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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04-06-09 17:28:23, Hit : 5193, Vote : 596
 (4)40년의 광야 생활(히브리서 3:8-19)


(4)40년의 광야 생활
히브리서 3:8-19                        (2004. 6. 9 수요기도)
  지난주에 우리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라는 말씀을 드렸다. 바른 생각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환난이나 곤고 가운데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는 것이다. 특히 광야 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끈 모세와 예수를 비교해 가면서 모세는 집의 사환으로서 충성하고 봉사를 했지만 예수님은 아들로서 섬긴것이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통스런 광야 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대안으로 모세가 선택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사환일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모세가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우리의 초점은 예수님이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히브리서기자는 환난과 핍박 가운데 있는 성도를에게 경고와 격려의 메시지를 하고 있다.  
   8절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13절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15절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그래서 오늘 말씀은 시편 95편을 인용하고 출애굽기 17장 1-7절과 민수기 13장 1-14장 4절의 사건을 예로 들어 히브리서 독자들을 향하여『너희는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했다. 광야 40년간의 삶은 강팍한 마음을 가지고 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광야 4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만일 이들을 하나님이 가지치기하지 않으셨다면 이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점령해서 들어 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도 생긴다.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하고 어떻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말이 하도 많아서 여리고 성 근처에도 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점령하라고 하면서 하루에 한바퀴씩 일곱바퀴 돌고 7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바퀴 돌고 나팔을 불라고 하셨다. 그러면 무너질 것이다 라고 말을 하고 내일부터 모든 지파는 모이자 하면 옆에서 궁시렁 대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광야 생활을 시작하기 이전에 10가지 경험했다. 이 10가지 재앙은 바로가 믿고 있는 이집트의 신과 하나님과의 싸움이었다. 10라운드 10번 모두 이긴다. 그리고 지팡이 하나에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본 사람들이다. 이런 기적들을 보았지만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보지 않았다. 믿음을 가지고 보면 확연하게 다 보이는 것인데 믿음을 가지고 보지 않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이것은 단순한 책에 불과하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도 하나님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한것도 소경이 나음 받고 앉은뱅이가 말씀으로 일어서는 것도 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확연하게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하고 맹신하고는 다르다. 무조건 믿는 것은 맹신이다. 맹신은 깊이 빠져 들면 들수록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든다. 광야에서 나온 무리들은 믿음이 없다. 믿음이 있다 없다는 것은 행위의 열매를 가지고 알 수 있는데 그들은 믿음의 격이 없었다. 믿음에는 항상 격이 있어야 한다. 믿음의 격은 감사로 표현되어 진다. 믿음의 격은 예배 생활로 표시가 된다. 격조 높은 믿음을 소유하려면 격조 높은 감사가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나는 물질을 드리는 것이나 혹은 예배를 참석하는 것은 믿음과 정비례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주 속회 공과는 민수기 28장의 말씀이다. 향기로운 제물에 대한 말씀을 나눌 것이다. 제물을 드리는것도 하나님 사랑해야 제물을 드리는 것이다. 먼저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자는 것이다.
   광야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많은 이적을 보았다. 그런데 물이 반석에서 솟아 나오고 쓴물이 단물이 되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런데도 그들의 마음이 더욱 강팍하게 되었다. 이들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늘 마음이 강팍하다. 만가지 기적을 체험해도 믿음이 없으면 강팍해 진다. 만나를 먹고 메추라기를 먹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본 200만의 사람들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강팍한 마음으로 광에서 죽었는가?
   광야는 우리를 연단시키는 장소이다. 또한 믿음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을 가지치기 하는 곳이다. 용광로와 같아서 불순물과 순물을 구분하는 곳이다. 추수때처럼 알곡과 가리지, 혹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곳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잘 마쳐야 한다.
    광야의 무리들은 홍해를 건넜지만 요단강은 건너지 못했다. 교회안에도 얼마나 많은 무리들이 있는가? 무리들은 언제든지 돌아 설 수 있다. 무리들은 언제든지 돌을 던질 수 있다. 그런데 무리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무리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더욱 강팍하게 한다. 뭐좀 하려고 하면 웅성거림이 있다. 뭐좀 하려면 수군거림이 있다. 그러나 이런 방해요소들 역시 나는 사역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사람들이 많았을 때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는데 장애물이었다. 그러니까 뽕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믿음이 돋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중풍병에 걸린 환자를 예수님에게 가까이 가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믿음 하나 가지고 지붕 뜯는다. 예수님이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막 2:5절) 말씀하신다. 어려운 시기 일수록 더욱 돋보이는 믿음이 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점령하지 않았으면 유관순은 평범한 여자로 일생을 마쳤을 것이다. 신사참배라는 어려운 시기가 없었으면 주기철 목사의 믿음이 돋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민수기 11장을 지난주 성경공부 시간에 했다. 민수기 11장의 말씀은 만나를 먹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광야에서의 삶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이 출애굽하여 맨 먼저 만난 외부의 적인 아말렉 족속들과의 전쟁에서 여호수와가 싸운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모세가 기도하고 그의 손이 올라갈 동안 승리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외부의 적은 간단하다. 그러나 내부의 적은 다르다.
   내부의 적은 불평과 원망을 무기로 공격한다. 그들이 고기 먹고 싶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메추라기를 보내 주시지만 고기가 그들의 잇 사이에 아직 있어 씹히기 전에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백성들의 불평은 그렇다 치더라도 모세도 불평한다. 모세와 같은 사람도 불평의 기도를 한다. 모세의 기도를 보면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11-12절).
    물론 모세가 힘든 것도 이해 할 수 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한번씩 툭툭 건디니 열받을 만도 하다. 만일 우리가 행복한 끝을 생각한다면 불평하지 말자. 그래서 과정중에 넘어지지 말자. 광야에서 죽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가나안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것이 해피 엔딩으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 과정중에 물이 없다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의 고백처럼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불평한 것이 아니라 고기 먹고 싶다고 불평한 것이다. 출 16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만나를 먹는 순간 그 만나맛이 꿀맛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처음의 맛있던 만나를 계속 먹게 되니 입맛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민 11:8절에서는 만나 맛이 꿀맛이 아니라 기름 섞은 과자 맛이라고 말하고 있다. 꿀맛이 기름 맛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민 21:5에 보면 그 만나를 싫어하기까지 한다. 하나님께 왜 만나만 주시느냐고 불평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들이 간사해지고 있다. 처음에 꿀맛이 시간이 갈수록 자꾸 변질되더니 이제는 만나가 싫어지기까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현실을 보면서 그들은 다시 원망과 불평의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추라기 보내주신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추라기를 보는 순간 메추라기만 보이고 메추라기를 주신 하나님은 잊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메추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루스드라에서 앉은 뱅이를 고친 바울이나 성전 미문에서 앉은 뱅이를 일으킨 베드로를 사람들이 주목하여 보았다. 그런데 주목하여 볼 것은 베드로나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신유의 은사를 가지고 불의 종, 치유의 종, 병든자는 다 오시오 하면서 엄청난 선전을 해 가면서 부흥회 한다고 한다. 마치 예수님은 빠지고 그 사람이 고치는 것 같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지 내가 너를 고쳤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심명기 8장에 주께서 너희를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너희도 알지 못하고 너희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광야에서 만나로만 먹이신 것은 다른 메뉴를 줄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만나를 먹으므로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삶의 목적이 먹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받고 실천하는데 있음을 뜻하고 있다. 따라서 먹는 것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것을 요청하신 것이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온 백성이 자기 집 앞에서 운다. 모세는 그들의 음성, 불평, 울음을 들으면서 실망했다. 절망감을 느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 차라리 절 죽여주십시오." 이렇게 불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세만의 사건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작은 문제, 조그마한 문제 하나가 나에게 닥쳐올 때 얼마나 우리는 쉽게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나님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서 원망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저도 조금 힘들도 어렵더라도 이 사역을 짐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지난주 성경공부 시간에 이런 말을 했다. 어떤 목사님이 교회에 부임하셨다. 교인이 600명 정도 되는 교회에 부임을 했는데 환영회가 열렸다. 그래서 환영사도 하고 여러 순서가 진행되었는데 한 나이 많은 권사님이 목사님에게 말씀하셨다. "목사님 앞으로 600명 비유다 맞추시려면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아휴 목사님 참 힘드시겠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권사님 천만에 말씀입니다. 600명의 비유를 제가 어떻게 맞춥니까? 저는 오직 한분 하나님께만 비유를 맞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께서 나머지 모든 것들은 다 해결하고 채우실 줄로 믿습니다." 맞는 말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을 짐으로 생각하지 말자. 오직 주님 한분만 깊이 생각하고 그만 바라보자. 그리고 주님 닮아 가자. 시편55:22절 말씀에 보면 "네 짐은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짐이 무겁다고 낙심하지 말자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고 차라리 죽여 달라고 말하고 있다.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백성들이 달라고 하는데 모세의 손에는 하나도 줄 것이 없었다. 백성이 채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는 절망하고 지금 하나님 앞에 불평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의 착각은 지금까지 자기가 한 것처럼 생각을 한 것이다. 자기가 홍해도 갈랐고 자기가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한 것이고 그러나 지금 까지 살아온 것이 모두 주님의 은혜이다.
   입을 크게 벌려서 우리 하나님 앞에 구하자 시편81:10절 말씀에 보면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입을 넓게 열면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다고 말했다.  
    출애굽기 17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광야 르비딤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마실 물이 없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들의 지도자 모세를 향하여『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고 하며 원망했다. 그 때 모세는 백성들에게 대답하기를『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고 말씀한다. 그러나 계속 해서 백성들은 불평하면서 무엇 때문에 고기가마 옆에서 배부르게 잘먹고 지내던 우리를 이렇게 광야로 끌고 나와서 고생을 시키느냐고 하며 원망과 불평을 한다. 모세는 자기 백성의 비난과 난동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이 백성 앞을 지나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게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고 말씀하신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했고 그리고 그곳 이름을 맛사(시험)라 또는 므리바(다툼)라 불렀다. 왜 그랬는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와 다투고 여호와를 시험하여『여호와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하고 의심했던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의심하지 말자.
    민수기 13장 1-14장 4절의 내용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떠난 직후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게 되었다. 거기서 하나님은 모세에게「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탐꾼을 보내라고 하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데로 이스라엘 각 지파 가운데서 한 사람씩 열 두 명의 밀사를 뽑아서 보내게 되었다.
   40일 후에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그 땅의 실과를 보이면서 보고를 했하는데 보고의 내용이 다랐다. 10명의 가나안을 보고 돌아와서 위협적인 것만 말을 한다.
   그러나 다른 두 정탐꾼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갈렙은 큰 소리로 말하기를『여러분,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합시다. 능히 이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열명의 정탐꾼들은 일제히 그들이 본 사람들의 크기에 주의를 집중시켰기 때문에 못 간다는 못 간다는 것이다. 메뚜기 밥이라고 말을 한다. 같은 것을 보았어도 믿음이 있는 사람의 눈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눈은 너무나 다르다.
   그런데 문제는 무리들은 10명의 정탐꾼 말만 믿고 울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고 벌써 죽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한탄한다.『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해서 그들의 칼에 망하게 하려는고?』하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믿음이 없으면 이렇게 원망과 시비, 한숨과 낙심, 후회와 탄식밖에 없다.
   이런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시편 95편이 기록된 것이다. 시편 95편 6절에『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원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자는 것이다.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시 95:8)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2절에『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불신앙과 불신이 가져온 비극에 대해서 16-17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40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순종치 아니한 자가 걸러진 것이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다고 오늘 본문에 보면 말씀하고 있다.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전서 10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사실을 설명한 후 11절에『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40년 동안에 행한 일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당한 일 모두가 우리에게는 거울이 된 다는 말씀이다.
   『강퍅하다』는 말은「굳어진다」는 뜻이다  10가지 재앙을 내릴 때 바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대적하며 어기는 마음을 가졌다. 사람의 마음이 굳어지게 되니까 생각하는 것이 어두워 져서 감정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하지 못하고 믿지 않고 악심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의 계속적인 이적과 은혜를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 사도 바울이 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뒤로 물러나지 않고 사역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빚진자의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전에는 핍박자였고 포행자 훼장자 였는데 죄인중의 괴수인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고백을 한다.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바울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항상 그 은혜에 대하여 감격해 하는 그의 신앙은 그로 하여금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게 한 것이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40년 동안 지내면서 참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다. 노예 생활에서 해방 받은 이 놀라운 은혜, 이 크신 축복은 잊어버리고 육신적으로 고된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고 거역하고 순종치 못함으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극의 역사가 되고 만 것이다. 히브리서 역시 그들이 예수를 믿는 것 힘들다. 맞고 죽기까지 한다. 그래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뒤로 물러갔다. 그래서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조금만 더 참고 믿음으로 주의 종 모세를 따랐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 갈 것인데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고 불순종하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가 된다.
이스라엘 사람처럼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과 다투지 말자. 불신앙의 마음을 품고 강퍅하게 되지 말자.  원망하지 말자. 광야 40년동안 광야에서 죽은 그 불쌍한 사람처럼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말자. 히 2:3에 한 말씀처럼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대수롭게 여기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값싼 대가를 지불한 것이 아니다. 나와 여러분의 죄를 대속하시 기 위해서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희생을 치루고 얻은 구원이다. 광야 40년은 우리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잊지 말고 광야 40년...





(5)안식 할 때(히브리서 4:1-13)
(3)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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