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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18-06-02 16:49:07, Hit : 96, Vote : 44
 2-3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 상 9장 1-6                               (2018. 2. 13 새벽)
사도신경                      찬송 325장        기도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는 유력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1절에 보면 그의 조상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리고 기스에게 사울이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다. 준수한 소년이었고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었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다. 키 크고 잘 생겼다는 말이다.
   어느 날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어 버렸다. 아들 사울에게 말하기를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아버지의 말을 듣고 사울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 그리고 사알림 땅과 베냐민 지파의 땅까지 두루 다니면서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마침내 그들이 숩 땅에 이르렀을 때에 사울이 함께 가던 사환에게 말하기를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그 말을 들은 사환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이 성읍에 존경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분이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 분에게 가서 그분에게 물으면 그 분이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지 모릅니다.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을 찾아가는 과정과 그리고 사울이 사무엘을 만났고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을 부었다는 말씀이 뒷 부분에 나온다.
   삼상 9장은 사울과 사무엘이 만나는 말씀이 나온다. 오늘은 사무엘과 사울에 대한 일반적인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사람들 가운데 역할로 사는 사람과 본질로 사는 사람이 있다. 사울은 역할로 사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사무엘은 본질로 사는 사람이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 사람이다. 사사기 21장 8-21절에 보면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브온 첩 사건 때문에 이스라엘 11개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전쟁을 한다. 두 번째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11개 지파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다 죽이고 남아 있는 남자가 600명 남았다. 그래서 이 지파를 살리기 위해서 여자 600명을 포로와 보쌈을 통해서 베냐민 남자들에게 주어 그 지파를 연명 시킨다.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 이런 일들이 있었다. 사사시대가 끝이 나고 사무엘이 등장을 한다.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때에 베냐민 지파는 없어질 지파가 될 정도로 약한 지파였다. 그런데 기스라는 사울의 아버지는 이런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이다. 대단한 사람이다. 자수성가 한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유력자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삼상 9장 20절에 보면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아니냐 하는지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집안이었다.
   삼상 9장 2절에 사울의 외모에 대한 평가가 나온다.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사울은 준수한 소년이다. 잘생겼다는 말이다. 핸섬 보이이다. 이스라엘 자손에서 그보다 준수한 사람이 없다. 되게 잘 생겼다는 것이다. 키가 모든 백성들보다 어깨 위는 컸다. 키도 컸다. 오늘 삼상 9장 1과 2 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울의 집안이 유력자의 집안으로 대단하고 사울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3-5절까지 보니까 사울의 사람 됨됨이도 좋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기르던 암나귀들을 잃어 버렸는데 아들 사울을 불러서 말을 한다.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그래서 사울이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베냐민 지파 사람의 땅으로 두르 다녔지만 찾지를 못했다.’ 그들이 숩 땅에 왔을 때에 함께 가던 사환에게 말을 한다. “돌아가자 내 아버지께서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여기에 나온 말씀으로만 보면 사울의 인성도 괜찮은 것 같다. 아버지가 사울에게 암나귀들을 잃어 버렸으니까 찾아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것은 사울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심부름은 아무나 안 시킨다. 겉으로 보면 흠일 정도로 완벽한 사람이다.
   4절을 보면 에브라임 지역이 넓었는데 샅샅이 다 뒤졌다. 대충 시늉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실한 사람이다. 그리고 5절에 보니까 아버지가 걱정할 것 같다. 배려심이 끝내 준다. 일도 잘하는데 관계도 좋다.
   다시 정리하면 아버지도 끝내주고 사울의 외모로 보면 자체발광이다. 성격 좋다. 책임감 있고 배려가 있다. 생각 만해도 기분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아들도 완전하고 아버지도 완전한데 이런 완전함이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다. 사울은 열심히 살기는 했다. 이렇게 완벽하게 살아야 했기에 사울의 삶이 불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가?
   코넬리어 마크가 ‘완벽주의 작별을 고하다.’ 라는 책을 썼다. 우리는 극단적인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한 척 하는 것이다. ‘불완전함을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 말을 한다. 인간은 불안전하다. 그 불완전함을 누리라는 것이다. 불완전함을 누릴 때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완벽주의를 추구하면 자기 학대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찾는 것이다. 완벽주의의 특징은 자기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완벽을 요구하면서 힘들게 한다. 평범을 경멸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욕한다. “너는 왜 그렇게 사니?” 고고한 척 우아한 척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비꼰다.
   사울은 괜찮아 보이는 완벽한 사람인 것 같지만 자기 안에서 아무것도 만족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했다. 백성이 자기에게 집중하지 않는 것을 못 견뎌 한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의 눈치가 아니라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다윗은 만만 사울은 천천 이런 말 들으면 눈 돌아간다.
     사무엘 이 사람은 본질의 사람이다. 6절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했다. 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성전에 바쳐진 사람이다. 엄마 사랑 잘 모르는 사람이다. 젖을 떼고 나서 보내진 것이다. 사무엘이 힘들게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밤중에 자기 이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엘리 제사장을 찾아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를 바란다. 역할이 그 사람의 존재가 아니다. 자리에 미쳐 있으면 안 된다. 어떤 포지션이 뭐가 중요한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무엘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말을 한다. 이게 본질의 사람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딤전 6장 11절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이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
    자녀를 낳았다. 아들과 딸이 역할이 아니라 존재이다. 역할을 해야만 아들이고 딸인가? 아니다. 우리는 사랑받는 아들이고 사랑받는 딸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른 것이다. 역할로 생각하니까 맨 날 종노릇 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움 당하면 아들은 아들이고 딸은 딸이다. ‘나 완벽한 아들 될꺼야’ ‘나는 완벽한 딸 될거야’ 하지 않는다.  
  “제 역할이 뭐예요” “역할이 없어서 나는 안 가요” “나는 거기서 내가 뭐해야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옆에 존재 하는 것이 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역할만 가지고 자기를 증명하려고 하면 사울처럼 나중에 정신병에 걸린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본질로 생명으로 살기를 바란다. 잘 살기를 바란다.
헌금 383장
적용 : 새해 다짐을 하기, 역할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본질로 살아가기
중보기도 : 새해 기도 제목 다시 나누고 기도하기
          아픈 사람을 위해서
          교회 부흥을 위해서
          담임 목사를 위해서





2-4 사무엘의 마무리
2-2 하나님의 손 -아스돗 가드 에그론의 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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