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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06-11-23 07:25:46, Hit : 3991, Vote : 749
 제 9마당 성령론 & 은사론


제 9마당 성령론 & 은사론
1.성령은 창조에 참여 하였다.
창 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들을 있게 하시고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만들어 내셨는지 알 수 있다. 혼란스러운 삶에 질서와 평화를 주시고 해로운 습관들과 중독된 습관들에 자유를 준다.
   창 2:7  흙으로 만든 사람에게 영은 육체적인 생명을 가져다 주셨다.

2. 성령은 특별한 일을 위해 특별한 때에 특별한 사람에게 찾아 오셨다.
①예술가 브사렐 출 31:3-5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고”  성령이 채워지지 않아도 음악가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이런 일들을 위해 채워 질때 그들의 작품은 많은 경우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된다.
②지도자 기드온 : 성령은 개인들에게 지도력을 채워주셨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절실하게 의식화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물었다. 삿 6: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34절에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을 사로 잡자....
약하고 부적합하다고 할지라도 성령으로 채워질 때 교회의 뛰어난 지도자는 될 수 없다.
③강한자 삼손 : 삼손이 불레셋 진영에서 밧줄로 묶였을 때 삿 15장 14절에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물리적인 밧줄에 묶여 있지는 않지만 두려움 습관 죽음 등이 우리를 붙잡아 두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묶인 것을 풀어 준다.
④예언자 이사야 : 사 61장 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의 문제들과 부딪히면서 때때로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여 상한 마음을 싸매주고 마음속으로 증로로 포로 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신다.
3. 성령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구약의 언약은 끊임없이 깨어졌다. 무거운 짐처럼 생각되어지나 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그의 영을 우리 속에 불어 넣어 주실 때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그의 율례를 따르고 규례를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게 하셨다.
  아버지의 약속의 내용은 요엘서를 통해서 말씀 하신다. 욜 2:28-29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요엘은 하나님의 영은 나이와 성별 그리고 피부색 계급에 상관없이 모든 백성에게 풍성하게 부어주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모든 약속을 300년간 기다렸다. 마침내 예수님 이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의 영이 폭발적으로 활동을 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 하실 때 예수님은 또 다시 약속하셨다. 행 1:8 그래서 사람들은 기도했다. 드디어 오순절 날이 되었을 때 행 2:2-4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이 임했다. 아버지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구약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행 2:33절에 이렇게 말을 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묻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의 용서함을 받으라고 말했다. 그러면 그들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했다.
  우리는 지금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버지의 약속은 지금 이루어졌다. 성령은 특별한 사업을 위해서 특별한 때에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다.

II. 성령님이 하시는 일
요 3:5-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예수님인 거듭남에 대해서 니고데모에게 말씀 하시기를 영적출생과 육적 출생에 대해서 말씀 하신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육으로 태어나면 그는 한 가족에 거하듯이 영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 성령이 하시는 많은 일들 중 많은 부분은 가족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성령은 우리에게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확신을 주면 그 관계를 키워나가도록 도우신다. 그는 우리를 가족처럼 닮게 하시고 형제와 자매로 묶으신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까지 성령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과 우리가 예수님을 필요로 함을 깨닫게 하시고 진리를 확신하게 하셔서 그분을 믿도록 하는 것이다.

(1)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
롬 8장 1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바울은 선포한다.  그의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여기서 말하는 자녀의 권세는 영적인 신분을 의미한다. 롬 8장 14-1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최고의 특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녀는 친밀함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다.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곳이 없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의 영을 받을 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도록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상속자 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면 고난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와 내가 동일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고난은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과는 비교 할 수 없다고 바울은 말한다.
(2)관계를 발전시켜 준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그분과 시간을 함께 보냄으로 더욱 성숙해 질 수 있다. 엡 2:18절의 말씀처럼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①예수님을 통해 성령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롬 8장 26절 -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도우신다. 성령 안에서 우리가 사로잡히게 되면 기도는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 된다.
②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도우신다.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또 하나의 부분은 그분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다. 엡 1:17-1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영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다. 그분은 우리의 눈을 밝혀 주셔서 말씀을 이해 하도록 도우신다.
(3)가족처럼 닮게 하신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모습을 바꾸신다. 고후 3장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한다.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삶에 맺는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것들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삶 속에 보여주는 열매이다. 우리가 가족처럼 하나가 되게 하고 종파와 배경 그리고 인종이 무엇이든지 간에 한 성령이 살아 계신다. 엡 4장4-6절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하게 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는 서로 닮아 가는 것도 있고 또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 다양함도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르다. 각자가 헌신해야 할 바가 다르며 재능도 다르다. 이것이 바로 은사이다. 은사는 선물이다.

성령의 은사들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모든 은사는 성령을 통해서 부여하신다.
(1)성령의 은사와 은사들 (
성령의 은사와 은사들은 구분이 된다. 성령의 은사는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의 성취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에 부여된 것이고 성령의 은사들은 성령께서 주권을 가지고 기뻐하시는 대로 개개인의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다.
(2)은사들과 열매
고전 12장 8-10절에는 아홉가지 은사가 열거되고 있고 갈 5장 22-23 절까지는 아홉가지 열매가 나와 있다. 은사는 외부에서 부여된 것이지만 열매는 내부에서부터 생겨난 것으로서 나무 자체 생명으로 나온 것이다. 열매는 모든 각자의 생활 속에서 생겨질 수 있는 인격의 틍징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 (고전 1장 7절) 고 기록하고 있으나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열매는 부족했다. 사탄도 영적 은사를 모방하고 위조할 수 있지만 성령의 열매는 모방할 수 없다.
(3)영적 은사의 의미
성령의 은사는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①말씀 사역의 자격을 구비해 주는 은사들 : 사도, 예언, 가르치는 일, 복음전도, 지시과 지혜, 여러 가지 방언, 방언 통역, 영분별 등이다. (롬 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②실제적인 생활의 도움을 주는 은사들 : 이적, 신유 다스림, 도움
   각 사람의 은사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반드시 활용이 되어야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들어 쓴 비유가 몸과 지체의 비유이다. 개개의 지체는 몸 전체의 온전한 기능 발휘에 불가결한 것이다. 지극히 미미한 교회의 지체라고 할지라도 지극히 중요한 교회의 지체 만큼이나 필요하다. 은사는 선택이 아니라 선물이다.
은사의 목적은 은사 소유자들은 도구이다. 자신의 영광을 위한 수령자가 아니다. 엡 4장 12절의 말씀처럼 은사의 성질은 은사가 주로 봉사의 은사임을 지시한다.

(4)은사의 다양성
오직 한 성령을 통하여 많은 은사가 내려지지만 다양한 멜로디를 내는 것 처럼 다양함 속에 조화를 만들어야 한다. 공통적으로 분배된 은사는 없지만 또 한 그리스도인이 모든 은사를 모두가 가질 수 없다. 몸이 전부 혀가 아닌 만큼 모든 신자가 똑같이 말재주를 가질 필요는 없다.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120명의 사람들은 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5)은사의 등급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했다. 그것은 사랑이다. 이렇게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것은 우월의 문제는 아니라 섬김의 문제인것이다. 말씀 사역에 쓰이는 은사, 곧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능력을 지닌 은사야 말로 가장 좋고 높은 은사이다.그래서 모든 은사라고 동일한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고전 14장 5절에 “방언을 말하는 사람보다 예언하는 자가 더 위대하다.” 바울은 은사를 열거하면서 은사의 증요성의 순서를 정한다. 고전 12: 28절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바울은 교회안의 은사를 지적하면서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은사들과 교회에게 주어진 신령한 은사를 받은 사람과 구별을 한다. 에베소 교회에서 그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교회들에게 주어진 다섯 종류의 사역자를 열거하고 있다.

1. 은사 받은 사람들
(1)사도들 -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부활의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한정적 의미로는 부활 후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그리스도의 교회의 기초를 놓았던 12제자들의 공식적인 이름이었으나 후에 좀더 넓은 의미로 사도는 부르심을 받은 자를 말한다. 사도들은 단지 개교회만을 섬긴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위는 교회 전체에 있었다.
(2)선지자 - 사도와 마찬가지로 교회 전체를 섬겼다. 단순히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선지자는 감동을 받아 하나님에게 속한 깊은 것을 말하며 가르치고 권고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부름받았다. 그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 일치한다. (고전 14:1, 19, 22)
(3)복음 전도자 - 교회를 설립하는 자이며 교회를 튼튼히 세우고 유지하는 자는  목사와 교사이다. (4)목사 -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목사와 교사를 함께 묵는다. 양떼를 치는 것이 목자의 책임인 이상 교사와 목사는 피차 보완관계이다. 목사는 양떼를 악한 세력에서 보호해야 한다.
(5)교사 - 양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일이다. 교사는 연구와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2. 신령한 은사들
개개인에게 수여된 특이한 능력들이다.
(1)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고전 12:8) 영적 진리에 대한 직접적인 투시력이다. 연구보다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가운데 얻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방법에 관한 지식이다.
(2)믿음 - 이적을 행하는 믿음이다. (고전 13:27) 죠지 물러 처럼 꿈을 현실화 시키는 믿음이다.
(3)병고치는 은사 - 몸의 건강을 회복 시키기 위해서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여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여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전권적인 의지에서 효과가 나타나지만 어느 경우나 유효하지는 않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병이 다 고침을 받았다고 기록하지는 않는다. 바울은 신유의 은사를 소유했음에도 드로비모의 병을 고치지 못한채 밀레도에 머물게 두었다. (딤후 4:20) 또 디모데 병을 고쳐주지 않고 그의 자주 일어나는 비위와 병을 인해서 포도주를 복용하라고 권고했다.
(4)능력을 행함 - 아나니아의 삽비라의 죽음과 눅 16:17절에 있는 말씀 처럼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이다. 오늘날 선교 사역 가운데 때때로 이적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선교지의 형편이 초대교회의 형편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복음이 오랜 세월 동안 비침을 받아온 지역에서는 굳이 이적이 필요치 않다.
(5)영분별 - 이 은사는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을 구별하고 참교훈과 거짓 교훈을 구별한다.
(6)서로 돕는것 - 돕는것은 섬기는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사람들에게 행 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나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아마도 이것은 집사의 사역일 것이다. 이 사역의 범위가 넓게 나아가서 결국 가난한자, 병든자 노인 고아와 과부에게까지 미쳐야 한다. 이 은사는 하나님을 섬기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을 향해 무한정 주어질 수 있는 특별한 은사이다.
(7)다스리는 것 - 어떤 사역이든지 지휘권과 일정한 행정이 필수 적이다. 이 일은 언제나 좋은 인상을 준다고 말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무난하게 발휘해 나가자면 필수적이다.
  로마서 12장에는 이외에도 간략히 언급한 은사들이 있다. 권위하는 일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아 진리에 따라 행동하도록 격려하는 능력이다.) 구제하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이다.

3. 방언의 은사
오순절날 성령강림때 다른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주심으로써 제자들 주위에 있었던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놀랐다. (행 2:4-7)
   사동행전에는 다른 방언이고 고린도 전서에는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나온다.

다른 방언 (사도행전)알지 못하는 방언 (고린도 전서)오순절에는 모두가 방언을 말했다.(행 2:4)그러나 고린도의 모든 신자는 그렇지 못했다. (고전 12:30)모두가 알아 들을 수 있었다.(행 2:6)알아듣는자가 아무도 없었다.(고전 14:2)사람을 향해 말했다.(2:6)하나님을 향해 말했다.(고전 14:2, 9)통역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2:6)통역자가 없으면 금했다.(고전 14:23, 28)신자들을 위한 표징이었다.(행 11:15)불신자를 위한 표징이었다. (14:22)사람들이 놀라고 기이히 여겼다.(2:7,8)방언하는 자들을 미쳤다고 했다.(14:23)방언에 조화가 있었다.(2:1)혼란이 있었다. (14:33)

사도행전의 방언은 지성적이지만 고린도 전서에는 황홀적 음성의 지껄임이다. 고린도전서에서 방언을 금하지 말라고 하고 (14:39) 혹은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 너희가 다 방언을 말하길 원한다.(14:5)라고 말을 하지만 무조건 적인 진술은 아니다. 14장 5절인 경우 너희가 다 방언을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라는 말이 나온다. 14장 18절의 경우도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이 방언의 은사도 하나님이 친히 주셨기 때문에 실질적인 가치가 있으며 교회의 성장 및 발전에는 필요하다. 성령이 정하시는 차서에 따라 잘 활용하면 된다. 바울은 예언하는 자가 교회에 덕을 세우는 만큼 자기의 덕을 세우라고 한다. 그래서 방언 체험을 통해서 지극히 만족스러운 해방감을 느끼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아주 가까이 계심을 간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의 최선의 표적은 누구나 보고 모방할 수 없는 성질의 것으로써 자기를 중심으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의 봉사를 통해 나타난 변화된 생애이다. 우리 주님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라”라는 말씀처럼 변화를 요구하신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방언을 말하는자와 말하지 않는자 사이의 갈등이 있었다. 방언을 못하는 사람은 일급교인이 아니라 이급 교인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방언은 지을 도외시 할 만큼 중대한 기도의 형태는 아니다. 바울은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기도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이것의 함정은 영적 우월감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방언은사를 활용하고 있는 신약교회인 고린도 교회는 아직도 영적으로 미숙한 표시를 많이 지니고 있었다. 분당, 시기, 부도덕, 주의 만찬에 임하는 태도 등이 고린도 교회 안에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방언의 문제를 다룰 때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사랑에 입각해서 성령의 은사를 이해시키려는 훈련을 했다. 어떤 은사이든지 은사를 수여하는 일차적인 목적은 교회의 유익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공중 앞에서 방언을 하고자 할 때에는 통역의 은사를 지닌 자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고 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이 은사의 활용이 질서보다는 혼란을 일으킬 경우 그것은 잘못된 가짜 방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전 14:33)

4. 성령의 열매
요한 복음 15장 16절에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과실을 맺게 하려 함리라” 과실을 맺으라는 것이다. 기독교은 꽃의 종교가 아니라 열매의 종교이다. 갈라디아서의 9가지 성령의 열매는 그 앞에 나와 있는 육체의 일과 대조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갈 5장 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절에 17개의 육체의 일을 나열했는데 육체의 일이 성령의 일보다 훨씬 많다. 은혜를 지칭하는 말보다 죄를 지칭하는 단어가 더욱 많은 것은 우리의 타락 상태를 입증하나고 Faussett 가 말을 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3개씩 3분법으로 나눠질 수 있는데 처음 세부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두 번째는 동료 인간관계에서 세 번째는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서 이상적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열매가 나타나는 영역은 경험의 영역 행동의 영역 그리고 인격의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1)경험의 3분법 - 사랑, 희락, 화평
성령 충만한 신자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엡 3:18),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 (벧전 1:8),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빌 4:7)
사랑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바람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이룻을 사랑함으로써 응답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속에 성령이 활동하신다는 증거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커지는 것이다.
기쁨 - 고통가운데서도 체험할 수 있는 기쁨이다. 요한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이 기쁨은 외부 환경에 달려 있지 않다. 리차드 범브란트는 그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오랜 세월 감옥에 있으면서 잦은 고문을 당했지만 이 기쁨에 대해서 이렇게 썻다. “아무도 없는 감방 안에서 춥고 배고프고 누더기를 걸친 채 나는 매일 밤 기뻐서 춤을 추었다. 때로는 기쁨이 흘러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폭박해 버릴 것 같았다.”
화평 - 샬롬은 온전한 건강함, 잘있음  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부활후 첫 번째 인사도 평안이었다.
(2)행동의 삼분법 - 오래참음, 자비, 양선
    오래참음은 patience 인내라기 보다는 longsuffering 이다. 오래참음 이다. 다른 사람의 어리석음과 만행에 대해서 오래 참는 것이다. 핍박하는 사람에 대해서 참는 것이다. 보복하기를 더디하며 보복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열매는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출 34:6 하나님의 속성을 닮는 것이다.
  자비 - 이웃에 대해서 친절한 성격이다. 고후 10:1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하여 온유한 마음이다.
양선 - 능동적인 친절행위이다. 엡 5:9-11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양선은 선행을 많이 행하던 도르가 처럼 반드시 외부로 나타나는 친절행위이다.
(3)인격의 삼분법 - 충성 온유 절제
충성 - 행동은 인격의 표현이다. 나의 행동이 나를 결정해 준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는 완전히 거룩하고 건전한 인격속에서 표현된다. 하나님이 모세를 임명할 때 히 3:5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충성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청지기가 해야 할 일은 충성이다. 마태 25장에 나와 있는 달란트 비유에서처럼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주님의 칭찬을 받아야 한다.
온유 - 온유는 길들여지는 것이고 축복의 근원이다. 연약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기꺼히 내려놓는 마음이다.
절제 - 강한 손으로 붙잡는다라는 뜻이다. 감각적인 정욕을 다르리는 것이다. 고전 9장 25절에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좋지 못한 수르 그리고 안일한 방종은 경기에 임하는 자에게는 적합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자기를 쳐서 복종 시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육의 결과가 아닌 성령의 열매이다. 절제는 자기가 자기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의 강한 역사이다.
갈 5장 16-18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므로 우리가 성령의 9가지 인격적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 이 모든 성품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그대로 생활 속에서 드러내셨던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의 삶 속에서 열매를 맺도록 성령께 의탁해야 한다.





제 7마당 물질론 - 그리스도인의 바른 재정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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