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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19-04-27 14:21:19, Hit : 78, Vote : 19
 2019.4-4 니고데모 이야기


니고데모 이야기
요한 7장 41-53
사도신경                     찬송 250장         기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니고데모에 대한 말씀이다. 대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의 하속들에게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잡아오지 못하자 바리새인들이 그 하속들에게 ‘너희도 예수라는 사람에게 미혹되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 말을 들은 하속들이 대답을 한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대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모여든 무리를 무지한 갈릴이 출신의 어중이떠중이 그리고 하층민으로 여기고 있었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그러자 이러한 바리새인의 비난을 듣고 있던 니고데모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변호한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그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한번 생각해 봐라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니고데모는 경멸과 적대감의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확실하게 말을 하지 않는다.
   그 당시에 예수을 믿는다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용기가 필요하다. 드러내놓으면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숨기는 경우가 있다. 숨기면 죄를 지을 수 있다. 요한복음에 처음 니고데모가 나오는 곳은 요한 3장이다. 니고데모가 밤중에 찾아와서 말하기를 요3:2 “당신은 하나님께 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이렇게 말한다.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간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했다는 것이다. 바로 앞장인 2장에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쫓아내시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다. 이 일로 인해서 제사장들이 예수님을 곱게 볼 리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니고데모가 밤중에라도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큰 용기였을지 모른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니고데모의 관심은 보이는 것에 대한 관심이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남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했다. 거듭남이라는 정말 어려운 말씀을 이야기하니까 니고데모는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땅의 일에 대해서 말하여도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예수님이 말씀하셨지만 니고데모는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떠나간다.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육적인 눈이 너무 밝아서 영적인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없다. 믿음과 확신이 없으니 당연히 용기도 없다. 십자가를 질 마음이 없고 죽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그래서 찾아오긴 했는데 밤에 찾아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알기를 거부한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고 다녀라. 신앙 생활은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여호수아처럼 “나와 우리 집은 하나님 편에 서겠다.”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성경책 숨기고 다니지 말라. 다른 사람이 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게 신앙 생활 하면 안 된다. 밤이 아니라 대낮과 같이 드러내 놓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빛의 자녀이다. 당연히 어둠을 싫어해야 한다.
  2. 니고데모에게 당장 무슨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오늘 본문에 보면 약간의 변화가 보인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 하속들을 시켜서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한다. 물론 그 자리에 니고데모도 있었던 것 같다. 앞에도 이야기 했듯이 예수님을 잡으러 간 무리들이 그냥 돌아온다.
    그런 무리들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49절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요7:48-49) 한 마디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율법을 알지도 못하는 저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자 니고데모가 용기를 낸 것 같다. 50절-51에 예수님을 변호 한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니고데모는 비록 믿는 바를 과감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변호한다. 많이 발전했다. 그 밤중에 예수님 찾아와서 만난 후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확실하게 예수님 편에 선 것은 아니지만 거들어 준다. 니고데모의 말을 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다른 일원들은 니고데모를 향하여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고 니고데모를 공격한다. 유감스러운 것은 니고데모는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변호하고 싶었지만 위험과 충돌하고 싶지는 않아서 한 발 뺀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엄청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담대하고 말하지 못한다. 어떤 희생도 지불하지 못하고 위험한 일이 있으면 일단 그 위험을 모면하려는 지극히 지적인 신앙이다.
   나의 이익 때문에 움직인다면 삯군이다. 삯 만큼만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삯군은 성장이 안 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갖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커져야 한다. 부모가 되어야 희생하는 마음이 생긴다. 어른이 희생하는 것이다. 아비의 마음을 가지고 희생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요한복음에서 세 번째로 니고데모가 등장하는 때는 요한 19장 38절부터 나온다. 확실하게 변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에 38절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발라도에게 가서 달라고 한다. 그때 함께 동행한 사람이 니고데모이다.
   예수님의 장례를 돕는데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 백 근쯤 가지고 왔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장례를 치룰 때 시신이 빨리 부패하고 냄새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신에 몰약에 향기나는 침향을 섞어 바른다. 그것을 니고데모는 백 근을 가져왔다. 백근은 약 34kg 정도이다. 상당히 많은 양이다. 그만큼 그가 부자였음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향유를 부은 여자보다 더 큰 헌신이 있었다.
   니고데모는 처음에 예수님을 찾아 올 때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런데 그때는 그냥 돌아갔지만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모습을 보고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다. 우리의 신앙은 십자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숨어있었던 신앙이 십자가 사건 앞에서 빛을 나타낸다. 이 십자가의 엄청난 사건 앞에서 체면, 멍에 지위 다 포기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것이다.
    백근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가장 소중한 목숨을 예수님과 함께 한 것이다. 예수님을 위해 어디까지 용기를 낼 수 있는지요? 오늘 니고데모를 보면서 주님을 위해 용기 있는 믿음을 용기있는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는 주의 참된 제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누가복음 9:26절에 보면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헌금 320장
적용 : 예수님 때문에 희생을 댓가를 지불해 보기
중보기도 : 교회 부흥을 위해, 담임 목사의 말씀의 능력과 신유 사역을 위해
           다음 세대의 부흥을 위해, 환우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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