수님도 눅 21장 39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그냥 동산에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항상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던 대로 죽는다. 죽을 때 가서 기도 많이 한다고 말하지 말라 술 먹는 것이 습관화 된 사람은 술 먹다 죽을 수 있다. 기도가 습관화 된 사람은 기도하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0장25절을 보니까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나쁜 습관이다. 자꾸 모이는 것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비판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사람은 유전된다. 욕하는 것도 습관이다.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듯이 어떤 아이가 습관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은 그 부모도 습관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것이다.
    지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지각은 존경심의 결여라는 말이 있다. 그 모임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지각하지 않는다. 예배에 대한 경외감이 있으면 지각하지 않는다. 이런것들이 습관화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 그리고 반복이다. 자꾸 해보면 된다. 설교도 맨 날 똑 같은 소리하는 것이다. 마치 텔레비전에서 광고 할 때 똑 같은 광고를 계속 하는것과 같은 것이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는 옥중이었다. 옥중에서 매여 있는 바울이 자유롭게 생활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생각의 중요성을 말한 후에 생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9절에 보니까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행하라고 한다. 그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생각이 우리의 삶 속에 미치는 영향력을 바로 알아야 한다. 예레미야 6장 9절에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재앙을 받은 것은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고 말을 한다.
  생각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마 12장에도 보면 마음에 가득한 것으로 말한다라고 말씀하면서 선한 사람은 그 선한 것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엇을 생각하고 사느냐가 중요하다.  
    오늘 말씀은 예수 믿는 우리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을 거룩한 형제들아"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형제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성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1절 뒷부분에 보면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였다.
    "사도"란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종종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강조하셨다.
   옛날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애굽에서 고생하는 이스라엘 사람을 구원해 내라고 보내심을 받았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서 고생하는 인류를 구원해 내라고 보내심을 받은 사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은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 보내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이 사실을 모세를 믿지 않았다. 모세 역시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 자체가 고민거리였다. 예수님 역시 빛으로 오셨지만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영적인 소경이 되어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결국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나 바울이 사람들에게 설교한 내용을 보면 너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할 예수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보내신 사도, 대사, 특사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여기서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유심히 보다, 관찰하다, 고려하다, 생각하다, 근원을 파악하라」는 뜻이 있다. 사물을 볼 때 눈을 흘깃 해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깊은 의식을 가지고 보는 것, 생각하는 것이다. 곧「예수 그리스도에게 생각을 집중하라」는 말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 3장은 하나님의 집에서 아들로 충성하신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하고 있다. 모세보다 훌륭한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모세보다 위대한 인물은 없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자요,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다.
   모세라는 이름만 들어도 감동이 온다. 모세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다. 히브리 역사의 가장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다. 우리나라의 일제 시대보다도 더 어려운 시기 였다. 그리고 버려졌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의 궁에서 자라게 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장 고통의 시대 울부짖음의 시대에 하나님의 대안이 모세였다. 하나님이의 대안이 되는 사람은 게을러 질 수 없다. 현실 세계를 무시하지 않는 영성이 모세에게 있었다. 모세는 환경을 뛰어 넘는 사람이 되었다. 적대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살아 남아서 자신만 살아 남은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을 살린 사람이다.
   5절에 보면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이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모세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위대한 지도자 였을 지라도 사환으로서 일한 것이다. 민12:7 "내 종 모세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광야 생활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는 그 순간에도 끝까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생명 다하기까지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이었다.
   이런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비슷한 점을 먼저 찾았다. 즉 모세가 하나님의 집, 즉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충성스럽게 일한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께 충성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즉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사환 즉 종으로 충성하였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 곧,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환으로 일한 것과 아들로서 일하는 것은 다르다. 종으로 주인을 섬기는 것과 아들로서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세보다도 위대하신 분이다.
   본문 3-4절에『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방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고 했다.  여기서『집』에 해당하는 헬라어「오이쿠」는 2절의『온 집』과 같이「하나님의 백성」혹은「구원받은 무리」를 의미한다. 모세는 그가 아무리 탁월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다 하더라도 그 집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집을 자신의 피로 세우신 분이다(행 20:28). 히브리서 1:1-3절에 나와 있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본채의 형상이고 만유를 창조하셨고, 소유하시며, 보존하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모세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모세가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오늘 말씀의 초점은 모세가 아니라 예수님이다. 예수님 역시 모세보다 더 하나님께 순종을 했다. 히5:8 이하에 보면 "그가 아들 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 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충성은 사환으로서가 아니라 아들로서 충성을 한 것이다. 사환이 아니라 주인의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대접받는 모든 권리를 스스로 내려놓았다. 마땅한 대우까지도 포기하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섬기는 자의 자리에 서서 충성을 다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핵심적인 말씀을 세개만 뽑는다면  첫째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1절)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5절)라는 말씀이고 세째는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6절)이라는 말씀이다. 이것을 한 줄로 요약하면 '예수를 생각하고 끝까지 맡은 일을 잡으라'는 뜻이다. 6절을 한번 보면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잡으면" 여기에 보면 내가 충성하고 있는 일 자체를 잡으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서 말씀을 하고 있다. 내게 맡겨진 일에 대한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내가 정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인가 보다 하면서 쉽게 포기할 수 있다. 소망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하나의 짐이나 부담으로 남아 있을 수 있어서 끝까지 붙잡고 가기가 매우 힘들 때가 있다. 그래서 끝에는 해피 앤딩임에도 불구하고 해피 앤딩을 보지 못하게 마귀가 자꾸 포기하게 만든다. 낙심하는 것이다. 내 뜻과 소원은 이것인데 지쳐서 쓰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들더라고 소망의 담대함과 내 맡은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봉사해 나가는 사람은 끝까지 그 일을 잡을 수가 있다. 6절을 다시 한번 읽으면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6절)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 그의 집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일컫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이다.
    우리 한국에 기독교인이 1000만명이라고 한다. 1000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예수를 깊이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나는 오늘 찬송가 85장을 부르려고 한다. 깊이 예수를 생각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란다.





(4)40년의 광야 생활(히브리서 3:8-19)
(2)우리와 같으신 예수

Copyright 1999-2023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