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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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04-06-10 11:50:28, Hit : 4684, Vote : 680
 (7)민수기 12장 /아론과 미리암의 모세 비방


12장 아론과 미리암의 모세 비방
◆개  요
1-3 모세를 비방한 아론과 미리암
4-8 아론과 미리암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
9-16 문등병에 걸린 미리암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세롯에 있을 때 일어난 사건이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휘한 것이 발단이 되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을 비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운 지도자인 모세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전개된 것이다.
◆본문 살피기
(1)모세가 취한 구스 여자는 어떤 여자인가?
  구스는 지금의 이디오피아이다. 구스 여자와 결혼한 것은 출 34:16절의 율법인 이방여자와 결혼한 것을 어긴 것이 되는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특혜를 준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출 34:16절은 이방여자란 가나안여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조상이 된 라합, 룻, 다말 이 모든 여자들이 이방여자 들이었다.
(2)왜 하나님은 아론과 미리암을 책망하시고 모세를 옹호 하셨을까? 그리고 미리암이 문등병에 걸린 이유는 무엇인가?
  2절에 보면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표면상 드러난 비방은 구스 여자를 취한 모세의 잘못이지만 내면에는 모세의 지도력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비판을 했다. 그리고 그 비판의 주모자는 미리암이었던 것 같다.
(3)하나님은 모세를 어떤 사람으로 인정을 했는가?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
(4)하나님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먼저 세사람을 회막 앞으로 나오게 했다 그리고 말씀 하셨다.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6-8)
(5)하나님이 진노하자 미리암은 어떻게 되었는가?
  문등병에 걸렸다.
(6)문등병이 걸렸을 때 아론은 어떻게 했는가?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다 내 주여 우리가 우매한 일을 하여 죄를 얻었으나 청컨대 그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로 살이 반이나 썩고 죽어서 모태에서 나온 자 같이 되게 마옵소서 (11-12)
(7)하나님의 책망과 징벌을 받은 아론과 미리암에 대한 모세의 태도는?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13절) 용서와 온유로 대했다. 문등병에 걸린 미리암을 위해 기도했다. 비방하는 자에 대해서 맞서서 싸우기 쉽지만 인내와 용서로 대했다. 우리는 우리를 비방하는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겠는가?
(4)모세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미리암은 몇일 동안 집 밖 나가 있어야 했는가?
   7일(레위기14:8) - 문등병에 걸린 자는 부정한 자이기에 7일 동안 격리되어야 했다. 7일동안 진군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5)그의 아비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 지라도 그가 칠일간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는 무슨 뜻인가?
  히브리 사람들은 얼굴에 침 밭는 것은 대단한 수치이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자식의 행위를 묵과 할 수 없을 때 행한 조치였다. 그렇게 수치와 망신을 당한 자식은 7일간 근신하게 된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모세의 중보기도로 인해 하나님께서 미리함의 문등병을 고쳐 주시기는 하겠지만 미리암 역시 7일간 격리 기간을 통해서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근신하여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지라도 부끄러움과 그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민수기 12장 의미찾기
◆가장 온유한 사람
   지도력을 이야기 할 때 세가지 부류로 이야기한다. 첫째가 " 강압적 지도력(Coercive Power)이다. 강제적 수단을 사용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명령에 따르게 하는 그러한 지도력이다. 주로 독재자들이 이 지도력 형태에 속한다. 이것은 일시적으로 순종하는 것 같지만 마음속에서는 계속 반항만 누적된다. 결국 무너지고 한다.
   두번째는 실리적 지도력(Utility Power)이다. 네가 내 말을 들으면 네게 유익할 것이다 그런 이야기이다. 나 하라는 대로하면 그러면 보너스도 주고 승진도 시켜주고 그래서 이제 보상을 많이 주겠다는 식으로 사람을 유도한다. 이것은 당근을 주는 것이다. 말을 훈련시키는 조련사가 한 손에는 채찍, 한 손에는 당근, 이 둘로 가르친다고 하는데 그런 유형의 지도력이다
세 번째는 원칙 중심의 지도력이다.(Principle-centered Power)이다. 문제는 지도자는 그 자신이 먼저 원칙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도력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건 존경심에 바탕을 두게 되는데 따르는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이다. 이런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그 지도자의 온유함과 덕성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요즘 감성지는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 잔머리로 가는 것이 아니다. 성품이 지능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을 만들어내는 사회가 중요한데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이런 것이 부족하다.
   이런 감성지능을 가진 사람은 자기를 존중할 줄 알고 자제력이 있고 일관성도 있고 지구력도 있고 자기 동기를 부여할 줄 아는 그런 지능을 말하는 것이다. 마치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경주자와 같다. 자기를 쳐서 늘 자기를 복종하는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은 하나님께서 모세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 중에 모세가 가장 온유하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이야기이다. 지도자가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것이다. 에티오피아 여자를 소실로 맞았는데 실수가 실수인 만큼은 다른 사람들은 다 속으로 비난했는지 모르지만 그 누나와 형은 정면으로 비방을 한다. "어찌 네가 그럴 수 있느냐? 하나님의 사람,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
   그러나 그들의 비난은 대안적 비난, 정말로 모세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비판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도력에 대한 도전을 한다.(2절) 그래서 하나님이 화내신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모세는 모든 사람보다 가장 온유하다, 그런고로 저 사람은 내 사람이다." 라고 그의 충성은 최고라고 칭찬하고있다. 하나님은 모세 편을 들어주신다.
   그런데 정말 모세가 온유한 사람인가? 아니다. 혈기 왕성한 사람이다. 다혈질의 사람이다. 애굽 사람 마음에 안 든다고 애굽 사람을 당장에 쳐죽인 사람이다. 하나님이 새겨 주신 소중한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걸 보고 분노해서 비석을 내 던진 사람이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이제 또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고 하면서 모세를 원망하고 모세를 죽이겠다고 그러고 이럴 때에 모세가 화를 내면서 반석을 그대로 두 번 혈기로 내려치는 그런 죄를 범하는 사람이다. 혈기가 충만한 사람이고 다혈질의 사람이다. 그런 모세를 하나님이 "저의 온유함이 모든 사람보다 승하니라" 라고 인정해 주신 것이다.
   신약에서의 다혈질의 대표적인 사람은 베드로이다. 대책없는 돈키호테 같다. 종잡을 수 없다. 주님이 입다물고 있으라고 해도 떠들고 감정대로 산다. 열 받으면 칼을 빼서 귀 짜르고 주님 다른 놈들은 다 배반해도 나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겁니다. 장담하고 그만 부인하고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는 모습보고 겁없이 물위로 뛰어들고 ...
  예수님은 베드로의 성격이 무엇인지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주목하고 그를 사용하신다. 짱돌이 반석이 된 것이다.
  다혈질의 성격 소유자가 결단력이 강하다. 열정이 있다. 말씀 듣고 은혜 받고 즉시 순종한다. 다혈질의 사람도 치료받으니까 엄청난 사람이된다.
   다혈질의 사람에게는 꾸중보다는 격려가 필요하다. 꾸중하면 좌절한다. 베드로도 고기 잡으로 고향으로 내려갔을 때 예수님이 격려하고 위로하고 사명을 주신다. 예수님이 인정해 주니까 목숨을 바쳐서 주님 위해서 산다. 남편이 다혈질이면 격려해 주라. 당신 멋진 남자라고 그리고 당신처럼 멋진 남자하고 사는 나는 행복한 여자라고 그러면 그 남편은 부인 위해 목숨건다. 예수님의 격려가 베드로가 베드로 되게 한 것이다.
   오늘 말씀에 모세가 온유한 사람이라고 한다. 온유란 말은 히브리말로는 '아나바' 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안와'이다. 굽히다, 굴복한다, 혹은 절을 한다, 구부린다, 낮아진다, 그런 뜻이다. 그런데 굴종이 아니라 스스로 굽히는 것이다. 무서워서 굽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기를 낮추고 스스로 자기를 굽히는 마음, 이것이 온유이다. 자기를 길들이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살아있을 때 부드럽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 젊은 사람이 부드럽다. 그래서 허리도 유연하고 뭐 팔도 유연하고 살도 부드럽다. 그런데 나이 많아지면 굳어진다. 죽은 사람은 뻣뻣하다. 생명은 부드럽다. 오히려 여유가 있을 때 더 부드럽다. 마음도 죽은 마음은 굳어 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는 온유하다"라고 말씀하신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여덟 번째 열매가 온유이다. 성령 받은 사람 온유하다. 사도행전에 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들 온유했다. 시편 37편 11절이나 마태복음 5장 5절에,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말합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온유한 사람이 나약한 것 같지만 그런 사람들이 땅을 차지한다고 했다. 차지한다는 말은 왕권을 얻는다는 뜻이다. 구약에 보면 이삭 역시 온유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이삭을 축복하여 창대하고 왕성하여 큰 부자가 되게 했다. 그런데 불레셋 사람들이 시기하여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 그리고 그 땅에서 떠나가라고 하였다. 불레셋 사람이 와서 판 우물을 막으면 또 파고 또 파고 대항하지 않았다.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아니하고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에 우거하였다. 결국 이것으로 인해서 우물 세 개를 판다. 이삭이 온유했기 때문에 우물 세 개가 생긴 것이다. 참을성도 많고 마음이 온유한 이삭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이삭을 크게 축복하였고 마침내 아비멜렉도 이삭을 찾아와 화해를 청했다. 마음이 온유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강한 것은 멸망하지만 온유한 것은 살아 남는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모세의 온유를 자세히 보면 그는 자기의 정체를 잃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그는 온유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그를 불러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라" 할 때에도, 사실은 그가 이 능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끝까지 말을 못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나는 애굽에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런고로 애굽에 갈 수가 없습니다. 또 애굽에서 40년 동안 바로의 궁전에서 사랑을 받고 신세를 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배신한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나는 바로의 궁전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 말을 해야되겠는데 못한다. 절대로 갈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말을 잘 못합니다"라는 핑계를 댄다 그럴 때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입을 지은 자가 누구냐? 가라면 가"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자기 생각, 자기의 두려운 마음, 인간적인 지식, 판단, 다 버리고 굽힌다. 그래서 소명을 받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순간 그는 참으로 온유한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함이나 허물을 다 생각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그대로 수용한다. 이게 온유함이다.
   비방을 그 어려운 공격을 다 그대로 받아들였다. 또한 공격하는 자를 공격하려고 하지도 않고 비방하는 자를 비방하지도 않았다. 모세는 할말이 없겠는가? 형도 금송아지를 섬긴 주도자이다. 그러나 비방하는 자를 비방하지 않는다. 그대로 받아들인다.
   온유함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교만한 자는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온유해지고 낮추고 낮춰지고 나면은 거짓말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정직하다.
   자신을 비판하는 형제를 미워하지도 않고 조용히 이 비판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모세가 변화된 증거를 알 수 있다. 나쁜 놈 하면서 나쁘다고 할 때 나쁜 놈한테 나쁘다고 하는데 뭐 어쩌란 건가 하면서 수용하게 된다. 그 참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이 사람은 온유하다고 한다.
  모세가 화가 났으면 그래 너 한번 해봐 너는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면서 자신이 받은 사명을 내려놓지 않았다. 베드로는 예수님 부인한 후에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도저히 예수님의 길을 따라 갈 수 없어서 자신의 옛 직업으로 돌아간다. 직무유기 한다. 맡겨진 사명을 포기한다. 그런데 모세는 그러지 않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죄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본래 죄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쓰셨고 나를 통하여 위대한 역사를 이루신 그건 하나님의 역사일 뿐이지 나 자신의 의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분노하는 것이 없었다. 이것이 위대한 점이다. 어려운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거룩한 사명은 그대로 지켜가려고 했다. 이것이 온유이다.
   모세는 자신의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고 자기 감정을 잘 다스렸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는 쉽게 분노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약1:19-20 - "성내기를 더디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라고 했으며 잠16:32 -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 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시37:8 -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고 했고,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이르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한다고 했습니다. 엡4:26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분노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반드시 마귀가 틈타게 된다. 마귀는 우리에게 분노하게 하기도 하고 그 분을 오래 품게 하기도 한다.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분노하고 화내게 역사 하는 것은 사탄 이 하는 일이다.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는 분노와 감정을 잘 다스리고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13절에 -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온유란 소극적인 면에서 대항하거나 보복하지 않으며 자기감정과 분노를 억제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를 용서하는 것이다. 자기를 비방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자들에게 모세가 취한 태도는 기도였다.
    그래도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모세는 므리바 물가에서 백성들이 목마르다고 불평했을 때 화를 내었고 분노하여 지팡이를 가지고가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 패역한 자들아 내가 반석에 서 물을 내라 하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쳤다. 물은 나오게 했지만 그 일로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함과 믿음을 보여주지 못 했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중에 죽게 되리라고 했던 것이다. 이때 모세가 얼마나 억울했겠는가? 그러나 모세는 아무런 불평이나 항변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책망의 말을 듣는 순간, 아차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하나님 그래요 제가 또 실수했어요 지도자로서 하나님 의 거룩함을 나타내지도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불평하거나 항변하지 아니했을 것이다. 이것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의 삶이요, 온유한 자의 처신이다.
   다윗을 살펴보면 다윗은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진 사람이다 그가 온갖 비난을 백성으로부터 받을 때 왕관을 집어 던지지 않았다. 그리고 초야에 묻히지 않았다. 그냥 회개한다. "나는 어머니의 태로부터,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낳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본래 그런 사람입니다" 회개하는 다윗도 훌륭하지만은 회개하고 왕의 현직에 그대로 지켜갔다고 하는 것 이것이 더 위대한 것이다. 이것이 온유한 사람이다.
   우리나라도 특권층의 자살이 많았다. 그런데 자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이 자살을 했다. 자살의 죽음이라는 것은 '자아 통제력의 상실'이다. 내가 나 자신을 통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극단의 무력감으로 자살을 택한다. 더 많이 가진자들이 느끼는 주관적 의식은 엄청나다. 어떤 일류 호텔의 주방장이 파티에 쓰일 굴이 늦게 도착을 해서 자신의 명예가 더럽혀졌다는 이유로 자살을 했다. 자아도취적 성취감 속에서 살았는데 그런 것들이 무시되니까 무산소 상태가 되어서 정신적 공황에 빠지게 되어서 자살을 하는 것이다. 정말 온유한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다. 회개하고 다시 바른 길을 돌린다.
   아놀드 토인비는 권력의 시작과 권력의 장악과 권력의 몰락을 이야기 하면서 역사라는 것은 권력이 세워졌다가 몰락하고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이런 것이 역사라고 한다. 그런데 이 권력이라는 것은 과식, 거만, 재난, 이 세 단어에서 끝난다고 했다. 과식, 음식을 좀 많이 먹는 것처럼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는것. 이것이 첫째이고, 그 다음에 또 거만해지고 교만해지고 포악해져서 재난을 당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오직 온유한 사람, 그만이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권력과 능력을 더해주시는 것이다. 모세는 정직했다. 온유했기 때문에 정직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온유한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하시고 모세 편을 들고 미리암을 쳤다. 분명히 온유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사람을 대할 때 온유하자.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아는 만큼 사랑하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깨닫는 만큼 자기가 존귀한 사람이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 수준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불평하지 않는다.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자족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나를 쳐서 항상 복종한다. 그래야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다.
  애굽에서 430년간의 노예살이로 인한 식민지근성 때문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래 불평불만이 많았다. 그들의 광야 40년은 불평의 시간이었다. 지난주에 공부한 11장은 고기 달라는 불평이다. 그리고 12장은 지도자인 모세에게 불평을 한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과 형 아론이 문제를 일으킨다. 그 문제의 내용은 모세가 에디오피아와 여자와 결혼하였는데 이 문제를 가지고 비방한다. 하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진노하셔서 누나인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다(1-10절). 이것을 본 모세가 미리암을 고쳐달라고 기도 드리자 하나님께서는 미리암을 7일 동안은 진영 밖에 가두어 두었다가 그 기간이 지나면 다시 들어오게 하라고 허락하셨다(13-14절).
   미리암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것은 모세를 비난한 것 때문이 아니다. 2절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고 말을 한다. 사실 1절과 2절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1절의 문제는 모세가 하지 말아야할 결혼을 한 개인적인 문제이고 2절은 사회적이고 공적인 문제이다. 오늘날로 말한다면 지도권의 문제이고 대권의 문제이다. 어찌 모세만 이 나라의 최고 대권을 질 수 있는가? 자기도 해보겠다는 말이다. 개인적인 문제는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미리암과 아론은 사실 지도자에 대한 구테타를 일으킨 것이다. 본래 목적이 드러나면 부끄럽기 때문에 모세가 구스 여자와 결혼한 것을 비난의 이유로 내세운 것이었다.
   구스 여자 취한 것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누나와 형으로서 그런데 그들이 몰랐던 것은 모세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경히 여긴 것 같다. 미리암과 아론의 가장 큰 죄는 비난했다는 사실이나 모세를 업신여겼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밑에 깔려있는 하나님께서 하신 하나님 주권에 대하여 대항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미리암이 중징계를 받아서 7일간 전진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빨리 출발해야하는 처지였지만 출발하지 못하고 일주일간 진 밖으로 나가있는 미리암이 돌아올 때까지 출발하지 못했다(14-15절).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면서 진 밖의 미리암이 한 일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교육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는 먼저 좋은 따르는자가 되어야 한다. 여호수아 1장은 이끄는 사람과 따르는 사람의 끈끈한 정을 볼 수 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광야생활이 아니라 가장 호전적인 민족들이 득실거리는 가나안으로 이 백성들을 이끌고 가야 한다. 그때 하나님은 강하고 담대하라고 한다.
  물론 여호수아의 지도력도 중요하지만 백성들도 잘 따른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신뢰했다. 서로의 입장에서 격려해 준다. 그리고 각자의 주어진 사명을 다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체말고 3일 안에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을 점령할 준비를 하라고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즉시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했던 것처럼 여호수아를 따르겠다고 다짐을 한다. 이끄는자와 따르는 자의 아름다운 조화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강한 적들을 격퇴하고 가나안 정복에 성공한다.

◆억울한일 당할 때 - 비방받는 모세가 어떻게 대응했는가?
(1)억지로 자기방어를 하지 않았다.
   때때로 변명이 해결책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변명을 한다. 아담이 자신이 한 일에 떳떳하다면 변명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변명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여자가 나에게 이 열매를 주어서 내가 먹었습니다. 그렇게 화와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한다. 이제는 여자에게 책임 돌리고 있다. 책임을 회피하는 존재는 노예와 같다. 노예는 책임지지 않는다.
   다윗왕은 변명이 없었다. 다윗은 참회 시편에서 보면 밧세바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 밧세바가 먼저 옷 벗고 목욕을 하는데 남자치고 안 넘어갈 남자가 있겠는가? 하면서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았다. 이것은 밧세바의 의도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다윗은 그냥 엄청나게 잘못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그 사실로 인하여 지금 아담은 엄청나게 쫄아 있는 상태이다. 왜 쫄아 있는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 졌기 때문에 쫄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끄러움이 생겨서 자꾸 피하는 것이다. 이런 부끄러움이 있는 사람은 사람 만나는 것이 싫고 전화하기도 싫고 전화 받기도 싫고. 가능하면 아무도 안 만나고 살았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이다. 그 사람은 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반가워야 한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야 되는데 남들 다 웃을 때에 웃지도 않고, 자폐증 환자같이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며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왜 지금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 왜 나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이다. 그리고 변명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지 못한 채 변명하는 것이다. 변명하니까 자꾸 남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죄의 또 다른 결과는 피조계 전체의 타락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끊어지고 사람과 자연의 관계도 파괴되었다. 피조계 전체가 고장난 것이다. 지음 받은 본래의 목적을 상실했다. 사람의 경우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12절 말씀을 보면 하와 때문에 죄를 지었다며, 아담이 하와를--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원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그들은 아 당신은 나의 갈비뼈 얼마나 친근한 사이인가? 하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은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마취 시켜 놓고 아담의 몸에서 여자가 나왔다. 남자가 죽어야지만 여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자신의 갈비뼈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은 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라는 공개적인 서약이다. 이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아멘 하는 것이 결혼이다. 목숨을 바쳐서 아내를 얻었고 신랑 되신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 아닌가? 목숨을 바쳐야 얻을 수 있는 귀한 존재인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포기하면서 아내를 얻게 되는 것이다.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는 고백이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게 아니다. 이 얼마나 애틋하고 확실한 관계인가? 그런데 죄가 들어오자 이 부부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원망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16절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는 말씀은 차라리 저주성 예언에 가까운 것 같다. 죄를 짓기 이전에는 평등한 관계였는데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변해버린 것 같다. 그러니까 원만한 부부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에머슨은 "지성이 풍부한 사람은 결코 변명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서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전도서 기자는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고 했다. (전 5:2)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몇 마디 말보다 오히려 침묵이 낫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 식구들이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쏘고 있다. 자신을 누구보다 이해해주고 감싸주어야 하고 대변해 주어야 할 자들이 지금 적이 되어 공격하고 있다. 모세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고독 속에 쌓일 때 사람들 앞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주님도 그러하셨다. 빌라도 앞에서 심문 당하실 때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당시 제사장들과 바리세인들, 많은 기득권자들이 주님을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몰아 부쳤을 때 주님은 저항하지 않으셨다.
   거짓증언자들이 예수님의 언행을 왜곡했을 때 주님은 침묵하셨다. 주님은 매를 맞으실 때나, 옷을 제비뽑아 빼앗길 때나, 수많은 청중들이 그를 향해 야유를 퍼부을 때도 침묵 하셨다. "정말 하나님의 아들 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조롱했지만 주님은 침묵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죽음의 쓴잔을 마셨다.
   그러나 결국 사람들은 주님께서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구원이 이땅에 임했다는 사실을 믿게된 것이다. (막 15:19 / "로마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고백했다.)
   잠 16:32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다.
(2)모세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했다.
   모세가 억울함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람들을 향해 침묵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 때문이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낼 때 얼마나 답답한 일들을 겪었는가? 사람들의 원망, 불평이 빗발칠 때에도 모세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오직 하나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했다. (롬 12:19) 모세가 조용히 침묵하고 기도 하였을 때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회막으로 나오게 하셨다. "내 말을 들으라. 너희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 하느냐?"고 했다. 드디어 하나님은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한 문제로 모세의 지도권을 도전하였던 아론과 미리암의 행동을 책망하셨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떳떳하다면 우리를 비방하는 자가 있어도 괴로워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자는 것이다.
(3)모세는 복수보다 사랑을 택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비방하던 미리암의 피부에 문둥병을 내리셨다. 이제 모든 상황은 모세 편으로 역전되었다. 이때 모세는 어떻게 했는가? 13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데 그를 고쳐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우리 같으면 나를 비방했던 자들을 향해 큰소리로 "보라!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지 아니하는가? 잘난체 하는 누님! 이제 알겠습니까?"라고 말하면서 이때를 복수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자신을 비방한 자들을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가로막고 누이를 위해 기도했다. 그는 복수보다는 사랑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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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민수기 11장 /탐욕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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