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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19-04-18 14:46:46, Hit : 10, Vote : 0
 2019.4-1 두려워 말라. 나다.


두려워 말라. 나다.
요한 6장 15-21                           (2019. 4. 7. 속회)
사도신경                     찬송 430장          기도
   요한복음 6장은 71절까지 되어 있다. 절수가 길다. 오천 명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었지만 이것은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배가 고파지는 것이다. 일생동안 먹을 문제가 해결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표적을 통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은 이 표적을 일으키신 분이 누구인가?에 대한 말씀이다.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이적은 놀랄 일이고 사람들이 이 이적을 경험하고 나서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아서 자신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계속 해결해 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은 이 분을 왕으로 삼아야 겠다는 것이다. 표적을 본 사람들이 14절에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했다. 당시에는 메시야 대망 사상이 있었다. 다윗과 같은 분이 나와서 유대 나라를 회복시킬 왕으로 오실 것을 대망했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정치적 메시야로 믿으려 했다. 억울한 로마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할 다윗과 같은 왕으로 오실 분으로 생각을 했다.
   신앙이 정치화 되면 안 된다. 기적도 보았고 예수님의 능력도 보았다. 그래서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정치를 신앙적으로 하는 것은 괜찮은 것인데 신앙을 가지고 정치를 이용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슬람이 ‘한 손에는 칼 그리고 다른 손에는 코란으로...’ 우리도 ‘한손에는 칼로 한손에는 성경’ 으로 이것 잘못된 것이다. ‘한 손에는 말씀으로 한손에는 십자가’가 있어야 한다.
   교회는 교회로 있어야 한다. 교회가 정치화 되면서 타락했다. 교황이 세상적인 권력을 가지면서 얼마나 타락을 했는가? 그럴 때 교회는 세속화 되는 것이다. 그 믿는 목적이 내가 예수 믿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축복이 흘러가서 축복이 사명이 되어야 한다.
   물론 교회는 구제 기관이 아니다. 떡을 나누어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질 사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떡을 주는 것은 수단이고 도구일 뿐이다. 예수님의 이적을 보고 왕으로 삼으려고 한 것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세속적인 측면에서 이용하려는 속셈이 있는 것이다.
   마 16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수난 예고를 하신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안 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하면서 십자가를 부정한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말씀 하시면서 책망을 하신다.
   ‘열심’이 없는 게 아니다. 열정도 있다. 열심과 열정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틀렸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다 열심히 한다. 그런데 그 열심이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세상의 기준대로 한다는 것이다.
   ‘세속화’는 열심과 열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과거에 정말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우리의 싸움이 무엇이었는가? 먹을 것이 없어도 우리의 기도는 나라를 위한 기도였다.
    이 땅을 살면서 하나님의 기준대로 한번 살아보면 그 길이 세상 사람들이 바라 볼 때 어리석은 모습처럼 보여도 그 어리석은 길을 걸어가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서면 뭐가 달라지나 한번 보자는 것이다. 빵만 추구하고 표적만 추구하고 그런 빵을 주는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억지로 왕을 세우려는 사람들을 피하셔서 군중들을 흩어 놓으시고 다시 홀로 산으로 올라가셔서 밤새 기도하셨다. 그리고 홀로 육로로 가버나움으로 오시려 했던 것 같다. 열두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오는데 날이 어두워졌고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났다. 마침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다. 이때 제자들이 두려워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오천 명을 먹인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주님께서 지금 물위를 걸어오시는데 제자들을 풍랑 때문에 죽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때 예수님은 “두려워 말라. 나다.” 라고 제자들을 안심시키신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멀리 계신 주님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계신 주님이시다.
   그래서 신앙은 거리의 문제이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면 용기가 있다. 하나님과 멀리하면 두려워하게 되어있다. 인도네시아, 브라질에 열대우림이 있다. 나무높이가 10m 20m이다. 생명력이 충만하다. 북극, 남극에는 얼음밖에 없다.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멀면 얼음밖에 없다. 태양과 거리가 가까우면 열대우림이 나타난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다. 태양이 가까이 있음으로 식물이 사는 것이다. 사물을 보는 것도 시력이 문제가 아니라 거리의 문제이다.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거리가 멀면 보이지 않는데 시력이 나빠도 가까이 있으면 보이는 것과 같다. 주님과 멀리 있으면 두렵다. 그런데 가까이 계신 예수님 동행하는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이 사라지게 된다.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나의 생활 속에서 현재 이대로가 축복이며 이대로가 기적이다. 이것이 표적을 아는 사람의 신앙이다. 일주일 동안 하나님과 늘 가까이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헌금 423장
적용 :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날마다 성경 읽기
중보기도 : 교회부흥, 담임목사님의 말씀의 능력과 치유의 능력을 위해
          환우들의 치유, 다음세대의 부흥, 새신자 정착과 전도의 능력
          교회학교 교사들을 위해





2019.4-2 그 형제들이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2019.3-5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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