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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19-06-15 15:50:50, Hit : 27, Vote : 6
 2019.6-3 내가 지금 보나이다.


내가 지금 보나이다.
요 9장 8-25                                      (2019. 6. 16 속회)
사도신경                    찬송 366          기도
   오늘 본문은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이 보게 되자 사람들이 또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한다. ‘저 사람 여기에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니냐?’ ‘아니다. 그와 비슷한 자이다.’ 그렇게 말을 하는 소리를 들은 눈을 뜬 사람은 “내가 그다”라고 말을 한다. 그들이 묻기를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알지 못하노라” 사람들이 이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다. 왜냐하면 눈을 뜬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도 같은 질문을 한다.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맹인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기를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고 대답을 한다.
   유대인들이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는다.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그 부모가 대답하기를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전에 맹인 되었던 사람을 두 번째로 불러서 묻는다. “우리는 네 눈을 끄게 한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맹인이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사람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다 연결이 되어 있다. 과거의 결과가 오늘이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현재를 충실하지 못하면 미래도 잃어 버릴 수 있다. 또 과거에 얽매여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도 정신적으로 출애굽하지 못하고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넜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각은 애굽 생각을 하면서 현재에 불평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눈을 뜸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데 눈을 뜬 사실 때문에 시비가 되고 나중에는 출교까지 당한다. 과거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인생을 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장님이 눈을 뜬 사실에 왜 시비가 붙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면서부터 장님이 된 사람이 눈을 떴다면 함께 축복해 주고 기뻐해 주어야 하는데 시비가 붙었다. 놀라운 이적 앞에서도 그들은 예수님을 정죄하려고 한다. 그들의 눈이라는 것이 고작 그 정도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부모까지 불러다가 확인을 한다. 이렇게 확인하려는 그들의 태도가 거칠고 불손하다. 그 부모들도 유대사람들이 무서워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장님의 눈을 뜨게 한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 날 그 일을 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들의 태도는 조폭 수준의 협박이다. 그런데 고침 받은 맹인은 당당하게 말을 한다. “그 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난 잘 모른다. 그런데 지금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안식일에 눈을 뜨게 해 준 것이 그렇게 논쟁 거리가 될 만한 것인가? 눈 뜬 사람을 괴롭힌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안다고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이다. 율법에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다. 유대교의 전통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는 종교인들이다. 지금 축하해주고 기뻐해 주어야 할 때에 전혀 기쁨이 없다. 타인의 아픔도 아픔으로 느낄 줄 알고 타인의 기쁨을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다. 말세 때에는 피리를 풀어도 춤추지 않는 세대 곡을 해도 울지 않는 세대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오히려 바리새인들은 죽은 감각으로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영적인 시력이 떨어진 사람이다.
    이 사람은 확실하게 이야기 한다. 처음에는 선지자라고 고백을 하지만 나중에는 메시야로 예수님을 고백한다. 내가 지금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리고 지금 내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 있는 믿음도 감사한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눈을 가지고 정말 제대로 보면서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과거의 삶이 아니라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헌금 365장
적용 :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고 중보 기도하기
중보기도 : 교회 부흥과 온 가족의 인가귀도, 기적을 증거하는 교회되게 하소서. 말씀이 살아 있는 교회되게 하소서, 다음세대들이 일어나고 환우들이 고침을 받고 뛰게 하소서. 담임목사님 말씀의 능력과 치유의 능력을 주소서.





2019.6-2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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