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감리교회
로고
메인이미지


  박성일(2019-10-24 13:52:30, Hit : 19, Vote : 3
 2019.10-2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요 14장 7-11                                  (2019. 10. 13 속회)
사도신경                    찬송   369장      기도
7.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빌립의 대화이다. 요 14장 8-9을 보면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님이 빌립에게 말씀하시기를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이미 보았는데 무엇을 보여 달라 하느냐?”고 말씀하신다. 보았어도 보지 못하고 들었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더 소원이 없다. 이미 본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이미 받은 것이 많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지금 죽어도 한이 없다고 생각을 한다.
   빌립의 질문과 예수님의 대답에서 우리는 신앙과 불신앙의 세계관을 뚜렸이 보게 된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가 나온다. 니고데모의 관심은 눈에 보이는 표적이었고 예수님의 관심은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이다. 우리도 눈에 보이는 표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산다. 니고데모도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한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 말도 들려지지 않는다. 믿음이 없이는 보지 못한다. 믿는 마음이 있고서야 보이기도 하고 들리기도 하는 것이다. 빌립이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이미 다 보았다고 예수님은 말씀 하신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마음을 한번 분석했으면 한다. 갓난아기가 제일 먼저 아는 사람은 어머니이다. 아기들이 엄마를 안다는 것은 엄마의 나이를 아는 것도 아니고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아기가 아는 것은 저 여자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만 안다. 안다는 것은 관계성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는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보이는 하나님을 만든 것이 우상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우상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을 때 얼마나 많은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었는가?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만나로 먹이셨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하셨다. 얼마나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만 그들이 믿을까? 그렇게 많은 것을 보여주어도 믿지 못해 불신앙의 길로 갔다.
    원래  검정 볼펜을 우리는 검정색이라고 말을 하지만 물에 타보면 많은 색이 섞여있는데 우리 눈으로는 검정색으로 보는 것이다. 내가 볼 수 있다는 것은 내 시야에 정복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인간들은 자기가 보고 느끼고 들은 것만 믿으려고 한다. 그런데 본다고 다 진짜는 아니다. 사람이 본다고 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며 불안정한 것이다. 본다는 것에 너무 치중하면 속을 수 있다. 악한 마귀는 보이는 것으로 속인다. 그리고 선악과처럼 가짜 일수록 더 화려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에 다른 모든 제자에게는 나타나셨는데 도마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마는 직접 보여 달라고 한다. 믿음이 있어야 보지 못하는 것도 보는 것이다. 불신의 마음으로 본다면 보았어도 보지 못하고 들었어도 듣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에서 빌립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한다. 그때 예수님은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본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며 다 안다고 해서 본 것은 아니다. 보지 않았어도 믿음으로 알 수 있고 사랑으로 알 수 있다. 안다는 것과 보는 것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 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씀을 하신다. 10절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행위 즉 병을 고치시거나 말씀하시는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하시는 일임을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빌립은 예수님이 하신 모든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11절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심을 믿으라 그러나 믿기지 않으면 내가 하는 일을 보고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심을 믿으라. 그러나 믿기지 않으면 내가 하는 일을 보고 이적을 보고 이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믿으라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여 달라는 엉뚱한 질문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내가 당하는 구체적인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경험하여 하나님 안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면 살기를 바란다.      
헌금 384장
적용 : 하나님 신뢰하기
중보기도 : 어지러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교회의 부흥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환우들을 위해, 기도의 회복을 위해, 담임목사님을 위해,  





2019.10-3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2019.10-1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