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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19-01-13 10:03:29, Hit : 52, Vote : 4
 4-1 다 이루었다.


다 이루었다.
요 19장 23-30                (2018. 3. 30 5차 르호봇 27 여호와의 밤)
사도신경                     543장        기도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가져다가 네 몫으로 나누어서, 한 사람이 한 몫씩 차지하였다. 그리고 속옷은 이음새 없이 위에서 아래까지 통째로 짠 것이므로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가져갔다. 병정들이 이런 일들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있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라고 말을 하고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에게 말하기를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그 사랑하시는 제자가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 가운데 “목마르다” 말씀 하시고 신 포도주를 받으시고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신 뒤에, 머리를 떨어뜨리시고 숨을 거두셨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23절을 보면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주어가 군인들이고 목적어는 예수님이다.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이다. 군인들이 심판했다는 것이다. 위치가 바뀐 것이다. 원래는 예수님이 사람을 심판해야 하는데 바뀌었다. 이게 죄이다.
   성경에서 죄의 기원은 선악과이다. 뱀의 형체를 가진 사탄이 와서 유혹하는 것은 선악과를 먹으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것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된다고 했다. 우리 인간이 피조물인데 위치 변경을 이야기 한다. 내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죄이다.
   유 1장 6절에 보면 타락한 천사가 나온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 이게 마귀이다. 마귀는 천사의 위치가 있는데 그 위치를 버리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무리들이 있다는 것이다. 반역사건이다. 이게 마귀이다. 교회에서도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천지 창조도 창조 이전의 상태는 혼돈 공허 그리고 흑암이었다. 이런 무질서를 질서 있게 하신 것이 창조이다. 질서는 자기 위치를 이탈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다른 것을 하면 혼란이 일어난다. 죄는 위치 이탈이다.
   다윗이 훌륭한 것은 하나님 자리에 가지 않았다.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을 죽일 수 있었는데 하나님이 친히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내가 심판 할 수 없다. 사울을 심판하실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고 하면서 질서를 깨지 않았다. 이게 다윗의 위대성이다. 다윗이 심판하는 것 보다 하나님이 더 무섭게 사울의 집안을 심판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기 자리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의 방법과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힘들거나 어렵거나 평탄 하거나 관계없이 항상 자기 자리 지키는 것이 신앙이다. 피조물의 위치로 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사명의 자리로 가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자세이다.
   두 번째는 사랑은 고통당하더라도 한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25-27절을 보면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한다. 사랑하는 제자가 십자가 밑에 있었다는 기록은 요한복음에만 나와 있다. 전해내려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사랑하는 제자가 에베소에서 마리아를 모시고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십자가의 고통은 보통이 아니다. 숨 쉬지도 못할 고통이 극에 달한 것이다. 그런 고통 가운데 어머니 마리아를 보면서 “당신의 아들입니다.” 사랑은 죽어가면서도 한 사람에 집중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이 이런 것이다.
   우리도 사는 것이 힘들다. 그러면 다른 사람 안 보인다. 자기 고난 때문에 자기 연민에만 빠진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든가?’ ‘왜 나만 죽게 되었는가?’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라면 고통 속에서도 나를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집중하는 것이다. 고통 속에 있을 때 나를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서 집중을 하는 것이다.
   철없는 사람들은 자기만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는 것이 다 힘들다. 그런데 크리스찬의 특징은 다 힘든 가운데서도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이게 사랑이다. 여건이 좋은 사람은 사랑이 잘 안되고 사랑도 거래를 한다. 그래서 조건을 보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사랑을 할 때는 십자가의 고통이 있을 때이다. 그때에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고난이 오면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때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때 십자가의 사랑이 나타난다.
   사명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사명을 이룰 때까지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사명이다. 28절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 모든 것이란 하나님의 뜻이다. 인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다. 이것을 다 이루었다. 고 말씀 하셨다.
   예수님은 사명 집중형 삶을 사셨다. 예전에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드라마를 찍고 죽은 배우가 있다. 탤랜트 김영애 씨이다. 이 분이 췌장암에 걸렸는데 췌장암에 걸린 분이 자기 드라마 다 찍고 죽었다. 한 배우로서도 자기의 사명을 다하고 갔다. 그런데 우리도 성도로서 영혼 구원하는 일에 사명을 다하기를 바란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사명이 있다. 누가 뭐라고 하던 간에 이 사명을 다 이루고 가야 한다. 나 죽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것이 사명이다. 그게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이다.
   내가 구원을 받고 다른 사람 구원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것도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부른 것이고 직장을 다니는 것도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부른 것이다. 이것이 성도이다. 십자가에서 보여 주는 것은 사명인데 사명은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는 것이 사명이다. 사랑은 내 고통에 매몰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리고 죄는 내 자리 떠나는 것이다. 요한은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리 지키고 사랑하면서 내 사명 이루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헌금 90장
적용 : 나로 나 답게 살기 (내 자리 잘 지키고 살아가기), 사랑하기
중보기도 : 담임목사의 영적 리더쉽을 위해, 예배의 부흥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지역을 위해, 선교와 전도를 위해, 교회부흥, 사명감당의 능력을 위해





4-2 다윗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3-4 내 이름으로 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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