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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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04-06-29 06:23:58, Hit : 3190, Vote : 617
 (6)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자(히 4:14-5:10)


(6)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자
히 4:14-5:10                           (2004. 6. 23 수요기도회)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싸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믿음 지키면서 세상 살려면 혈과 육의 싸움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영적인 싸움이 너무나 많이 있다. 게으름, 나태, 부정적인 생각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적이다. 그러나 제일 먼저 싸워야 할 것은 내가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나를 돌아보는 삶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보다 나를 먼저 돌아 보는 사람.. 나를 이기지 못하면 다른 것들을 이길 수 없다. 하다 못해 새벽에 일어나는 문제를 이기지 못하고 잠과의 전쟁에서이기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길 수 없다. 일년동안 새벽기도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런 분들은 새벽잠이 없어서 나오시는 분들이 아니라 새벽에 피곤하지만 교회로 일단 달려 나와 무릎을 꿇는 것이다.
   내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원칙은 단시간 안에 세워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내 몸에 베이는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내가 내 아들 결혼을 시키는 중요한 문제 가운데 놓여 있을 지라도 가나안 땅을 떠날 때 어려움을 당했던 것처럼 가나안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다니엘도 기도하다가 사자굴에 갇히게 되는 어려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는다.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갔다는 것은 위기이다. 길이 막혀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우겨 싸임을 당한 것이고 꼬꾸라진 것이다. 요셉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17살 이후 형들의 질투로 인해서 요셉은 하루아침에 노예가 된다. 요셉으로서는 정신적인 공황에 빠질 정도로 위기이다. 사랑받는 아들에서 짐승같은 노예로 바뀌게 된 것이다. 종살이하고 누명쓰고 감옥에 가고 그런데 요셉은 형들에 대해서도 독을 품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바라보고 나갔다.
   비젼이라는 것은 마치 별과 같다. 별의 역할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을 바르게 제시해 준다.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않고 늘 성실하게 탁월하게 생활했다. 이런 요셉을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한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요셉, 종살이 할때도 옥살이 할 때도 엄청난 영향력을 주면서 살지 않았는가? 그렇게 살기가 쉬운가? 대충 주인 보지 않을 때 낮잠자고, 대충 청소하고 대충 대충 하는 식으로 살았으면 주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코피 터지고 피곤하지만 성실하게 살았다.
  아마도 요셉이 늘 17세 이전의 삶의 상황만 생각했더라면 정말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서 어디 높은데라도 있으면 뛰어 내리고 싶을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살다가 죽어야 하는가하는 절박함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살았다. 노예지만 노예처럼 살지 않고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하듯이 일을 했다. 목사에게 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듯이 일을 성실하게 하니까 고난 가운데서도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도 답답함이다. 복음을 전하다가 그것도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고 그의 주인으로부터 고소를 당해서 어두컴컴한 감옥에 갇혔다. 그들이 감옥에 갇혀서 고난을 받는다고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 정말 이럴 수 있습니까 하면서 낙심하지 않고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가운데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감옥에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기도와 찬송이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이었다. 고난 속에서 휘파람 부는 것이다. 고난 속에서 무너지지 않으니까 고난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다니엘도 다른 신들에게 기도하는 사람은 모두가 사자굴에 쳐 넣는다는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원칙을 지키고 나가니까 사자가 입을 다물었다.
   모든지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낡아진다. 건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낡아진다. 사람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비난을 받고 핍박을 받고 우리가 당하면 우리가 약해지고 무너지게 되어 있다. 사면 초과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자꾸 나를 강화시킨다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사건 속에서 하루를 산다. 사건이라고 해서 우리 일상 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사건이 큰 일이건 작은 일이건 끊임없이 사건은 계속된다. 그런데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일어난 일들 가운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번에 김선일씨 너무나 큰 충격이다. 그런데 내가 가슴 아픈 것은 김선일씨가 참수 당한 것도 가슴아프지만 이것을 가지고 정치적인 논쟁을 한다거나 자신의 정책을 유리한 쪽으로 몰아 갈려고 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예전에 미군 장갑차에 죽은 두 명의 여중생의 아버지가 이제는 미선이와 효순이를 그만 내버려 두었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이제 그만 이름 들먹이면서 집회를 하거나 이 문제를 이슈화하지 말자는 것이다. 가족들의 마음하고 일반 사람들의 마음하고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균형잡힌 인생을 살고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사건 속에서 핍박과 고난 속에서 우리가 사면초과의 위기 가운데 살더라도 신앙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신앙적인 권태기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분 권태기라는 것이 무엇인가? 좋아했던 것도 갑자기 싫어지는 것이 권태기이다. 라면을 무지하게 좋아하던 사람도 세끼 라면을 일주일만 먹으면 라면에 권태기가 생길 수 있다. 좋아하는 영화도 계속 보면 영화에 대한 권태기가 찾아온다. 부부간의 권태기도 온다. 권태기가 온다고 아내를 바꿀 수 있고 남편을 바꿀 수 있는가? 그것 극복하는 방법 중에 첫 번째 방법이 처음 만났을 때의 좋은 감정을 기억하는 것이다. 좋은 감정을 늘 기억하는 것이다. 그 방법 중에 하나가 옛날 사진 들추어 보기 ...효과가 참 좋다.
   우리 주변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신앙적 의미를 붙여야 한다. 불신앙적인 의미를 붙이게 되면 내 스스로가 늪에 빠져서 결국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그리고 그분의 고난이 왜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그 분의 죽음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말씀하고 있다.
  14절에 보면 죄 없으시지만 우리처럼 고난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큰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레위지파에 속한 사람들로,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적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이었다. 대 속죄일날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레위지파에서 뽑힌 대제사장보다 더 크고 우월한 "큰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이다. 옛날의 제사장들은 속죄양을 잡아 그 양의 피로 제사를 드렸지만 그래서 매년 불완전하게 제사를 드렸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자신의 피로 '단번에'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자신의 피로 제사를 드리심으로 "피흘림이 없은즉 죄를 용서함이 없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만족시키고,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해 주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대 제사장이신 예수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자는 권면의 말씀을 14절에 하고 있다. 그분은 우리처럼 고난을 받으신 분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기에, 인간이 겪어야 했던 모든 고초와 시험과 유혹을 경험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지만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모든 고통과 유혹과 시험을 체험하시고, 급기야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체험하심으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신 그 의미를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가자고 한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죄 없으신 분이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참으셨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라고 말씀하고 있다. 만불보다 거짓된 인간의 죄성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가지고 죄성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는데  
① 죄는 우리 안에 불만이 많아지게 한다. 그래서 지지난주간에 히브리서 강해 할때 40년의 삶을 정리하면서 광야가 우리의 완전한 안식처는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다. 영원한 안식처에 거하지 못한 이유가 그들의 불평과 그들의 원망이라고 말을 한다. 불만이 많아 지면서 자꾸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그리고 ② 죄는 마음을 강퍅하게 만든다. 바로는 10가지 이적을 보고 마음이 더욱 강팍하게 하고 그러다 보니까 ③ 죄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더욱더 무서운 것은 죄에 대한 무감각에 빠지게 된다. 마지막 단계가 제일 무서운 단계이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영적인 미숙아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주일날도 한번 빠지는 것이 어렵지 두 번 세 번 빠지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돌아오기가 너무나 힘들다.
   이런 문제를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데 더욱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거스틴도 말하기를 "최선의 지식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믿음을 굳게 지키면서 히브리서 기자는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안디옥 교회는 초대교회에서 선교사를 처음으로 파송한 선교센타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은혜가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사람들이 주를 섬기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주를 섬긴다는 말은 주님께 예배한다는 말이다. 예배가 회복된 교회가 큰 일을 할 수 있다. 예배에 대해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자.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에 굳게 설 때 고난과 슬픔은 은혜로 바뀌게 될 것이다. 예수를 굳게 잡자. 100m를 달리는 단거리 선수에게는 순발력이 필요하지만,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선수에게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은 마라톤과 같다고 한다. 그러므로 얼마나 지구력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결정되는 것 같다. 신앙 생활도 하루나 이틀을 잘했다고 해서 잘한 것이 아니다. 일생동안 끈임없이 계속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신앙적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주님을 향해 걷던 그 길을 그대로 가야하고『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우리가 약하기 때문에 시험에 빠질 때도 있고 낙심할 때도 있고 중단할 때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기자는『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찌어다』(14절)라고 했다.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면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란 가장 알맞은 때의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누가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준다는 것인가?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신다는 말씀이다. 14절 15절에 나온다.
   14절에『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고 했고 15절에도『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영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했다.『그러므로 우리가 긍휼 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에게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①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②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분 ③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으로 말씀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예수님이 고난을 겪으신 분이 아니라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을 다 겪으셨다는 말씀이다. 체휼이라는 것은 체험이다. 이런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께 우리 담대히 나가자 예수님은 우리의 심장을 가지고 계신분이고 우리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계신다. 우리에게 때를 따라 도와 주시는 분이다. 담대히 나가자
    히브리서는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주어진 말씀이다. 어떤 사람들인가? 지금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이런 박해 때문에 고난에 못 이겨서 신앙이 불 신앙으로 가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주시는 말씀이다. 5:7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장면에 대한 말씀이라고 한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눅22: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예수님의 본은 고난을 통하여 온전케 하는 삶이었다. 8절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절"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은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룩했던 것이다..
   시119: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게 된다. 그래서 고난가운데 넘어지면 일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C. S. 루이스>는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 라고 말을 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는 말이다.
   이사야서 50장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비참한 순간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선택받은 백성들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는가? 우리도 살다보면 잘 살다가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선택받은 백성으로 승승장구 하다가 이제 그들의 죄로 인해서 3절의 말씀처럼 흑암이 덮은 삶을 살았다. 무너지는 경험을 한 것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나가가 망하고 이런 무너진 상황 가운데 이사야가 내놓은 고난 극복 대처 프로그램이 무엇인가? 50장 4절에 보니까? 이사야가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학자처럼 말하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학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이다.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야 고난 속에서 희망을 꽃을 피울 수 있다. 말씀을 많이 알면 알수록 그 말씀이 내 갈길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지난 주간에 내 말씀의 길잡이는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너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말씀이 나를 살려주고 나를 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어서는 것이다. 유대인의 교육방법은 암송시키는 것이다. 무조건 암송을 시키는 것이다. 자기의 학구적인 욕망을 가지고 가르치려고 하지말고 중요한 것은 성경책을 암송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통째로 외우는 것이다.
   우리가 많은 성경 공부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는 것이다. 우리가 성도로서 바른 신앙 생활을 위해서는 롬 12장이 정말 중요하다. 성도로서의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실천 사항이 12장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준다는 것이다. 아침마다 매일 매일 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깨우쳐 주는 것이다. 자꾸 자꾸 들어야 한다. 영적인 각성의 필요성은 듣는 훈련이다. 그래서 먼저는 들어야지 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힘들고 어려울 때 일수록 들어야 한다.
   내귀가 깨우쳐주시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다. 듣는 귀가 믿음의 귀로 듣게 된다는 것이다. 옛날에 이런 귀가 없을 때에는 들어도 늘 마음속에 불만이 있는 것이다. 나를 때리기 위해서 나를 치기 위해서 이 말씀 하는구나.. 그런데 그것은 내가 학자의 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듣는 귀가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고후 5장 7장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보는 것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것으로 한다는 것이다. 믿음으로 하는 것은 듣는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삶 가운데 고난이 찾아온다고 할지라도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거역하지도 않고 물러가지도 않고...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믿는다는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내 귀를 열어 주셨음으로 나는 주께 거역하지 않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나는 나를 때리는 자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가리지도 않았다.
  고난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잘 듣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견딘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자는 것이다. 예수님이 모델이 된다는 것이다.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셨다. 우리와 같이..그런데 우리도 역시 고난을 이길려면 듣는 귀를 가지고 순종함으로 고난을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7)세련된 지성을 가져라.(히 5:11-14)
(5)안식 할 때(히브리서 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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