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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04-06-16 16:25:31, Hit : 2802, Vote : 405
 (5)안식 할 때(히브리서 4:1-13)


(5)안식  할 때
히브리서 4:1-13                    (2004. 6. 16 수요일 저녁기도회)
    지난주에는 광야생활 40년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다고 할지라도 모두가 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신광야 르비딤에서의 사건과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에서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과 정탐꾼을 보낸 후에 부정적인 보고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사건을 다루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지 않도록 실족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면 광야 40년동안 광야에서 쓰러진 사람처럼 불순종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요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해서 well being 족들이 있다. 문자적 뜻으로는 행복 혹은 복지를 뜻한다. 물론 웰빙족들은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요가, 스파, 유기농 식품, 피트니스 클럽은 웰빙족을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요가를 하고 대형 활인점에서 유기농 먹거리를 사고 저녁이면 피트니스 클럽에서 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웰빙족을 위한 제품이라는 딱지만 붙으면 기존의 제품 보다 3배 이상의 가격을 얻는다는 것이다.
   누군들 이런 웰빙족의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먹지 못해서 굶주린 배를 잡고 한끼 식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제 주 5일 근무제가 도입이 되면서 자동차 문화도 바뀌어서 자동차 펜션이 생기고 나들이용으로 불리는 CDV(Car Derived Van)와 스포츠용으로 불리는 SUV(Sports Utility Vehicle)를 합친 RV(Recreational Vehicle·레저용) 차량도 최근 몇 년간 전체 승용차 판매에서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재충전을 위해서 멀리 나갔다 오면 더 스트레스 받고 떠 피곤하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통해서 정말 안식을 느끼고 있는가? 점점 더 많은 병들이 생기고 정신질환이 생긴다. 도대체 사람들은 이 땅에서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가 질문해 본다.
   3장 18절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안식에 대한 말씀을 하면서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은 순종치 아니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미 3장에서 결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고 순종치 아니한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의 4장을 보면 안식에 대한 단어가 많이 나온다. 4장 1절에도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리고 2절, 3절, 4절, 8절 ,9절에 안식에 대한 말씀이 나와 있다. 『안식』이란 말은 헬라어 (카타파우시스)라는 말로서 평화의 절정으로서의 쉼과 휴식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가 웰빙족들이 사는 것처럼 산다고 진정한 안식이 있을까? 1절의 말씀처럼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약속의 안식이 아직 다 된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의 영원한 안식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맛보며 살 수 있겠는가? 정답은 2절과 3절 그리고 11절에 나와있다. 먼저 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 가도다" 정답은 믿음이다. 세상을 창조 할 때부터 믿음이라고 한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창조한 에덴 동산에서 안식을 누리며 살수 있었다. 그런데 사탄의 미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하므로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다. 그래서 하나님의 낮을 피해서 숨어 들어가는 것이다. 의인은 사자처럼 담대해야 하는데 죄가 이렇게 어둠을 좋아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식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물밖에 나와 있는 물고기는 우선 물 속으로 들어가야 안식이 시작된다. 그래서 어거스틴은「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 안에서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그리고 4절에 제 칠일 안식일에 하나님이 쉬셨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하시고 너무 힘들어서 피곤해서 쉬신 것은 아니다. 우리를 위해서 안식하신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 제 4계명에 보면 안식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제7일에 쉬셨으니 너희도 안식하라고(출20:10-11) 하셨으며 안식일을 지키되 너희가 종 되었던 애굽에서 구하여 주신 것을 기억하고 안식하라고(신5:15)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에는 출애굽하여 광야 거처 가나안을 땅에 들어 대적들로 인하여 전쟁이 계속되었고 기근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약속한 그 땅에 들어가면 평안 하게 안식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하여 안식한 것도 참된 것이 아니요(8절)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9절)지금 우리가 누리는 안식은 완전한 안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출애굽하여 광야 생활을 잘 통과해서 가나안에 들어갔더라도 그곳이 참된 안식처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망해야 할 그 나라에 대해서 사모함을 가지라는 말씀이다.
  결국에는 4장도 천지창조부터 나오는 안식을 주제로 말씀을 연결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는 진정한 안식을 우리가 누릴 수 있는가? 이 따에서는 우리가 늘 피곤하고 위협적인 것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생활 동안 그들은 천막을 치고 떠돌이 생활을 했다. 오늘은 이곳에, 내일은 저곳에, 그러기를 몇 달, 몇 년 계속했으며 구름기둥이 인도하는대로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후퇴하기도 하였다. 광야생활 역시 불안한 생활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위와 싸우고 적들과 싸우고 먹을 것과 싸우고 이런 고통을 받으면서 40년간 살아 왔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다 죽었다.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이 없었던 것이다.
   비록 그들이 가나안이라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만 그들이 얻은 안식은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자유인으로서의 안식이며 오랜 방랑 생활에서 정착생활으로의 안식이었다. 그들은 정착의 안식에 들어갔으나 주위의 대적들의 위협 가운데 노출되어 있었고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생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착은 진정한 안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선진들에 대하여 소개하면서 이 사람들은 믿음을 따라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면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므로 살았다고 했다. 곧 믿음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안식 속에 살았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더 나은 본향이었다.
   물론 우리는 이 땅에서도 평안한 삶을 살아야 한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있는 말씀처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셔야 한다. 웰빙으로 헬쓰클럽 다닌다고 요가를 한다고 유기농 야채를 먹고 산다고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뢸 때 지켜 주신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보면 이들이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을 믿음으로 화합할 때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왜 말씀이 저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했는가?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으로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반응을 해야지 내가 그 말씀을 듣고 쑥쑥 자라는 것이다.
  이사야서 55장 10절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이 말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하늘로 다시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그 비가 토지를 적시고 싹이 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고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입에서 나간 말씀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건질 사람 다 건지고 변화시킬 사람을 다 변화시키고 열매맺을 사람을 다 열매맺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말씀이 힘이 있다는 것이다!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릴 때에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 다 바닥으로 다 스며드는 것 같지 않은가? 그냥 없어지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헛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종자와 양식을 준다는 것이다. 말씀을 듣는 자리에 와서 믿음으로 반응을 하기만 하면 자란다는 것이다.
   그럼 자란다는 것이 무엇인가? 에베소서 4:13절에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 어떻게 해야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가?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될 때이다. 말씀을 듣고 알아야 분별력이 생기는 것이다. 말씀이 공급되면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되 힘써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 왜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가? 공부하면 머리에 쥐가 나기 때문이다. 호세아서에서도 보면 사람들이 병든 이유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병들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자신들의 아이들 똑똑한 아이로 키우려고 한다. 그런데 똑똑한 아이보다는 지혜로운 아이로 키워야 한다. 어리석은 것과 무식한 것은 다르다. 무식한 것은 공부하면 유식해 지지만 어리석은 것은 공부해도 안 된다.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을 못박은 것이다.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는가? 사도행전 7장 51절에 보면 귀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듣는 자세가 중요하고 듣는 마음이 중요하고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인격이 중요하다. 이런 것이 믿음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유치하지 말자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은 사도바울이 말을 한다.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행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이제 그 유치한 생각, 유치한 말 이런 것 그만하고 이제는 어른의 신앙으로 성숙한 인격,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자는 것이다.
   성숙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맨날 짱돌 하나 들고 너 이것 잘못했으니까 한 대 맞아 이것이 성숙한 것이 아니라 희생과 섬김과 겸손한 모습이 보여지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 아닌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처음 나왔을 때 그들이 살았던 삶의 방법은 기적이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적처럼 만나를 내려 주시면 그것 긁어다가 먹었고 메추라기를 동풍으로 불어다 주시면 그것 구워다가 먹었고 사막 한가운데서 바위에서 물이 나오면 그것 가지고 먹고살았다. 순전히 기적으로 살았다. 그런데 사람이 계속 기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기적으로 산다. 부모님이 주시는 것 이것이 기적이다. 그런데 이런 기적가지고 계속 살 수 있는가? 처음에 예수를 믿으면 이런 기적을 가지고 산다. 은사 받았고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시고 방언하고 예언하고 신유은사가지고 병을 고치고 그런데 이제는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순간 이제는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더 이상의 만나가 내려지지 않았다. 처음 은혜 받은 사람들에게 겸손함이 없으면 위험천만하게 된다. 하나님이 그들의 믿음을 더 굳건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환상도 때로는 보여주시고 때로는 방언도 하게 하신다. 그런데 그런 것은 초신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제 이런 믿음으로 확신에 섰으면 더 이상의 만나는 필요하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내 신앙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다.
   건물을 질 때 중요한 공사가 기초공사이다. 기초가 흔들리면 건물은 쉽게 무너진다. 기초를 만들 때 철근을 사용하고 돌과 시멘트가 섞이고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집이 완공되기 위해서는 이제는 철근이 보여지면 되겠는가? 성숙한 사람은 철근과 같은 사람이다. 보여지지 않은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숨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부인에 모습이다. 성숙하고 기둥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보여지지 않는 가운데 딱 버티고 있는 것이 기둥 아닌가? 그 위에 벽지가 붙든지 예쁜 타일이 붙든지 하는 것이다. 절대로 기둥은 움직이지 않는다. 벽지나 예쁜 타일은 보여진다. 이들이 보여져야지 기둥이 보여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믿음과 말씀 순종은 함께 따라 다닌다. 그래서 믿음은 행함을 동반하는 것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약2:7) 하신 것도 말씀 순종도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심령골수를 찔러 쪼개며 또한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도 감찰하신다고(12,13절) 하셨다.
   이렇게 기둥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4:7절에  "오늘 본문 4장7절에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의심을 하면 마음이 강팍하게 된다. 수용하지 못하고 불순종으로 역사 하는 영들이 우리를 미혹케 하면 넘어뜨리는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 반발의 영이 역사하면 그렇게 마음이 강팍해 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묶은 땅에서 무슨 열매가 맺겠는가? 11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힘쓰는 것은 노력하는 것이다.
  열려져 있는 안식의 자리에 하나님이 초청하셔서 들어오라고 하는데 믿음으로 반응을 하지 않고 마음이 강팍하면 평안을 누릴 수 없다.
  렘 4장에 보면 묵은 땅은 기경하라는 말씀이 있다. 말씀이 잘 안들려지면 내 고집도 갈아버리고 게으름도 갈아 버리고 무관심도 갈아 버리고 가증한것도 갈아 버리고 잡초와 가시덤불을 갈아 버리자는 것이다. 아무리 씨를 뿌려도 기경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묵은 땅에 씨를 뿌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고 옥토를 준비하자 그래서 렘 4:4절에 우리에게 경고하시기를 만일에 내가 못하면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신다.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사르리니 그것을 끌자가 없으리라" 무서운 말이다. 불을 질러서라도 깨끗하게 하여 다시 심겠다는 것이다. 기경해서 부드럽게 해야 한다. 강팍한 곳에는 말씀이 믿음으로 반응을 하지 못한다. 과거의 모든 무지에서 벗어나, 냉랭함에서 벗어나, 완악함에서 헤어나와 새로워진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안식을 누리지 못했는가? 불신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당장 그들앞에 당하는 어려움 때문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 홍해 앞에서 그들은 두려워했고 적의 추격을 바라보면서 두려워 떨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행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유로굴라라고 하는 폭풍을 맞아서 난파 되었다. 그 배에는 276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몇날 동안 먹지도 못하고 배멀미로 고생을 했다. 그때 사도바울이 사람들을 향해서 말을 한다. 안심하라! 그리고 음식을 먹으라고 한다. 하나님이 사도바울은 확신이 있었다. 로마로 가야만 하는 확신 하나님이 그 확신을 사도바울에게 주었기 때문에 안심하라는 것이다. d당장 폭풍이 치고 배가 난파된 것을 보면 우린 망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믿음의 사람 바울은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한다. 이것이 믿는 자들의 반응이다. 안된다고 망했다고 말하지 말자.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실 것이다. 믿음으로 반응 할 때 우리는 안식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어디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는가? 어떤 교회에 가면 안식을 누리고 평안할 수 있는가? 내가 좋으면 교회가 좋은 것이고 교회가 좋으면 내가 좋은 것이다. 내가 안 좋으니까 교회가 안 좋은 곳이다. 문제는 우리가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병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곳간에 곡식이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만족하리라고 고백했던 하박국 선지자를 우리는 잘 압니다
   풍랑속에서 잠드신 주님을 생각해 보자. 십자가 앞에서도 당당한 주님을 생각해 보자.  그는 깊은 안식이 있었다. 히브리서를 읽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정말 핍박과 어려움의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이다. 불안하고 힘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우리에게 해답을 준다.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신다. 여호와 앞에 잠잠히 참아 기다리라.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라.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찬송해야 한다. 찬송가 466장이다.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주신 평안함 늘 충만 하도다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맘이 늘 평안해』(찬송가 466장)





(6)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자(히 4:14-5:10)
(4)40년의 광야 생활(히브리서 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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