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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12-06-03 17:16:17, Hit : 1704, Vote : 244
 2. 명품 인간 그리고 짝퉁 인간


2. 명품 인간 그리고 짝퉁 인간
창세기 1:26-31                                        (2011. 2. 20. 주일오전)
    오늘은 명품인간 짝퉁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시고 참 보기에 심이 좋았다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를 보고 네가 너 잘 만들었다. 하는 개념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왜 사람이 명품 인간이 되는가? 돈이 많아서도 아니고 많이 배워서도 아니라 개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명품 인간이 될 수 있다. 사람으로 사는데 모양 빠지게 살지 말라는 것이다. 모양은 사람 같은데 개념 없이 사는 사람들을 우리는 짝퉁 인간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개처럼 살던지 개만도 못하게 살던지 개보다 못하게 살던지 이렇게 살면 안된다.
   명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이 장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도 함부로 살지 않는다. 나실인으로 살아 간다는 것이다. 삼손이 무개념으로 살았다. 나실인인데 나실인 처럼 살지 못하고 여자 따라가면서 살았다. 그래서 결국 좋은것 다 가지고 태어났는데 눈빠지고 모양 빠지게 살다가 죽지 않았는가? 신앙의 개념이 있다. 마귀는 이런 개념을 흐려놓는다. 드릴라가 이런 개념을 흐려 놓은 것이다. 한번만 말해달라고 유혹을 하자 그냥 넘어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만드신 선하신 목적대로 명품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명확한 개념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헛똑똑 이라는 말이 있다. 공부도 잘해서 돈도 있어서 아무런 걱정없이 사는 것 같이 보여도 헛똑똑이다. 고래 사냥이라고 송창식씨가 부른 노래 있다. 가사를 보면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인생이라는 것이 술마시고 노래 하고 춤을 춰도 공허함이 남는것 허망함이 남는 것이다. 마치 솔로몬이 쓴 전도서와 같다. 내가 해 아래서 해볼 것 다 해보았다 부도 명예보 지혜도 다 가져 보았지만 인생이 헛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것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질문을 하는 것이 전도서이다. 송창식의 결론은 그래서 동해바다로 가자는데 동해바다를 가도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로 와야 한다. 솔로몬은 노년에 그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젊은이들아 나는 젊었을때 돈 많이 가지고 많은 여자들과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게 하니라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청년들아 너희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이것이 전도서의 결론이다. 교회로 와야 한다. 하나님 안으로 와야 한다. 여기서 회복해야 한다. 여행을 간다고 나를 찾는 것이 아니다. 동해바다에서 고래를 잡는다고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나를 만드신 선한 목적을 찾아야 한다.
엡 4장 17-18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총명이 어두워졌다는 것은 헛똑똑으로 산다는 것이다. 이방인의 특징이 무엇인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있는 삶은 살았으나 죽은 삶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떠나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뼈와 같다. 생령이 떠나 있는 것은 그냥 육체적인 삶을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을 알면 내 인생이 무개념으로 살지 않고 헛똑똑으로 살지 않고 이런 허망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 내가 설교 하는 목적도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을 바로 알자는 것이다.
   내 인생에 갈무리가 된다. 인생 자체가 업그레이드된 삶을 살 수 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능력있게 쓰임받고 싶다면 내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하나하나가 하나님 말씀에 의해 세워져 나가야 한다.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을 세워가야 한다. 육체로만 살려고 하는 짝퉁인간 벗어버리고 명품 인간으로 살아야야 한다. 그게 신앙의 성장이다. 하나님 말씀으로 기둥 세우고, 하나님 말씀으로 다시금 가치관을 재점검하고, 세계관을 재점검해서 온전하게 서 있어야 영적인 큰 건물이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가지만 살펴 보려고 한다. 명품 인생이 무엇이고 짝퉁 인생이 무엇인지? 먼저 짝퉁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 살펴 보려고 한다.
(1)짝퉁 인생
    한마디로 말하면 외모로만 승부하려는 것이 짝퉁인생이다. 전문가의 손이 아니면 명품과 짝퉁을 구별하기 힘들다. 돈은 없는데 명품은 가지고 싶다. 그런데 그 비슷한 것이라고 들고 다니든지 입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에 가면 짝퉁시장이 있다. 나도 선교사님이 한번 가자고해서 갔는데 정말 명품 브랜드가 다 있는데 정말 싸다. 똑같이 만들어낸다. 그런데 나는 구별을 못해도 전문가는 구별한다. 이런것에 너무 신경을 쓰면서 살지 말라는 것이다.
   만화나 드라마를 보면 현실성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꽃보다 남자” 이런거 보면 현실성이 없다. 꽃미남 나온다. 사실 꽃미남이 세상을 망친다. 남자가 남자 다워야 남자지 얼굴에 맛사지 크림이나 바르고 군대 안가려고 발버둥치고 이것이 남자인가? 그래서 다 여자에게 밀리는 것이다. 그 드라마에 보면 재벌2세 고등학생이 나오는데 고등학생 같지 않다. 이런 드라마가 해외로 팔려 나간다. 동남아 같은 나라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시집도 온다. 그런데 현실은 아니다. 드라마가 진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인생도 진지함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얼짱, 몸짱’이란 말이 있다. 얼굴이 짱 몸이 짱이라는 것이다. 짱이예요...마음짱 성품 짱이 아니다. 겉모습의 짱이다. 우리가 외모에 관심을 너무 가지면 속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같은 것을 봐도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이 주연인지 조연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주연인 일단 이쁘고 멋있다. 그러나 조연은 뭔가 1% 부족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가수들도 옛날에는 외모는 별로라도 가창력만 있으면 기타하나가지고 가요계를 평정했다. 조영남 같은 사람 외모는 별로지만 희트곡도 별로 없지만 꾸준히 간다. 그런데 요즘은 가창력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무대 매너를 더 중요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니까 가수의 생명이 짧은 것이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 많이 하는데 가창력을 본다. 좋은 시도같다.
   누가 인기가 있는가 연예인 같은 사람이 인기가 있다. 운동도 잘하고 이쁘고, 노래잘하고, 춤 잘 추고 이런 사람에게 빠지고 그런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멋진 사람이 반드시 좋은 배우자감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아내, 남편이란 외모가 아니라 성품이고 사람 됨됨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마음 속 중심을 본다고 했다(삼상 16:7). 그런데 시간을 지내놓고 보면 하나님만 그러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이 그 사람의 성품일 수도 있고, 인격일 수도 있고, 삶에서 흘러나오는 가치관일 수도 있다.
   대부분 남녀가 헤어지고, 부부가 이혼하는 이유는 대부분 인격이나 성품에 대한 실망 때문이지 못생겨서 이혼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사장님 너무 못생겨서 직장 생활 더 이상 못하겠다. 우리 담임목사님 키가 너무 작아서 은혜가 안 되서 교회 옮겨야 겠다.” 그런 사람은 없다. 우리 예수님도 외모가 뛰어났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예수님이 어디 외모 가꿀 시간이나 있었겠는가 마가복음에 보면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못 드셔서 꽝 마르셨을 것이다. 이틀에 한 번 씩은 노숙하시기 때문에 옷은 남루했을 것이다. 기도를 너무 많이 하셔서 몸은 구부정했을지도 모른다. 제 개인 생각으로는 목회도 목회자가 너무 잘 생기면 유혹이 많고 힘들 것 같다. 내실이 중요하지 외모가 중요하지는 않는다. 왜 하나님 나는 이렇게 못생기게 만들었어요 하나님 원망하지 말자는 것이다. 명품 인생은 외모로 승부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한가지는 잘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다 잘하면 인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시지 않았다. 한 가지를 잘하면 다른 한 가지는 좀 취약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서로 서로 비교하지 말자.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사는 삶이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살면 안 된다.
   좋은 옷을 입고 산다고 명품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크릿 가든 같은 드라마를 나는 잘 보지는 않았는데 요즘 현빈이 입고 나온 트레이닝 복이 인기라고 한다. 그래서 짝퉁으로 많이 나오는데 그 옷이 트레이닝 복이라도 반짝이는 파란색 스팽글을 이태인 장인의 손에 의해서 한땀 한땀만들어진 옷이라고 자랑을 한다. 그 옷을 입었다고 사람까지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속지 말라는 것이다.  
(2)명품 인간
   그럼 명품 인간으로 사는 길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이 원판이고 사람은 복사판이라는 말이다. 영적인 DNA가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다른 피조물들가ㅗ 다르게 창조를 하신다. 다른 피조물들과는 구별 하셨다.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것은 없다. 개를 만들어 놓고 너는 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하지 않는다. 돼지를 만들어 놓고 그 돼지 코에 생기를 불어 넣지 않았다.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창세기 2장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흙을 빚어서 그 코 속에 하나님의 생령을 불어 넣어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생령을 불어 넣지 않았을 때는 그냥 흙이다. 육체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육체로만 만드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생령이 들어갔다. 그래서 사람은 영육혼이 있다. 영을 위해서도 우리는 말씀을 먹어야 하고 육을 위해서는 음식을 먹고 혼을 위해서는 공부도 해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먹지 말라고 그렇게 말한 선악과를 먹는다든지 동생하고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데 때려서 죽인다든지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포기한 것이다. 죄를 멀리해야 한다. 에덴 동산이라고 하는곳이 완벽한 곳 아닌가? 그런데 그곳에서도 악한 일이 벌어졌다. 육으로 살지 말고 영으로 살라는 것이다.
   시편 24편 여호와의 산에 오를자 누구나 그 거룩한 곳에 설자가 누군고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4절) 그리고 히 12장 14절에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깨끗한 손을 원하신다. 하나님을 향한 정결한 마음을 원하신다. 벧 1:15절에 너희는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어라 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가 거룩하심 같이 너희도 거룩하고 하나님 아버지가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유전자를 가지고 살라는 것이다. 변형이 되면 안된다. 악한 바이러스가 우리를 넘어지게 하면 안된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을 부르면 눈물이 나지 않는가? 사랑받기 위해 이 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움에 밤을 지새울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게 될 때 비로소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문이 열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이 땅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붙들어야 한다. 이를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절대로 비교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유일하고 독특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도플갱어라는 독일어가 있는데 나와 똑같은 사람이다. 스마트 폰에 보면 자기와 비슷한 사람 나오는 것이 있다. 나는 이홍렬하고 비슷하다고 나오는데 전혀 그런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나는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다.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시편 8편 4절에 보면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 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 하셨다.
    섹스피어 역시 “하나님이 만든 만물 가운데 최고의 영광스런 존재, 걸작은 사람이다.”라고 말을 했다. 재대로 본 것 같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런데 사람이 걸작품이라고 했다. 사람이 자신의 존재가 “아 내가 사람이지” 하고 깨닫는 순간 사람은 존귀에 처하지만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밖에 될 수 없는 것이다.
   광야에서 세례 받으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 앞에 이 음성을 들어야 한다.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내가 너를 인하여 기쁘다. 스바냐 3장 17절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자녀야! 나는 그분의 가장 귀한 보물이야”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즘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노아의 때와 같이 롯의 때와 같이 똥오줌 못가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노아의 시대 때에는 내가 사람 만든것 후회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물로 쓸어버리신다. 하나님이 한심하다 하면서 탄식하는 인생 살지 말자. 그러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이 되는가? 뺀질거리고 희눈동자 보이고 눈치보고 빠져 나갈 궁리 하고 이렇게 살지 말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만들어 져서 작품으로 살아야 하는데 작품 보다는 상품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늘 비교하면서 아주 슬픈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시편 기자가 말을 한 것 처럼 “사람이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권고하시겠는가?”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없다. 한 사람의 값어치는 값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버리셨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값을 매길 수 없는 값어치를 가진 하나님의 작품들이다.
   탕자의 영광이 언제 회복이 되었는가? 아버지에게 돌아왔을때 회복이 된것이다. 아버지에게로 돌아오기 전에는 돼지 우리에서 돼지 처럼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에게로 돌아오는 순간 아들이 된것이다. 아버지에게 자기 자신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깨닫는 그 순간부터 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정말 아버지 안에서 가치 있는 존재구나 깨닫게 되면서 인간성, 영성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가치 있는 존재들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 가야 한다. 우리의 가치가 주님의 성품을 닮아갈 때 최고에 이른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 하나 만들어 주신 작품이라는 것이다. 걸작품이다. 하나님의 걸작품이는 것은 헬라어 단어에 포이에마이이다. 이 단어에서 poem 시라는 단어가 나왔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시이다. 그래서 시처럼 폼나게 살아야 한다. 삼류소설처럼 살지 말고 삼류인간이 되지 말고 시처럼 폼나게 살자.
   명품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자기 자신이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명품이다. 자신이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함부로 말하지도 않는다. 함부로 행동하지도 않는다. 송명희 시인은 뇌성마비 환자이지만 자신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노래한다. 나 자신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 나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는 그 순간 송명희 시인은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명품이다. 이 세상에 박성일은 나 하나 밖에 없다. 그런데 복제로 나 같은 또 다른 내가 있다면 나는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명품의 가치를 짝퉁 수준으로 끌어 내리지 말자.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선한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만드셨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야 한다. 이것이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세상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초처럼 녹아지면서 다른 것들을 밝히는 삶이다. 어두운 구석에서 녹슬어져 내버려지는 존재가 아니다. 초가 녹아지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을 밝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창세기 1장 31절에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명품이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이다.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이 명품 중의 명품이고 걸작품 중에 최고의 걸작품이다. 천하보다 귀한 인간으로 우리를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야 한다. (딤전 6:17~19)
(3)명품과 짝퉁의 구별    
   예수 믿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카도시, 헬라어로 하기우스, 다 구별된 자라는 뜻이다. 성도의 능력은 다름에 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세상과 구별이 없어졌을 때에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심판을 하시든지 고난을 주셔서 다르게 만드신다.
  노아의 심판이 왜 있었는가? 노아 때 세상에 혼란함이 있었다. 아담의 아들 가운데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가 따로 살았는데 노아시대 때 그들이 섞이기 시작했다. 혼잡함이 생겼다. 그것 때문에 심판이 있었고 그 결과 다시 갈라지게 되었다. 또 민수기 25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하고 음행을 저지른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진짜와 가짜를 갈라 놓는 사건이다. 차이가 없어지니까 심판을 통해서 갈라놓는다. 신약에서도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왜 죽었는가? 교회에서도 사기치고 세상과 똑같으니까 갈라지게 하신 것이다. 구별되기 위해서 그렇다. 진짜와 가짜 명품과 짝퉁은 결국 구별이 된다. 우리는 구별 하지 못하지만 심판자의 눈은 정확하다. 이렇게 심판이나 고난이 오면 알곡과 가라지가 싹 갈라진다. 내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마지막에 판명이 된다. 항상 진품이 되도록 노력하라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선한 목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별된 진짜 명품 같은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정신차리고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고민이 되는 것들이 있다. 신학적인 위기다. 고난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도 정말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신앙 생활을 하는데 헌신적인데 어렵게 산다. 그러면 신학적 위기가 온다. 하나님 안계신가? ‘이상하다! 주의 일을 하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신학적으로 해석이 안 된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잘하는데 결혼이 늦다. 시간은 가고 집에서는 걱정을 하고 …… 그럴 때 기도도 안 하고 껄렁껄렁한 애들은 시집만 잘 간다. 헷갈리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믿음 지키다가 이 꼴이 뭡니까!’ 이게 흔들리는 것이다. 주변에서 믿음 없는 사람들은 말을 한다. ‘뭐 대단한 신앙을 가졌다고 그러느냐 적당히 타협하고 평범하게 살지, 왜 그렇게 유별나게 사느냐.’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때가 위기다. 대충 살라고…… 대충 살면 더 잘산다고…… 사실 이런 것이 제일 큰 위기다. 왜 이럴 때 우리가 절망하는가? 끝이 아닌데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순종하는 대로 고난이 더 임했다. 모세의 말을 듣고 출애굽을 했더니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한다. 당신 말 믿고 여기 까지 따라왔는데 우리 꼴이 뭐냐고...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홍해를 건너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함을 얻고 애굽의 군대는 다 죽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명품과 짝퉁을 구별하는 것은 마지막에 가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명품 인생은 가치 있는 인생을 살다가 가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선하신 목적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시고 심히 보기 좋다고 말씀 하셨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자녀이다. 사랑받고 자란 자녀는 자녀의 자신감이 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피해의식이 없다. 가난하게 살아간 사람은 돈문제가 나오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짝퉁가방을 매고 있을 때에 이것 가짜지 그렇게 지적하면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을 가지고 과민반응을 하게 된다. 가방은 짝퉁을 들어도 옷은 짝퉁을 입어도 두렵지 않다. 내가 명품인데 그런것에 피해의식을 가지지 말자. 설교시간에 꼭 내 이야기를 했냐고 펄펄 뛰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야기만 하면 자신을 무시했다고 상처 받았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한 사람은 점점 혼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어떤 환경, 어떤 조건일찌라고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이 믿음이다. 운동경기를 할 때에 실력있는 사람은 어떤 조건 속에도 이길 수 있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어떤 조건, 상황속에도 다가와도 이길 수 있다. 모든 환경을 극복하여 이겨내는 것이 능력이다. 오늘 본문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스림의 능력을 주셨다. 다스림이란 환경에 통제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에 넉넉히 이기는 것이다. 부자도 좋은 것이고, 가난한 것도 좋은 것이다. 못생겨도 좋고 잘생겨도 좋은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들은 좋은 것이다. 날씨가 맑아도 좋은 것이고, 비가 와도 좋은 것이다. 우리에게 다스림의 능력을 주신 우리는 환경 때문에 좌절하면 안된다.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요셉은 채색 옷을 입고 아버지 집에서 사랑을 받는 자녀로 살때 때도 좋았었고 보디발의 노예로 있을 때도 좋은 때였다. 심지어 감옥에 있을 때에도 좋았다. 모든 조건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전천후 인생이 참된 믿음이고 이런 사람이 진짜 명품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짝퉁인생 살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 선하신 목적대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3.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1. 창조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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