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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12-06-03 17:14:33, Hit : 1578, Vote : 250
 1. 창조의 하나님


1. 창조의 하나님
창세기 1장 1-5                                 (2003. 8. 17 주일 오전)  
     오늘부터 창세기 1장부터 절기와 상관없이 주일 설교를 하려고 한다. 그리고 새벽기도는 오늘 새벽부터 마태복음부터 시작했다. 창세기 1장에 나와 있는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째 날 부터 셋째 날 까지는 나눔의 창조이고 셋째 날부터 6째날 까지 채움 창조이다. 어둠과 빛을 나누시고 하늘과 땅을 나누시고 땅과 바다를 나누시고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을 채우시고 공중의 새들을 채우시고 땅에 나무와 식물을 채우시고 바다에 물고기를 채우시고 짐승들을 채우셨다.
  나뉘어 질 때 두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분리와 공간이다. 나뉨 속에는 구별됨의 의미가 들어있다. 빛과 어두움, 낮과 밤이 나뉘었듯이 우리의 인생 속에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명히 나누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을 분명하게 구별하여 생활이 있어야 한다. 도대체 하나님의 사람인지 세상 속에 푹 쪄들어 있는 사람인지 구별이 안되는 사람에게는 ‘좋았더라’라는 축복의 말이 적용될 수 없다. 심이 보기에 좋더라라는 말을 듣는 것은 창조 신앙의 회복이다.
   출 30:29『그 모든 것을 아주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여라. .......』겔 44:23 『제사장들은 내 백성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도록 백성을 가르치고,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도록 백성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NIV>『They are to teach my people the difference between the holy and the common and show them how to distinguish between the unclean and the clean.』
<개역한글판> (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NIV>『"Do not give dogs what is sacred; do not throw your pearls to pigs. If you do, they may trample them under their feet, and then turn and tear you to pieces.』
   예수 믿는 사람들은 거룩한 백성들이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복된 길과 망하는 길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을 잘 구별할 줄 아는 영적인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나뉨은 비움을 말한다. 궁창이 생김으로 빈공간이 생겼다. 물과 바다가 나뉨으로 생명체들이 살 수 있는 빈 공간이 생긴 것이다. 비워짐이 있어야 채워 질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인간적인 욕망과 추악한 욕심이 다 비워져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올 수 있다. 빛과 어둠이 구별되듯이 나뉘어 질 것은 나뉘어 져야 한다. 잘 나뉘어 질 때, 질서가 생기고, 생명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화모니가 이루어진다. 선한 것과 악한 것, 복된 길과 망할 길을 잘 구별할 줄 아는 복된 인생 되시길 바란다.
   하나님은 완벽한 전략가이시다. 아무런 생각없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질서대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 사람 자연의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과 인관과 자연은 수직적인 관계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이 될 수 없고 사람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연에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창조주와 피조물을 분명하게 구분을 한다. 하나님은 창조자이고 사람과 자연은 피조물이다. 자연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될 수 없고 신이 될 수 없다. 인간도 피조물이기 때문에 자연의 법칙에 종속이 되어 있어서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은 동일한 피조물이지만 대등한 관계는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따라서 인간의 권위아래 자연이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자연에다가 기도를 한다. 비나이다하면서 우상을 숭배한다. 하나님 창조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그리고 우리는 세상에 관리권자로서 잘 다스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온 세상을 나누시고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만드셨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그 모든 것들을 사람에게 맡기셨다. 아담은 동물들의 모든 이름을 지어줄 정도로 관리자의 능력이 있었다. 너는 코가 기니까 코끼리로 해라 너는 뿔이 나 있으니까 코뿔소로 해라.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지었다. 아담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경영권을 물려 주셨다. 다스리고 관리하고 정복하고 책임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담에게 필요한 협력자 돕는 사람을 붙여 주셨고 아울러 정신없이 일에만 빠지지 말고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안식을 하라도 올바른 안식의 개념도 가르치셨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씀 하셨다. 하나님의 계획아래 완벽한 창조가 이루어 졌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이 땅이 처음에 어떤 환경이었는지 살펴보고 창조된 세계 안에서 우리의 자세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1)처음 세상은 혼돈과 무질서였다.
   혼돈과 공허는 히브리어로 "토후 와보후" (tohu wabohu)로서 아주 아름다운 시어이다. 이 단어는 "황량하고 텅빈" (waste and void)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살수 없는 황량한 상태이고 거주할 수 없는 토후의 상태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빈 공간 속에 하나님은 하나님 나름대로의 디자인을 가지고 세상을 만드신다. 하나님은 이 혼돈과 무질서 위에다가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질서를 세우셨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를 잡으시는 분이다. 기준을 잡으시고 그 기준대로 행하시는 분이시다.    코스모스는 우주라는 뜻도 있지만 질서 혹은 완전 조화라는 뜻이 있다. 화장품도 영어로 코스메틱이다. 얼굴의 질서를 잡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얼굴도 관리를 잘해야 한다. 얼굴도 있는 얼굴 그대로 다니지 말고 질서를 잡고 다녀야 한다. 라인을 그면서 얼굴에 질서를 잡을 때 사람이 사람다워 지는 것이다.
   하나님도 혼돈과 공허의 우주에 질서를 잡으셨다. 처음에 줄을 긋는 행위를 한다. 빛과 어둠의 줄을 긋고 땅과 하늘 그리고 바다고 줄을 그어 놓으셨다. 줄을 넘으면 혼란이 오는 것이다. 밤이 길어도 낮이 길어도 혼란이 오고 바다가 육지를 덥쳐도 혼란이 오는 것이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땅, 형체 없이 뒤얽혀있는 땅, 그 땅을 가슴에 품고, 새생명을 잉태케 하고, 출산케 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삶이 혼돈하고 공허할 때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갈등과 번민이 많고, 생활여건이 어려워질 때마다,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의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하심의 순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전의 세상은 혼돈과 공허이다. 대한민국의 국제 순위 중 오래 전부터 1위였던 자살률이 2009년 조사에서도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하였다. 2009년 12,858명으로 증가 하루평균 2009년 34명 자살성공자 42분마다 1명 자살 지금 예배드리는 이 한시간에도 통계적으로 한명씩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도 말버릇 처럼 죽고싶다.라고 말을 한다. 죽음의 심리가 우리 가운데 있다는 말이다. 왜 죽고 싶을까? 공허함이다. 공허함은 희망보다도 절망을 본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신다. 혼돈된 곳이 질서정연한 곳으로 변했다. 공허한 땅이 각종 생물로 채워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혼돈 되고 공허한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기 때문에 혼돈이 없어지고 공허함이 채워진 것처럼, 인생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졌을 때에 그 마음에 혼돈이 없어지고 공허함이 채워진다.    왕상 10장에 스바 여왕이 솔로몬 왕을 찾아온다. 소문으로만 듣던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서이다. 묻는 것 마다 대답 잘 한다. 차려놓은 음식을 보고 놀란다. 스바 여왕이 깜짝 놀라서 말을 한다. 내가 듣던 소문보다 당신은 지헤와 복이 훨씬 많은 것을 확인했고 당신의 백성들은 복이 많은것 같소 솔로몬의 지혜를 듣는 백성들은 행복하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박학다식한 엄친아였다. 그런데 노년에 솔로몬이 이런 고백을 한다. 전도서 1장 17, 18 “나는 무엇이 슬기롭고 똑똑한 것인지 무엇이 얼빠지고 어리석은 것인지 구별하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처럼 알려고 하는 것 또한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더라 아무리 솔로몬의 지혜가 많다고 하더라도 솔로몬 자신 역시 해아래서 헛되고 헛되다는 말을 전도서에 29번사용을 했다. 해 아래서의 지혜와 해 아래서의 부유를 추구했지만 해 위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해 위의 삶을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절망하고 만다.
   결국 솔로몬이 깨달은 것이 무엇인가? 영원한 것이 무엇이냐를 질문을 한다. 전도서 1장 4절에 보면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떳다가 지며 그 떳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으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 도라 라는 말이 나온다. 요약하면 영원한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해도 바람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결론은 젊은이들아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이 인생의 헛됨을 한방에 날려 보내시는 분이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라리라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붙잡으면 영원히 살겠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이 혼돈과 공허를 말씀으로 평정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공허와 혼돈 속에서 헤매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는 사람이 혼돈 속에서 살겠는가? 이렇게 살아라 하는 삶의 분명한 매뉴얼이 있어서 그대로 살려고 하는데 혼돈이 있겠는가? 주님 말씀 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주님 서라하면 내가 서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이 나뉘어 지지 않는다.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면 마귀가 틈을 노리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한 기준이 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세상에 기준이 되지 못하니까 날마다 끌려 다는 삶을 사는 것 아닌가? 레위기 18:3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쫓지 말고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쫓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굉장한 메시지 이다. 나의 법도를 지키라 이를 행하면 살리라 혼돈과 공허 속에서 살아날 것이다. 가나안에 살아도 그 풍속대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그 규례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다니엘서에도 보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 갔던 소년들이 삼았던 기준이 무엇인가? 예레미아 선지자 말씀을 기준으로 삼았다. 말씀으로 돌아오라고 외치지 않는가? 10명중에 9명이 폭탄주를 마셔도 남은 한사람이 기준을 세우면 된다. 스가랴 4:10절에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다림줄이 되라는 것이다. 공사를 할 때 평행 기준을 잡아 주는 것이 다림줄이다. 그때 하나님이 기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말씀으로 기준을 삼아서 혼돈과 공허를 평정하라는 것이다. 로마는 법으로 기준을 잡았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면 그 바른 기준으로 세상이 바르게 설 수 있다. 그런데 기준이 흔들리면 어떻게 되는가?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말씀의 기준으로 질서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사무엘상 28장에 나타난 사울의 모습을 보면, 그는 블레셋의 군대 앞에서 두려워하며 크게 떨고 있었다. 그런 사울 왕의 모습은 참으로 비참했고, 그 처절함이 너무 불쌍할 지경이었다. 사울 왕은 하루종일 식물을 먹지 못하여 기력이 진하였고, 또 심히 두려워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왕이 왜 음식을 먹지 못하여 기력을 잃고 심히 두려워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블레셋 족속과 한판 전쟁을 치뤄야 하기 때문에 갖게 된 것이 아니었다. 사울은 그 생애에서 많은 전쟁을 치렀다. 그렇지만 그때처럼 그렇게 고통스럽고 답답한 적은 없었다.
    사울 왕의 고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데서 오는 고통이었다. 전쟁하기 전에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지만 하나님이 이미 사울 왕을 떠나 버렸기 때문에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었다. 그 고통과 두려움은, 비록 왕이고 금은 보석을 산더미같이 쌓아 놓고 살 수 있는 그런 위치에서 사는 사람이었지만,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음으로 인해 두려움이 임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울 왕은 식물을 먹을 마음도 없었고 기력이 없었으며, 고통과 두려움이 그 마음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처럼,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을 때에는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막막한, 허공에 달려 있는 지구덩어리를 꽉 붙들고 계셨던 것이니, 마치 암탉이 달걀을 품고 신중과 고요 속에 새생명(병아리)을 창출해내는 모습과도 같은 것이었다. 암탉이 계란을 품고 있는 것은, 암탉이 계란을 그저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도록 굴리고 있어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혼돈을 품으시고 하나님의 생명을 말씀으로 집어넣으신 것이다. 그래서 공허와 혼돈과 흑암으로 가득 차 있던 이 지구에 성령이 임하므로 생명력이 생기고, 놀라운 창조의 역사가 생겼던 것처럼, 하나님의 신이 임하니까 살아나고 질서가 잡히고 빛이 있으라 하니까 빛이 생긴 것이다.
(2)빛과 생명
    예전에 개그 콘써트에서 워워워 라는 개그를 한 것이 있다. 어두워 ~ 무서워 ~  어려워 ~  내동생 에치엠 희망 에스엠 소망 나는 절망 그러면서 두 동생들이 희망을 이야기 하면 세상이 어둡다고 너희들은 어려서 모른다고 절망을 외친다. 어두워 무서워 어려워 워워워...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어두운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절망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외쳐야 한다. 물론 요한복음 1장에도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 빛에 대해서 세례요한이 증거를 한다. 이 빛은 예수님이라고 요한은 이야기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생명의 빛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이 혼돈과 공허 어둠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천지창조에서 하나님이 제일 먼저 창조한 것이 빛이다. 말씀으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매 빛이 있었다. 어둠과 무질서 공허를 정리한 것은 빛이다. 고후 4:4절에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의 광체가 비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밝음의 근원 역시 말씀으로 나오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밝아야 한다. 얼굴에서 공허함이 없어야 한다. 아무리 라인을 긋고 화운데이션을 바른다고 할지라도 말씀이 없으면 밝지 않다. 어둠의 자식들처럼 빛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밤의 문화를 낮의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혼돈의 문화를 질서의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엡 5:8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 즉 예수 믿는 사람 답게 살라는 바울의 권면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3)고 했다. 일정한 질서 속에서 지구는 움직이고 있다. 만일 지구의 축이 조금이라도 잘못되어있으면 지구는 혼란이 올 것이다. 지구는 시속 10만 킬로의 속도로 자전 공전을 하면서 달리고 있다. 지구가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일정한 운동을 계속하는 것은 정해진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3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능력의 말씀으로 혼돈된 세상을 붙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질서를 세계의 질서를 세우는 법칙이고 이 하나님의 말씀의 법칙에 의해서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에 원로목사님이 유머 말씀하신 지구본이 기울어져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장학사가 학교시찰을 나갔는데 마침 지구본을 놓고 과학수업을 하고있는 교실이 눈에 띄었다. 장학사가 교실로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물었다. "반장, 지구본이 기울어져 있는 이유가 뭐지?" 반장이 깜짝 놀라서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저희가 안 그랬어요.." 어이가 없어진 장학사가 이번에는 선생님에게 묻는다. "선생님이 직접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선생님이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거요? 처음에 사 올 때부터 그랬어요.." 화가 대단히 난 장학사가 지구본을 들고 교장실로 갔다. "교장선생님, 이 지구본이 기울어진 이유를 아무도 모르더군요" 그러자 교장이 안타깝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국산이 다 그렇죠 뭐..." (그런데 요즘 메디인 코리아 좋습니다.) “그것 중국산이라서 그래요”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니다"(시편 119:89~92)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주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다고 하 것은 천지 만물이 하나님의 법칙대로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이를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인 법칙에 순응하는 종이 되어 있다고 한 이다. 그리고 나서 시편 저자는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라고 독백하고 있다. 사람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먹지고 자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 영혼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 않는 인간의 길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고난 중에 죽는 길일 따름인 것이다.
  시편 147편 15-20절에도 보면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겨울에 얼어붙었던 것들이 봄철이 되어 녹아 내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법칙, 곧 말씀을 보내셨기 때문이라 했고, 기압 관계로 바람이 불고 구름이 밀려가서 비가 오는 것도 말씀을 보내셔서 되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작용하는 것과 같이 인간 역사에도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실천하시는 것이다. 혼돈과 공허는 말씀이 평정한다.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그분의 계획에 따라 말씀하심으로써 말씀대로 이 세계를 만드시고 혼돈과 공허를 질서의 세계로 이끌어나가시는 것이다.
(3)조화
   창조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바란다. 창조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은 먼저 시간을 낮과 밤으로,저녁과 아침으로,하루와 이레로,그리고 공간을 하늘과 땅으로,뭍과 물로 나누셨다.생명체는 그 종류대로 나누시며 그것들이 서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신 것이다. 혼돈과 공허가 사라진 것이다. 바른 질서가 잡힌 것이다. 나는 모든 인간 세상이 이렇게 바른 질서가 잡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 피조된 세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남자와 여자에 의해서 올바르게 다스리고 유지되도록 위임을 하셨는데 그 뜻대로 살지 못해서 다시 공허와 혼돈이 찾아 온 것이다. 그래서 죄가 침입을 한 것이다. 죄가 침입을 하면 조화가 깨진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조화도 깨지고 사람과 자연과의 조화도 깨진다. 조화가 되지 않으면 고통가운데 살 수 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사람과 자연 사이에 조화는 대단히 중요하다. 좋은 관계를 맺으라 피하는 관계가 되거나 속이는 관계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조화이다. 싸우지 말자는 것이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사 65:25) 이런 세상이 와야 더 이상 우는 소리나 부르짖는 소리가 없을 것이다. 사람 미워하지 말자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참 보기 좋다 이렇게 만들어가야 한다. 이사야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환상을 보고 있다. 이것이 창조의 회복이다. 지금 땅에서는 힘이 센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전혀 다른 생명의 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다. 이런 꿈을 가져야 한다.
   변집섭의 노래 가운데 우리의사랑이필요한거죠 / 변진섭
그대 어깨위에 놓인 짐이 너무 힘에 겨워서 길을 걷다 멈춰진 그 길가에서 마냥 울고 싶어질때 아주 작고 약한 힘이지만 나의 손을 잡아요 따뜻함을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어루만져 줄께요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때 그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때론 내가 혼자 뿐이라고 느낀 적이 있었죠 생각하면 그 어느 순간에서도 하늘만은 같이 있죠 아주 작고 약한 힘이라도 내겐 큰 힘 되지요 내가 울 때 그대 따뜻한 위로가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 때 그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앞서가는 사람들과 뒤에서 오는 사람들 모두다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때 그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때 그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때 그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때 그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우리가 저마다 힘에 겨운 인생의 무게로 넘어질때 그순간이 바로 우리들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혼돈과 공허 속에서 이 혼돈과 공허를 평정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기가 되어서 우리가 빛의 자녀처럼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오늘 말씀을 드렸다. 빛의 자녀처럼 사는 것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면서 살아 혼돈과 공허속에 헤매는 사람들에게 항상 밝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빛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 명품 인간 그리고 짝퉁 인간
멀리 바라보며 행동하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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