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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19-08-10 15:24:16, Hit : 38, Vote : 13
 2019.7-3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한 12장 1-9                               (2019. 7. 21 속회)
사도신경                       찬송 211장        기도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예수님 발에 옥합을 깬 본문이다. 오늘 잔치자리에서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 3절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의 이 극진한 대접은 마르다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린 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귀한 대접이다. 머리는 사람의 맨 위에 있는 소중한 부분이다. 특히 이스라엘 여자들은 머리털을 소중하게 생각해서 드러내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하고 수건을 쓰고 다녔다.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지 않고 길게 길러서 관리했다. 그런데 그 머리로 발을 씻겼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이 마음을 귀하게 보신 것이다. 향유만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기는 일이 없었다면 이 일은 그리 대단한 사건을 아니었을 것이다.
   향유를 붓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돈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머리털로 발을 씻긴다는 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인 자기 희생으로 마음의 중심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사용한 향유는 요 12장 5절에 비싼 향유 순전한 나드 한근이다. 가롯 유다의 계산으로 삼백 데나리온이다. 한 데나리온의 가치는 노종자 하룻 품삯이다. 한 사람이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일년을 모아야 되는 큰 돈이다. 귀한 물건이다. 300데나리온은 일 년 동안 일한 연봉에 가까운 돈이다. 엄청난 가격이다. 그 비싼 것을 예수님의 발에 단 한 번에 부어 버린다. 향유니까 집안에 그 여인이 부은 향유가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다가 그 여자가 한 행동을 보고 열이 받았다고 한다. 유다가 화를 낼 이유가 전혀 없다.
   화를 낸 이유가 나온다. 삼 백 데나리온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었더라면....그 여자의 행동에 대해서 왜 비싼 향유를 낭비하느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비난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 향유는 이스라엘 여자들이 결혼을 할 때 준비하는 혼수 품목중에 하나라고 한다. 마리아가 부은 향유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을 예수님께 드린 사랑의 극진한 표현이다.
   진짜 사랑은 희생이다. 희생은 자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특히 여자들 엄마가 되어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자기를 잊고 산다고 한다. 자식을 위한 길이라면 목숨도 내 놓는다. 아직 내가 사랑해야 하는 그 아이만 보인다는 것이다. 아까운 것이 없다.
    마리아도 지금 오직 그리스도만 보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긴다. 예수님의 기쁨이 자기의 기쁨이 된 것이다. 피곤함이 없고 기쁨이 있다.
    마리아가 희생을 바쳤을 때 그 향기가 온 집에 가득했다. 이 향기를 예수님만 맡은 것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다 맡게 되었다. 향기라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그 대상에게만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유쾌함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서 유다는 시기를 한다. 5절에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절에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옥합을 깬 여인의 사랑의 행동과 가롯 유다의 악한 마음이 대조적으로 나와 있다. 이런 일을 하기 전까지 마리아는 옥합을 깰까 말까 하면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옥합을 깨서 예수님의 발에 붓는 그 일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해 버렸다. 그 여인의 행동의 동기는 예수님 너무 사랑해서 예수님 너무 좋아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귀중한 것을 그냥 드린 것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이 많아서 하지 못 한다. 우리의 약점은 생각은 많은데 실천이 없다. 그런데 마리아는 고민이 없다. 예수님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최선을 다해서 표현을 한 것이다.
   예수님은 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이제 예수님은 몇일 있으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데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향유를 부어야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향유를 부은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런 깊은 생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옥합을 깬 것이 아니다. 그냥 예수님 너무 사랑해서 옥합을 깨서 예수님께 드렸더니 예수님이 그 여인의 행위에 의미를 붙여 주신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뭘 알아서 하는 일은 별로 없다. 몰라도 사랑하면 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옥합을 깼다. 다른 이유가 없다. 옥합을 깬 마리아의 행동에 대해서 우리는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비난이 아니라 격려하고 칭찬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밝아지고 칭찬을 듣는 사람도 밝아진다. 매 순간 마다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마리아처럼 사랑을 느끼면서 사랑으로 행동을 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은혜받은 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서 좋은 것들을 보여줌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염시키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헌금 325장
적용 : 가장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자.
중보기도 : 교회를 위해서, 환우들을 위해, 다음세대를 위해, 속회회원 가운데 장기 결석자나 시험에 들어서 낙심된자, 각 가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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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2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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