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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04-06-30 17:26:41, Hit : 3151, Vote : 711
 (7)세련된 지성을 가져라.(히 5:11-14)


세련된 지성을 가져라.
히 5:11-14                             (2004. 6. 30 수요예배)
   오늘은 세련된 지성을 가져라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우리가 맨날 아이일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의 특성은 자신들만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다. 5섯살 짜리 아이하고 7살짜리 아이가 엄마 생일날이 되어서 선물을 사러 갔다. 아이들은 저금통장을 털어서 선물을 샀다. 예쁘게 포장을 해 가지고 엄마에게 선물을 드렸다. 흥분된 마음으로 아이들이 준 선물을 엄마가 열어 보았는데 작은 아이의 선물은 자기가 제일로 가지고 싶었던 장난감 자동차가 선물이었고 7살짜리형은 엄마가 아침마다 입술에다가 뭐 바르는 것을 보고 립스틱을 선물로 드렸다. 어린 동생은 자신의 입장에서 엄마의 선물을 준비한 것이고 7살짜리는 엄마의 입장에서 엄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선물을 산 것이다. 자식이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는 것, 아버지가 자식의 마음을 가지는 것, 그리고 목사가 평신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 평신도가 목사의 심장을 가지는 것 이것이 성숙된 모습이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서보는 것이다.
   피터팬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 피터팬은 어린이 동화책이 나오는 주인공이름이다. 피터팬은 영원한 소년이다. 그래서 항상 동화의 세계에 산다. 빗자루 타고 높이 날아다니면서 악당을 물리치는 동화 주인공이다. 그런데 피터팬은 늘 꿈속에 산다. 그래서 피터팬 신드롬이라는 말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남성들의 정신상태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한 개념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자신감 부족, 무책임, 무기력증 같은 양상을 설명하는 데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이것이 병이냐 장애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disorder 장애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몸은 어른인데 여전히 철부지이다. 인격의 부조화를 가지고 계속 철부지로 사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환상을 꿈꾸며 사는 사람이다. 원래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 실재하지 않는 세계를 말한다. 이런 꿈만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절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우리가 이상으로 삶아야 할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자리이다. 성인 아이들이 세계를 주름 잡는다고 한번 생각해 보라. 마마보이 같은 사람이 세상을 주름잡는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다. 인격적인 교육과 성숙한 모습이 정말 필요하다. 이것은 길리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사람은 자신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왜 공부를 하지? 나는 다 아는데? 성숙한 인격, 세련된 지성, 어른의 신앙을 갖자는 것이다.
    인격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성실한 사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특별히 성경에서 탁월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을 우리는 요셉이라는 사람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사람은 "어디에 사느냐"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에 집중한 사람이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위로는 10명의 배가 다른 형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요셉은 다른 형제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면서 살았는데 결국에는 애굽에 종으로 팔리워 가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졸지에 인생이 하류 인생으로 전락을 해버린 것이다. 요셉은 소년기는 자기 고향 땅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보냈지만 청년기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보내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환경이 바뀐 것이다. 좌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요셉은 끝까지 넘어지지 않는다. 그곳에서도 최선의 삶을 살았다. 이것이 성숙한 사람이다.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냐가 중요한 것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을 우리는 안다.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좋은 장소로 이동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교육열 정말 대단하다. 강남 같은 경우 집 값이 오른 것은 좋은 학원이 많이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좋은 장소로 이동하는 것, 신맹모삼천지교를 볼 수 있다. 강남에 사는 어떤 아줌마의 하루는 아이들과 하루를 시작해서 아이들로 끝난다. 멸치가 태평양에 간다고 고래가 되는가?  
    성경에서 정말 큰 사람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큰 꿈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그 큰 꿈이 요셉으로 하여금 성실한 삶을 살게 했다. 성실한 삶이라는 것은 최선의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신앙의 최선을 보였고 윤리적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최선을 보였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니까 "나는 왜 이렇게 살지?" 하면서 환경 탓하지 않았다. 그런 비참한 환경 가운데서도 환경을 뛰어 넘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보디발이 저 종은 정말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구나 저 사람이라면 내가 일을 맡길 수 있겠구나 해서 집안을 돌보는 집사를 맡기고 이렇게 성실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된 것이다.
   억울하게 옥에 들어갔지만 한을 품고 독을 품지 않았다. 내가 나가기만 해 봐라 절대로 그 아줌마 용서할 수 없어? 이런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손가락 하나 건딜지 않았는데 강간미수범으로 붙잡히게 된다. 억울하게 옥에 갇혔지만 옥중에서도 성실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았다. 이 사람은 성실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왜 이렇게 성실 했는가? 하나님 중심 신앙이기 때문이다. 어른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선의 삶을 산 결과 인정받고 존경을 받는 위치에 서지 않는가?
   최선의 습관을 기르자는 것이다. 사무엘 스미스 목사님이 그런 얘기를 했다. ‘게으름은 사단의 공작소이다’ 게으른 자가 시험에 쉽게 들고 게으른 자가 유혹에 자주 넘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게으름은 우리를 악하게 만드는 출발이 되고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죄 짓지 않으려면 열심히 살면 된다. 내게 맡겨진 일에 대해서 집중적인 최선을 다하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는다.
  부지런하고 열심을 다해 주를 섬기라, 성숙한 인격, 세련된 지성을 가지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인격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덧입혀져야 한다. 그래서 먼저 무엇인가 되기 이전에 사람부터 되라는 말씀이 있지 않은가?
  사 48장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패망의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낸다. 그런데 귀가 막혀서 듣지를 않았다.
사 48:3-5 "내가, 이미 옛적에, 장차 일어날 일들을 알려 주었다. 내가 직접 나의 입으로 그것을 예고하였고, 내가 그것을 직접 들려주었으며, 그 일을 내가 홀연히 이루었다. 내가 알기에, 너는 완고하다. 네 목 힘줄은 쇠붙이요, 네 이마는 놋쇠나 다름없다. 옛적부터 내가 네게 알리고, 아직 그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네게 들려준 까닭은, 네가 '내 우상이 이 일을 이루었으며, 내가 조각한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이 일을 명령한 것이다'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듣게 만들기 위해서 알리셨지만 고집을 꺽지 않았다. 고집이 쎈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가? 계속해서 강팍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음에 기경이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말씀이 들어가겠는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까 목의 힘줄은 무쇠요 네 이마는 놋쇠나 다름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이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말씀을 듣고도 변화하지 않은 것이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회복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엡 4:13절에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아야 분별력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은 성장을 통하여 어른의 신앙으로 자라날 수 가 있다. 호세아서에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힘써 알자는 것이다. 백성이 망하는 이유는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망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배우는 것이 너무나 따분하고 힘들기 때문에 공부하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 말씀에 대한 깊이가 있으면 있을수록 넘어지지 않는다. 목사인 나도 말씀 때문에 넘어지지 않고 사는 것이다. 나도 사람인데 우울증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때 그때 마다 말씀이 나를 붙잡아 준다. 지난주에는 이사야서 50장이 나를 잡아준 말씀이다. 아침마다 하나님의 말씀 듣자는 것이다. 새벽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원수가 나를 친다해도 내가 등을 갖다대고 내 수염을 뽑으려고 해도 내가 네 뺨을 댈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의 길이요 등이라는 말씀 우리는 알고 있다. 이사야도 그렇고 호세아서에도 말씀하는 것이 무엇인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해서 고생하는 것이다.
  몇 년 내가 신앙생활 한 것으로 내 신앙이 성숙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숙하다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말씀처럼 12절에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히브리서 기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인지 아직도 초보적인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고 들어야 한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직 나 중심, 이기적이고 시기와 다툼이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하면 탄식을 해야 한다. 육체는 성장했는데 정신은 어린아이이다. 그래서『듣는 것이 둔하다』,『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는 자다』,『젖을 먹는 자는 어린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단단한 식물을 먹으라고 한다. 장성한 자가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삶이 인격적으로 역사 하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나는 3년 동안 성덕교회 부목하면서 담임목사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을 했다. 담임목사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순종을 했다. 나는 잘 따르는 사람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믿었다. 내가 좋은 리더가 되는 길은 잘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담임목사님하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지금도 담임목사님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한 사람은 말씀이 꿀송이 보다 더 달다고 간증하고 있다. 본문 14절에『…저희는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지각을 사용한다고 했다. 분별력이 있다는 것이다. 연단을 받음으로 인해서 계속적인 훈련과 연습을 통하여서 분별력이 생겼다. 뭐가 옳은지 뭐가 그른지 이야기 하면 들을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세련된 지각을 받음으로써 연단이 되는 것이다.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훈련을 할 때 무한대로 뻗어 나갈 수 있다. 이렇게 단단한 식물을 먹은 사람은 영지작용을 할 줄 안다. 그래서 악한것과 선한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악한지 무엇이 선한지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면 되었다. 진짜 복된 사람 시편 1편의 말씀처럼 복인은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과 선인을 어떻게 판별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의인이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그 말씀에 푹 젖어 있는 사람이 의인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 단단한 것도 잘 소화해 낸다. 그런데 악인은 말씀이 아니라 꾀로 살아간다. 말씀으로 사는 사람과 떡으로만 사는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어른의 신앙과 아이의 신앙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어른의 신앙은 말씀으로 살지만 아이의 신앙은 기적으로 산다. 떡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다. 어른은 떡만 가지고는 안 된다.
   바울 역시 어린아이 신자에 대한 이야기를 고전 3장 1-2절에 보면 말씀을 하고 있다. 젖먹는 신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밥으로 하지 않고 젖을 가지고 상대했다고 했다(고전 3:1-2). 본문 13절에『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라고 했다. 저들은 의의 말씀(밥)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의 경우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산 교인들이 너무나 많았다.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아펐겟는가? 혈압이 있었으면 넘어갔을 것이다. 교인들 간에 시기와 다툼, 원망, 편당, 음행, 신자끼리 불신 법정 소송, 우상 제물을 먹음, 결혼 문제, 은사(방언, 예언, 병고침 등)문제, 부활 의심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왜 이렇게 많은 문제가 있었는가?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성숙할 나이도 되었는데 사사건건 문제가 생긴다. 이런 사람들을 바울은 육신에 속한자로 구분을 한다. 육신에 속한자는 교회는 다니기는 다니는 것 같은데 육체에 속한 것에서 늘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옛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아이 한번 생각해 보라 태어났다고 자라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똥을 주어도 먹을 것이다. 판단력이 없다. 이것이 먹는 것인지 못 먹는 것인지? 이렇게 판단이 서지 않으니까 아무것이나 막 집어먹고 배탈나고 ...아퍼하고.. 이것 마치 어떤 동물하고 비슷하다. 동물적인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다. 동물적인 욕망이라는 것은 화나면 화나는 대로 반응을 하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이렇게 사는 것이다. 늘 이기적이다. 항상 자기만 위해 달라고 한다. 늘 자기 중심적이다. 그러니까 스스로 서지 못하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사람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이다. 한참 키워야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육신에 속한자도 구원을 받았기는 하지만 신령한 세계에 들어오지 못하니까 늘 불평투성이다. 바울은 육신에 속한 자는 어린이라고 한다.
  유치한 것은 이해력의 부족이다. 이야기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특히 젊었을 때는 기성세대들이 하는 것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래서 어린아이 앞에서는 늘 조심해야 한다. 부드러운 것으로 밖에 먹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해력이 부족하니까 당연히 오해를 하는 것이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이해할려고 한다. 깊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통찰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전체를 볼 줄 아는 눈이 없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 나무에 너무 가까이 가면 숲을 볼 수 없다. 눈 앞에 있는 것 하나만 가지고 비판할 생각을 하고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바울은 고전 3장에서 이것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농사의 이치로 설명을 한다. 물을 주는 자가 있고 거두는 자가 있다. 이것만 보고 씨 잘 뿌렸고 물도 잘 주었고 잘 거두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씨뿌리느라고 고생했고 물주느라고 고생했다. 이것으로 끝이 나면 안 된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것은 하나님이 키우셨다는 것이다. 늘 영적인 미숙아로서 사람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늘 다툼과 분쟁이 있는 것이다. 나는 바울, 너는 아볼로,,그러면서 우리편이 아니라고 싸우는 것이다. 바울도 아니고 아볼로도 아니고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 안에 바울도 있는 것이고 아볼로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주셨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른의 눈이다. 바울이 더 수고했고 아볼로가 더 수고했고 이런것만 따지다 보면 유치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우상화되지 말자. 교회에서의 스타는 사람이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왜 어린아이 인줄 아느냐? 그것은 시기와 분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아이됨의 증거가 시기와 분쟁 아닌가? 그래서 누군가가 잘난 척 하면 그것 못 봐주는 것이다. 네가 똑똑 하면 얼마나 똑똑해...그래서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 가지 우리 중심적으로 나가지 못한다. 자기 중심적으로 가지말고 함께 일등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어렸을적 부터 이런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유대인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내가 질문하는 것 정답을 말하는 사람에게 사탕을 주겠다라고 말을 하고 나서 질문을 던졌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누구냐? 라고 질문을 하자 저요 저요 하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은 그 질문을 듣고 서로 심각하게 생각을 하더니 서로 모여서 상의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동시에 사울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래서 질문을 한 그 사람은 그 모든 아이들에게 사탕을 사주었다고 한다. 네가 먼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말하겠다는 것이 어른의 신앙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성숙한 인격과 세련된 지성을 가진 사람이다. 동역할 줄 아는 자가 되자 딤후 4;9절부터 22절 까지 읽어보면 17명의 사람들이 나온다. 물론 데마나 알렉산더 같이 사역을 반대한 사람의 목록도 나와 있지만 15명은 사도 바울의 사역을 도왔던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마치면서 자기 자신을 도왔던 동역자들에 대해서 소개를 한다. 롬16장 그리고 고린도전서 16장, 빌립보서 4장이라든가 골로새서 4장을 보면 자기를 도왔던 사람들의 명단이 쭉 나와 있다. 이것이 무엇인가? 사도 바울 혼자만의 사역으로는 이런 일들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도바울 곁에서 묵묵히 이름 없는 많은 사역자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바울은 어느 곳을 가든지 항상 동역자와 일하는 법을 배웠다. 혼자 일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다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혼자 살지 못하도록 남녀를 부부로 만나게 만들었다.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리가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에게서 배울 수 잇는 것이 무엇인가? 반대자를 품는 능력이다. 자신을 고릴라같이 생겼다고 말을 해도 그 사람 품는 것이다. 침묵이 최고의 가치인 것 같다.
   우리는 이 사람도 필요하고 저 사람도 필요하고 바울도 필요하고 베드로도 필요하고 아볼로도 필요한 것이다. 어른다운 성숙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원래 기둥이라는 것을 받치고 있는 것은 그 안에 있는 강철이다. 강철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기둥을 떠받치는 힘이다.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기둥을 떠 받칠 수 있는 그런 어른의 신앙을 가지자. 어린아이 때의 일을 버리고 어른의 일을 하라고 하신다. 자라나지 않는 식물이나 동물은 병든 것이다. 그 세계에는 생명의 싱싱함이나, 아름다운 꽃과 향기나 탐스러운 열매를 구경할 수가 없다. 주님은 겨자씨가 나무로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깃들인다고 했고(눅 13:19). 자란 식물에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있다고 했다(마 13:23). 우리를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고전 3:6,7).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 날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골 1:6).    장성하는 삶! 단단한 식물을 먹는 삶!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삶이다. 누구의 이야기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자. 단단한 식물을 먹고 충분히 소화시키는 장성한 성도들이 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6)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자(히 4:14-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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