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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20-02-08 16:29:59, Hit : 6, Vote : 0
 2-2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 5편 1-12                                         (2020. 2. 9 속회)
사도신경                  찬송 250장           기도
   시편 5편은 아침에 드리는 기도이다. 시편은 현악에 맞춘 시편이 제일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150편 가운데 관악에 맞추어 부른 노래가 시편 5편이다. 관악은 나팔이다. 나팔에 맞춰서 노래한 유일한 노래이다.
   새벽은 나팔을 불듯이 승전가를 불러야 한다. 하나님의 나팔을 가지고 승리를 외쳐야 한다. 나팔을 불면서 새벽에 깨우는 것이다. 군대는 기상나팔을 분다. 새벽은 나팔을 불어야 한다. 관악으로 시작을 했다. 새벽에 승리를 선언하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 가운데 기적을 맛보는 것이 새벽시간이다.
   새벽에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가? 1절을 보면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말은 중얼거림이고, 심정은 가슴의 탄식이다. 내 가슴속에 있는 것을 주님 앞에 토해 내는 것이다.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절에 보면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새벽에는 중얼거리듯이 기도하다가 마지막에는 부르짖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3절에 보면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나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아침에 기도하고 아침에 들이신다는 고백이다.
   아침이라는 것이 ‘동트기 전’ 이다. 그래서 아침보다는 새벽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보통 한국 교회만 새벽기도를 드린다고 하지만 구약 전통에 의하면 새벽에 제사를 드렸다. 새벽에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새벽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도우시는 오시는 시간이라고 생각을 했다.
   시편 90편 14절에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시편 90편을 보면 모세가 지은 시이다. 모세가 인생을 살아보니까 내 인생이 즐거웠던 이유는 새벽마다 주의 인자로 나를 만족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모세는 새벽기도 한 사람이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22, 23절에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몰락 가운데서도 소망을 가진 것은 ‘아침마다 새로우니’ 새벽 드리는 기도를 통하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큰 소망을 가졌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졌다는 것이다.
    시편 46편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시오 환난 날에 나의 도움이다....산이 요동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라 산이 흔들려도 지진이 나도 두렵지 않다고 고백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새벽에 도와주시기 때문이라고 고백을 한다.
    우리를 새벽에 깨워 주시고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길이다. 감리교의 창시자는 웨슬레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한 사람이다. 그의 일기에 보면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는 성도들을 행해서 첫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했다. 감리교는 새벽기도부터 시작을 했다. 우리는 새벽을 깨우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새벽에 깨우는 사람은 늦게 자는 사람보다 몇 배의 시간을 가지고 산다. 우리나라의 부흥운동도 새벽기도 운동부터 시작을 했다.
   하나님은 만나를 새벽에 내리게 하셨다. 늦게 일어나면 굶어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만나를 거두었다. 여리고도 새벽에 돌아서 무너졌다. 기적을 맛보는 시간이 새벽기도 시간이다.
    시편 5편을 보면 단순히 개인적인 기도가 아니다. 개인적인 기도에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기도로 승화된다. 지금 왜 새벽에 기도하고 부르짖는가? 4절부터 보면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왜 부르짖어야 하는가? 주님이 죄악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하나님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모습이 아니잖습니까? 하나님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나면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의로운 세계가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악한 사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만한 자가 서지 못하도록 기도한다.
     이 땅의 변화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7절을 보면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 하리이다.’ 내가 이 땅을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주의 성전에서 예배를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예배를 실패하면 안 된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에게 능력이 임하는 것이다. 예배가 중요하다. 그리고 나아가서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예배드리는 이유는 ‘오늘도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하루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새벽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도가 간절해지는 것이다. “하나님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변화 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나의 원수들을 주의 의로 인도하여 주의 길을 곧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는 것이다. 결국 주님께 피하는 것이 복된 인생으로 산다는 것이다.
   12절 마지막에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은혜로 방패처럼 막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중요한 축복과 은혜는 새벽에 주어진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의 방패로 지켜 주실 것이다.
   악한 마귀가 얽매고 있는 사술을 깨는 것은 부르짖음이다. 새벽에 부르짖어서 기적을 맛보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헌금송 405장
중보기도 : 환우들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경제와 불안감 제거), 담임 목사님과 비전 트립을 위해서,





2-1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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