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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06-10-12 13:54:51, Hit : 3475, Vote :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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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마당 악의 문제 - 어떻게 악에 대항 할 수 있는가?


제 3마당 악의 문제 - 어떻게 악에 대항 할 수 있는가?
  선과 악에 대한 문제는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교리들 중의 하나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과 온 우주 만물을 질서 있고 선한 세계로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지혜와 섭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만물에는 질서가 있으며 하느님의 선하신 의도로 태어난 피조물은 하느님으로부터 선을 나누어 받고 있다. 하느님께서 질서 있고 선한 세계를 창조하셨다면, 악은 어디서 왔으며 왜 존재하는 것일까? 이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의문거리이기도 하다. 이 질문은 오늘날 여러 가지 고통과 비인간적인 상황,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에서는 더욱 절박한 문제로 다가온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시기에 인간이 자유를 잘못 사용하여 저지른 악을 허용하신다. 하지만 악을 그대로 방치하지 아니하시고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신다.
  창세기에는 하느님께서 사물을 만드실 때마다 '보시니 좋았다'라는 표현이 매번 반복되어 나온다. 특히 인간의 창조 때에는 '매우 좋았다'고 하였다(창세 1, 4. 10. 12. 18. 21. 31).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존재로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알아듣고 그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인간에게 온 우주 만물을 선물로 주시며 그것을 다스리고 관리하도록 인간에게 맡기셨다(창세 1, 26-28).
  하느님은 당신 섭리로써 온 우주 만물을 그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인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도록 이끄신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자유로이 다스릴 책임을 갖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협력자"(고전 3: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밀과 가라지의 비유'(마태 13, 24-30)에서도 밀과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공존한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완전한 상태로 만들었다기보다 각 사물들이 자신의 본성을 가지고 보다 완전한 상태로 나아가는 '진행의 상태'로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이러한 계획에 따라 보다 더 완전한 것을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생성과 소멸, 건설과 파괴의 과정을 겪게 되며, 물리적 선과 물리적 악이 공존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들 중에 지성과 자유 의지를 가진 천사와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과 더 나은 선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궁극적 목적을 향해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어째서 착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가? 왜 예수 잘 믿는 사람이 가난하게 하는가? 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자유 의지를 가진 천사와 인간은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인 자유 의지를 가지고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여 선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천사와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유로이 죄를 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죄란 창조의 질서와 목적을 깨뜨리는 것으로서, 하느님께 대한 영광과 자신의 최종 목적인 구원을 위한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다. 여기에 윤리적 악이 들어오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나 천사가 타락하여 저지른 악에 대해 하느님께서 그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다만 하느님은 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주신 선물인 자유를 존중하여 그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구약 성서의 욥은 하느님께서도 악을 허용하시는가에 많은 의문을 가졌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를 헤아리지 못하여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느님은 피조물이 저지른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시는 분이시다.
  이 점에 대해 아우구스티스는 이렇게 말한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최상의 선이므로, 만일 악 자체에서 이끌어 내실 충분한 능력과 선하심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면, 당신의 피조물들 안에 어떠한 악도 존재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실 것이다."

1. 사랑의 하나님은 왜 악을 내버려 두시는가?
(1)사람들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로마서 5장 12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모든 악한 일에는 원인이 있다. 개인적인 책임이건 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한 결과 일 수 도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소 모든 상황에 하나님이 연루되어 있는 것 처럼 생각할 때 고심을 한다. 하나님은 왜 이 악한 상황에 간섭하지 않을까 전쟁을 종식시키고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지 않으시는 것일까 이런것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면 믿음이 손상이 된다. 하나님은 악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보다도 자유 의지가 더 귀중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악이 남아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 의지에 의해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이유이다. 하나님이 심심해서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기계를 만든 것 처럼 건전지를 넣으면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인형을 만든 것이 아니다. 마일 사람이 꼭두 각시 인형처럼 줄을 당기면 애정을 표현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실 것이다. 자유의지는 악이 존재하지 않은 상태보다도 더 귀중하다.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악한 일들 전쟁, 기아, 재앙, 폭력, 불의 이기심등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바꾸겠냐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자유 의지를 내어 주고 세상에서 악한 영향력을 사라지게 할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모든 악을 견디는 것이 좋을 만큼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신다.
   하나님은 왜 죄없는 아이가 죽도록 내버려 두실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 아닌가?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그와 동일하게 다른 중요한 요인들 때문에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은 노아 시대에 모든 악을 쓸어버리시고 여덞명만 살려 놓으셨다. 그러나 이것도 해결책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형편과 인간사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이사야 63장 10절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실제로 하나님은 모든 불의, 모든 고통, 모든 비애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탄식하게 한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다만 뒤로 물러가셔서 악이 관영하도록 놔두실 수도 없고 결코 그렇게 하신일도 없다. 하나님은 이제까지 악을 저지 하시는 역사를 멈추신 적이 없다. 공의라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친히 인간에게 주신 자유 의지를 넘지 않는 선에서 그분의 능력을 제한하신 것이다.
마태 23: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잠언 1장 24“ 내가 부를찌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찌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사 65:1-3 “"나는 내 백성의 기도에 응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내 백성은 아직도 내게 요청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나를 찾으면, 언제든지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던 나라에게, 나는 '보아라, 나 여기 있다. 보아라, 나 여기 있다' 하고 말하였다. 제멋대로 가며 악한 길로 가는 반역하는 저 백성을 맞이하려고, 내가 종일 팔을 벌리고 있었다. 이 백성은 동산에서 우상에게 제사하며, 벽돌 제단 위에 분향하여, 내 앞에서 늘 나를 분노하게 만드는 백성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이 세가지 하나님의 성품을 충족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다.
악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유의지라는 것이 악이 없는 것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에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자유 의지를 통해서 악을 다르시기로 결정하셨다. 자유의지에 상관없이 일하시는 법은 없다.  
(2)악이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의 성숙을 위한 것이다.
인간이 세상에 악을 가져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악이 존재 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으로 인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한 차원 더 높이고 악과 싸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숙시키기 위해서 타락한 세상과 이 땅에 존재하는 악을 사용하신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를 성숙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악을 사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한 가지는 우리 삶의 격전장으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모래 속에 머리를 쳐 박고 악이 없는 것처럼 시치미 떼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것을 이김으로 강해질 수 있고 지면 연약해지는 것이다.
  세상 속에서 우리를 성숙시키시기 위해서 고난과 역경을 사용하신다. 그리고 만약 기도했음에도 좋지 않은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을 우리가 성숙해질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우리가 시련과 고난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도 그 일에 압도당하지 않을 것이다.
  승리는 방탄유리 속에서 안전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이런 어려움을 성숙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벧전 4장 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는 매일 핍박과 죽음의 위협을 느끼면서 사는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편지를 보내면서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에게 찢김을 당하기 전에 이 편지를 읽고 온몸에 기름이 적셔져서 황제의 축제 기간에 인간 횃불이 되기 전에 이 편지를 읽었다. 베드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일을 겪을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그런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즐거워 하라고 한다.
   로마서 8장의 말씀 처럼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의 관계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야고보도 야보고서 1장 2-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험이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혹독한 시험 속에서도 소중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시련을 겪는다. 그러나 인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승리자이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고 고통을 당하셨지만 죽음을 당하여서 사탄의 죄와 죽음의 권세와 능력을 파하셨다.

2. 사탄이란 어떤 존재인가?
성경적인 세계관에 의하면 세상의 악 뒤에는 항상 악마가 존재한다. 악마를 뜻하는 디아블로(diabolo)는 히브리어의 사탄을 번역한 것이다. 성경은 사탄의 기원에 대해서 많은 언급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타학한 천사였을 것이라는 힌트정도가 있다. 이사야서 14장12-23 “웬일이냐, 너, 아침의 아들, 새벽별아, 네가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민족들을 짓밟아 맥도 못추게 하던 네가, 통나무처럼 찍혀서 땅바닥에 나뒹굴다니! 네가 평소에 늘 장담하더니 '내가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겠다. 하나님의 별들보다 더 높은 곳에 나의 보좌를 두고, 저 멀리 북쪽 끝에 있는 산 위에, 신들이 모여 있는 그 산 위에 자리잡고 앉겠다. 내가 저 구름 위에 올라가서, 가장 높으신 분과 같아지겠다' 하더니, 그렇게 말하던 네가 스올로, 땅 밑 구덩이에서도 맨 밑바닥으로 떨어졌구나. 너를 보는 사람마다, 한때 왕노릇하던 너를 두고 생각에 잠길 것이다. '이 자가 바로 세상을 뒤흔들고, 여러 나라들을 떨게 하며, 땅을 황폐하게 만들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사람들을 제 나라로 돌려보내지 않던 그 자인가?' 할 것이다. 다른 나라의 왕들은 모두 화려한 무덤에 누워 있는데, 너는 무덤도 없이 오물처럼 버려져, 칼에 찔려 죽은 군인들의 시체 더미 밑에 깔려 있다가, 지하 세계의 밑바닥으로 내려갈 것이다. 너의 시체를 사람들이 짓밟을 것이다. 네가 너의 나라를 황폐하게 하고, 너의 백성을 죽였으니, 너는 왕들과 함께 묻히지 못할 것이다. 너의 자손도 이 세상에서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아, 조상들의 죄를 물어야 하니, 그 자손을 학살할 준비를 하여라. 그들이 일어나 땅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아라. 그들이 이 땅 위에 성읍의 기초를 놓지 못하도록 막아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일어나 바빌론을 치겠다. 내가 바빌론을 멸하겠다. 그 명성도 없애고, 살아 남아서 바빌론의 이름을 이어갈 자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멸종시키겠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또 내가 그 도성 바빌론을 고슴도치의 거처가 되게 하고, 물웅덩이로 만들며, 멸망의 빗자루로 말끔히 쓸어 버리겠다. 만군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구약 성경 속에서 사단의 활동이 등장을 한다. (욥기 1장/대상 21장1절)

그리고 신약성서에서 그들의 활동은 더욱 분명히 그려진다. 악마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반항을 하는데 바울은 악마의 간계에 맞서야 한다고 한다. 에베소서 6장 11-12절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바울에 의하면 악마와 그의 천사들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간교하다. 그들에게는 권력이 있다.(통치자, 권세자, 지배자) 그들은 악하다. 따라서 우리가 적들의 강력한 공격 아래 있을 때 강해야 한다.

3.. 에베소서 6장 10-20절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자.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위치만 니는 “앉기, 걷기, 서기”라는 제목의 에베소 주석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기본적 기초를 말하는데 에베소서 1장부터 3장까지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지위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우리와 화해를 이루셨다는 것이다. 4장1절부터 9절까지는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할 책임을 설명한다. 매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서 계획하고 목표를 세우고 하루 하루 매순간 결정해야 하는 일과 행위마다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삶을 살아야 하고 모든 악독을 버리고...
  우리가 아들의 지위를 얻었으면 그 지위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6장에서 대적 마귀와 맞서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어둠의 세력들에 단호하게 맞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흠정역 성경에는 싸움대신 씨름으로 번역이 되어 있는데 씨름은 쉬거나 숨을 돌릴 틈을 주지 않는 다. 경기가 시작될 때부터 끊임 없는 집중을 요구한다.
  영적인 전쟁도 쉴 틈이 없다. 사탄은 우리의 순간적인 헌신의 열정에 감복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정월초하루에 이렇게 살겠습니다라고 결심을 하지만 2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우리는 그 결심을 잊어버린다. 이런 것에 사탄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삶이 느슨해지면 사탄이 우리를 공격해 들어온다.
야고보서 4장 7절-8절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4. 마귀의 전술은 무엇인가?
  사탄은 우리의 삶에 대하여 무서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을 읽어 보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마귀의 본질적인 목적은 도적질 하고 빼앗는 것이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빼앗으려 하고 인간관계를 빼앗으려 하고 기쁨과 평화를 빼앗으려고 한다. 우리의 믿음도 빼앗으려고 한다. 사탄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파괴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죄가 다가 올때 적과 맞설 것인가 아니면 마귀와 함께 설 것인가?
  사탄은 사람들이 멸망으로 이르는 길을 따라 가기를 바란다. 그 목적을 위해 예수 믿는 것을 막으려고 애를 쓴다.
  고후 4장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공격의 최고의 무기는 의심하는 것이다. 창세기에 보면 뱀의 모습으로 사탄은 접근을 해서 의심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정말로 말씀하시더냐” 이렇게 그녀의 마음에 의심을 불어 넣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속아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사탄은 광명한 천사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 2절에 마귀를 시험하는자로 말씀을 하고 있다.

5. 사탄이 사람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탄의 사용하는 방법을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1)허락과 형벌 - 창세기 2장 16-17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많은 것을 허락하셨지만 선악을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불순종하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탄은 허락한 많은 것들을 무시하고 금하신 한가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신 것을 무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탄은 형벌을 부인하게 만든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라고 말을 한다.
(2)불순종의 결과 -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생긴다. 벌거벗엇음을 알고 부끄러워하고 두려워 숨는다.
(3)깨어진 관계 - 모든 친밀한 관계가 깨어진다. 하나님은 그들이 어디 있느냐고 찾으신다. 모든 관계가 깨어지고 틈이 생긴다. 이렇게 우리가 죄를 짓게 만들기 위해서 사탄은 여러 가지 미끼를 우리에게 던진다.

신명기 18장 10-13절을 읽어 보라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을 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파멸로 이끄는 사탄의 미끼들에 대한 말씀이다. 구약성경에는 점술에 대한 활동에 참여 하는 것을 절대 금지 시켰다. 마술과 길흉을 말하는 것 혹은 접신하는 자들은 백성을 밖으로 끌어 내어져 돌로 죽임을 당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사탄은 엄하게 경고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아야 한다.
  강신술, 손금읽기, 영혼과의 접신, 별점, 마술, 밀교 이런 모든 것들은 성경이 엄격하게 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건강하지 못한 것에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6. 사탄이 우리의 삶속에 들어오는 세가지 통로
사탄은 우리의 삶속에 공격해 들어오는 세 가지 통로가 있다. 이 세 가지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한다.
(1)생각이다. 생각은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사탄으로부터 올 수도 있다.  대부분의 영적인 전쟁은 인간의 생각 속에서 일어난다. 옳지 않은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모든 악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력이 거룩하지 못한 악한 생각으로 더럽혀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 믿는 사람은 말씀을 상상해야 한다.
고후 10장3-4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우리는 견고한 진을 파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견고한 진들이란 잘못된 생각 불신, 낙담, 두려움,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들이다. 열등감 (너는 키가 작다. 너는 할 수 없다. 너는 가치없는 존재다) 이런 열등감의 갈고들은 우리들을 다른 사람과 경쟁하게 한다. 죄책감
  썩은 사과를 씹었을 때 자동적으로 뱉어 내듯이 악한 생각들을 자동적으로 뱉어내야 한다. 모든 악한 생각들에 대해서 경계를 서야 하는 것이 영적인 전쟁이다.
(2)마음 : 잠언 4장 23-27 절을 읽어보라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성경은 우리 몸의 중요한 부분을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보호 하라고 하신다. 팔다리는 없어도 살지만 머리나 가슴의 부상은 죽음을 가져 올 수 있다. 우리의 머리(생각) 우리의 가슴(마음)은 취약한 부분이기에 보호가 필요하다.
에베소서 4장26-27절에 “해가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라는 말씀이 있듯이 잘못된 태도가 마귀에게 공격의 기회를 줄 수 있다. 날마다 우리의 태도를 다스려야 한다. 하나님이 내 이빨을 닦아주고 옷을 입혀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닦아야 하고 내가 옷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충치가 생기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하지 않은 책임이다.
  어둠의 세력들이 우리의 잘못된 태도들에 대해서 조롱 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있고 성실하게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히브리서 12:14-15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쓴 뿌리의 모습이 드러날 때 지체없이 그것을 뽑아내야 한다. 나쁜 태도들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해가지기 전에 우리의 악함을 다스려야 한다. 쓴 뿌리가 확산되고 더 깊어지기 전에 우리의 삶으로부터 그것들을 뽑아내야 한다.
고집, 불순종, 자만, 교만, 불신등을 묵인하고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다.
벧전 5장 6-9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악한 영향력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해야 한다. 염려 두려움 불신의 감정등을 무력화 시켜야 한다. 사자가 으르렁 거릴 때 감정적으로 반응을 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 속에서 영적 성숙함이 있을 때 마귀는 마음이 편하지 못할 것이다.
(3)입 악한 마귀는 우리의 입을 조정한다.
잠언 18장 21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시편 141편 3절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욥도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고통 속에 있었지만 욥기 1:22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그는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 입술로 죄를 짓는 것은 너무나 많다. 생각하는 마음으로 하는 비판도 위험하다. 민수기 13장의 말씀처럼 부정적인 보고를 확신시키지 말자.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악한 말들은 다른 사람들을 더럽힐 수 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입술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의 삶속에 마귀는 접근 금지할 것이다.

7. 영적으로 강하게 되는 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요엘 3장 10절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우리는 영적인 전쟁에서 긴장해야 한다.
엡 6장 10절
성경은 우리에게 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성경이 강하라고 말할 때 우리는 강할 수 있다. 겸비하라고 할 때 겸비할 수 있다. 거룩하라 하면 거룩할 수 있다. 우리가 강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우리는 패배 속에서 살아 갈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암흑세계에서 건져 내시기를 원하신다.
골 1:13-14 “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7. 사탄의 공격에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의 장비로 완전무장을 해야 한다. 여섯 가지 장비를 에베소서에서는 이야기 하고 있다.
(1)진리의 허리띠 - 성경을 읽고 우리 삶에 적용을 시켜야 한다. 기독교 서적들을 읽으면 진리의 기준이 생긴다. 사탄은 거짓말쟁이이고 거짓의 아비이다.
(2)의의 흉배 - 의의 흉배라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도 야고보가 말하기를 마귀는 대적하고 하나님은 가까이하라고 말씀하고 있다.(약4:7-8)
의인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일곱 번 넘어진다고 할지라도 여덟 번째 일어날 수 있다.
(3)평화의 복음의 신 -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는다면 적의 공격에 대해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직장과 내 삶의 터전에서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면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것이 큰 자극이 된다.
(4)믿음의 방패 - 믿음이라는 것은 전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를 흔들어 놓기 위해서 의심의 화살을 던지지만 우리가 믿음이 강하면 믿음의 방패로 물리칠 수 있다.
(5)구원의 투구 - 이미 우리가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의심과 비난에 대한 해답이 있다.

8.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유지하며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탄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을 두려워하며 피한다.  
(1)기도이다. 우리는 기로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다. 영적인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도로 무장해야 한다.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하나님께 이야기 하고 듣는 것이다. 형식적인 기도가 힘을 주는 것이 아니다. 유다서 19-20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
(2)말씀묵상 :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읽는 것과는 다르다.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탄이 공격해 들어올 때 모두 신명기의 말씀을 사용하셔서 승리하셨다. 결국 사탄은 떠났다. 적들을 쫓고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돼새겨줄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것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3)교제 : 사람들과 악수하고 등을 두드리고 웃음을 나누고 껴안고 인사하고....
히브리서 3장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데살로니가 전서 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것 같이 하라”
(4)예수 그리스도 :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죄와 악을 없애시고 인간을 선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는 구세주이시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게서 이러한 면을 보고 이렇게 고백하였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 29. 36). 세례 요한의 선언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죄를 없애고 죄로 이끄는 악을 쳐부술 최후의 승리자이시다.
  예수님의 등장과 함께 그때까지 지배하던 악의 세력들이 물러나고, 악으로 인해 고생하던 이들이 해방되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악으로 인해 고생하던 이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죄와 죽음과 악을 이기는 힘은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순종, 온전한 자유를 가지고 순명하는 일이며, 성령과 함께 하는 삶,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이다.
  롬 5:21 "죄는 세상에 군림하여 죽음을 가져다주었지만 은총은 군림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게 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로마 5, 21)라고 하였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세례를 받는 일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것이므로, 죄의 권세에서 벗어난 이상 어떻게 그대로 죄를 지며 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로마 6, 2-8). 우리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의 권세를 벗어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지 말고 정의의 종이 되어 거룩한 사람이 되어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로마 6, 12-22). 그러므로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이 된다"(로마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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