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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19-05-25 15:30:51, Hit : 76, Vote : 29
 2019.5-3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장 31-41                                  (2019. 5. 19 속회)
사도신경                     찬송   205장           기도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31-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고 말씀 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 그들은 자기들이 한번도 종 된 적도 없고 항상 자유롭게 살았는데 무슨 자유냐 라고 말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죄를 범하는 자는 죄의 종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죄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을 한다. 예수님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나도 안다. 그러나 너희 안에 내 말이 없으므로 너희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데로 행하라.’ 이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자유가 무엇인가? 자유는 그가 생각하는 자유의 질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이 된다. 사람의 행복의 영역은 그가 누리는 자유의 영역만큼 이기 때문이다. 내가 돈이 많은 부자이면 경제적인 자유가 돈이 없는 사람보다 더 많다. 돈이 없으면 자유가 제한이 된다. 선한 일을 해도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다. 많이 배운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영어를 잘 하면 외국을 여행할 때 영어를 못하는 사람보다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자유로 생각하느냐?’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자유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육체적인 자유는 없어도 양심의 자유가 있을 수 있다. 경제적인 자유는 없어도 도덕적 자유를 더 가치 있게 생각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하지 않다가 옥에 들어간 믿음의 선배들은 몸은 자유롭지 못했지만 그들의 신앙은 가둘 수가 없었다. 육체적인 자유가 구속이 되었지만 마음은 자유롭다. 그런데 신사참배를 하고 감옥에는 가지 않았지만 그가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 같지만 그의 마음은 얼마나 부자유할까?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다. 아픈 곳이 있는데 아픈 곳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감각이 마비가 된 것도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도 죽은 것과 같다.
   본문이 보여주는 자유는 빼앗는 것이 아니라 얻어지는 것으로서의 자유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그들을 자유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늪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한다. 노예가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과 같다.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한다. 참 자유는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자유란 진리가 나를 풀어주는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풀어주셔야만 자유 할 수 있다.
   악한 마귀가 죄의 힘으로 우리를 끌고 가고 있다. 악한 마귀의 죄의 힘이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로마서 7장 23절을 보니까 사도바울은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성경은 죄를 하나의 힘으로 본다.
    술 마시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내가 술을 마시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마지막에는 술이 나를 마신다는 표현을 한다. 담배 끊는 것, 술 끊는 것을 내 힘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악한 마귀는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우리를 결박한다. 도박도 마찬가지이다. 비장한 각오를 하고 손가락을 끊어도 한다는 것이다. 손가락이 없으면 발가락으로라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야 한다. 종 되었던 사람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유민으로서 능력 있게 살아가는 것이 온전한 구속이다. 갈라디아서 5장 1장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자유를 얻고 난 다음 다시 종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갈 5장 13절을 보면“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 자유를 가지고 헛되지 쓰지 마고 육체를 위해서 헛되지 되게 쓰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면서 열매 거두는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그럼 이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요한 8장 31절에 ‘말씀을 믿으면 자유롭게 된다’고 했다. 믿을 때 참 제자가 된다. 제자가 되는 길의 시작은 믿음이다. 이 믿음은 들음을 통해서 난다고 했다. “내가 너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 안에 산다는 것이다. 들음은 말씀과 나를 연결하는 것으로 소통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소통은 사랑이다. 사랑하면 들린다. 사랑하지 않으면 많은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도 들지 않는다. 성경 말씀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해 준다.
   진리가 주는 자유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이다. 하나님이 내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두렵지 않다. 하나님이 내편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남의 눈치를 살핀다. 체면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른다. 그래서 기회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죄로부터 자유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못 나간다. 절망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귀는 자꾸 죄책감에 빠지게 한다. 죄인 의식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지만 죄책감의 늪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죄는 죄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죄는 죄를 새끼친다. 가인이 예배드리는 데에 실패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아벨을 죽이는 살인까지 연결되었다. 다윗을 보면 간음했다. 간음에서 끝났는가? 충신 우리아를 죽이는 살인으로 연결되었다. 죄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생존을 위한 삶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자유는 십자가의 뜻을 아는 사람에게 진정한 자유가 있다. 예수님 안에서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입은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헌금 218장
적용 : 잠자기 전에 하루를 반성하고 회개하고 다짐하기
중보기도 : 담임 목사님의 말씀의 능력과 치유의 능력을 위해, 환우들을 위해, 다음세대와 교회부흥을 위해, 나라를 위해서, 낙심된자와 장기결석자들을 위해





2019.5-4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2019.5-2 너희가 죄 가운데서 죽으려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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