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감리교회
로고
메인이미지


  박성일(2012-06-03 17:17:17, Hit : 2847, Vote : 239
 3.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3.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창세기 2장 18 - 25                              (2011. 2. 27 주일 오전)
   오늘은 창세기 세 번째 시간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 보면 2장 18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아서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고 그에게서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그 여자를 보고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다.” 고 고백을 한다. 하나님이 남자의 몸에서 나왔기에 여자라고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자가 남자의 몸에서 나왔다고 하등한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 몸에서 나온 여자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아담이 여자를 보고 처음 고백했던 그 고백처럼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다.” 이 고백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너는 내것이다. 너 보니까 좋다.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3장 20절에 보면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하와라는 뜻은 생명인데 아담이 그 여자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둘 사이가 깨지고 말았을까? 결론적으로는 남자가 남자답지 못해서 깨진 것이다. 여자가 여자답지 못해서 깨진 것이다. 직접 따먹지도 못하고 아내가 가져다 주는 것 졸장부처럼 받아먹었으면 먹은 것에 대한 책임을 질줄 아는 대장부가 되어야 하는데 쩨쩨한 남자로 전락해 버리는 순간 그들의 관계는 깨진 것이다.
    그리고 아담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는 먹지 말라고 했으니까 여보 먹지 말아야 해 먹으면 죽어 라고 말을 했으면 여자는 먹지 말라고 하는 남편 아담의 말에 순종을 해야 하는데 순종하지 않음에 그들의 관계가 깨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사탄의 말을 듣는다. 남자와 여자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남자의 남자다움과 여자의 여자다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1)남성 다움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이후로 가부장적인 문화 가운데 살고 있다. 조선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통했다. 그래서 고려시대 이전에는 남자가 ‘장가간다’는 말을 많이 했다. 데릴사위로 장인의 집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첫 딸을 나으면 남자 하나 데리고 와서 농사일 하게 하고 일을 시켰다. 여자를 데리고 오기 위해서는 지참금을 주든지 혹은 노동력을 봉사 해야만 했다. 그런데 몽고 침입 이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시대가 되면서 장가간다는 말보다는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여자가 시댁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가부장적인 문화 가운데 살면서 여자 수난 시대, 여자 차별시대가 된다. 남자가 태어나면 대문앞에 고추를 달고 기뻐하고 좋아 했는데 여자아기가 태어나면 짚이나 혹은 솔잎으로 금줄을 쳤다.
   레위기 12장에도 보면 여자가 여자를 낳으면 14일 동안 부정하고 그 산혈이 깨끗해 지기 위해서는 66일이 걸려야 하는데 남자 아이를 낳으면 7일 동안 부정하고 33일 후에 그 산혈이 깨끗하게 될것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남자를 더 많이 선호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귀하게 태어난 남자아이들을 어렸을적부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남자다움에 대해서 강요를 받으면서 살아왔다. 남자답게 행동해라 조금만 소심해도 사내 대장부가 쩨쩨하게 그러면 되느냐? 남자가 왜 그래? 넘어져도 일으켜 세우지 않고 울면 운다고 뭐라고 하고...그럼 남자다움이 무엇인가?
   창세기에 보면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아담의 태도를 보면 전혀 남자답지 못하다. 부인이 가져다준 선악과를 먹고 두려워서 하나님의 눈을 피해서 숲으로 들어갔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면서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있느냐?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이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말을 하기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자기가 선악과를 먹은 그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리고 하와인 여자에게 돌려 버린다.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억지로 먹인것이 아니라 먹어보라고 했다. 그러면 먹지 않을 수도 있고 하나님께 물어볼 수도 있는데 자기 의지로 먹고 나서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저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다고 대답을 한다.
   남자답지 못한 대답이었다. 변명이 최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가 먹은것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 남자의 남자다움은 책임성이다. 책임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 남자는 생명 보험에 싸인을 하면서 흐믓해 하면서 웃지만 여자는 절대로 생명 보험에 가입을 하지 않는다. 누구 좋은 일 시키라고 ...남자의 마음 속에는 죽어서라도 책임을 질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자신이 죽어 없어지더라도 내 아내가 내 자식이 먹고 살만한 보험금을 탄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남자이다.
    아브라함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한다. 가보니 기근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었다. 약속의 땅이라서 굶어 죽더라도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셨으니까 굶어 죽더라도 여기서 굶어죽자 하면서 믿음의 가장으로 결정을 해야 하는데 먹을 것을 찾으러 애굽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중에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아내 사라가 너무 예뻤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내인 사라에게 여동생이라고 속이자고 제안을 한다. 그래야 우리가 서로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다. 어떻게 아내를 누이 동생이라고 속이고 바로의 첩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는가? 진짜 멋지고 당당한 남자들이 멸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뭐가 멋진 놈인가? 왜 요즘 들어 멋진 남성상인 신사가 사라졌는가? 자꾸 쪼그라드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짜 남자에 대해서 목말라 하는가?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남자다움을 회복해야 한다.
   남성들이 오히려 책임의식을 가지고 기도하고 책임 의식을 가지고 성경을 읽고 가르쳐야 한다. 유대인의 교육의 권위는 아버지라고 한다. 아버지가 가르친다. 유대인이나 이슬람이나 그 영적 권위를 남성에 주어졌는데 우리는 남자들이 기도하지 않는다. 고넬료처럼 가장의 영적 권위로 가정을 지킨 대장부다운 모습이 필요하다. 베드로를 집에 초청해서 가족들을 다 불러 모으고 다 와서 예배드리자 하면서 남성의 권위가 회복이 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는 기독교적 남성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회복하는 잔잔한 운동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책임적 남성상이다. 진정한 남자다움은 우선 책임적 모습에서 찾아야 한다. 한자어의 사내 남男자를 보면 ‘밭’ 전田 밑에 ‘힘’ 력力이 합쳐진 것이다.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서 밭에서 힘들여 일하는 모습이다. 진정한 남자는 편안할 때는 뒤에 서고 위험할 때 앞에 서야 한다.
    고전 16:13-14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바울은 또 딤후에서 이제 다툼을 멈추고 거룩한 손을 들어서 기도하라고 한다. 분명 성경은 아버지에게 축복권을 허락했다. 이제 새벽에 나와서 깨어서 기도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새벽에 나오지 못하면 금요일 여호와의 밤에 나와서라도 거룩한 손을 들어서 가정을 축복하고 깨어서 믿음에 굳게 서야 가정이 바로 설 수 있다. 이슬람은 처음에 아기를 낳으면 아버지의 손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아버지가 태어난 아이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알라는 유일한 하나님이시고 마호멧은 유일한 예언자이다.” 아버지의 음성을 처음 듣는다. 아버지가 영적 권위자로 세움을 받는다. 남성들이 영적 리더가 되어야한다. 기도 할 때도 맨 앞자리에 나오고 아이들 다 데리고 기도회 참석하고 ....이런 아이들 잘된다. 늘어지지 말자. 남성들이 일어나야 한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 성경에서 제시하는 남성들의 의무는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과 같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오늘도 결혼을 하면서 검은 머리가 팥뿌리가 머리가 희어질 때까지 당신의 아내를 사랑하겠습니까? 그러면 기쁨으로 “네!”라는 대답을 한다. 그런데 그 ‘네’ 라고 하는 대답을 책임지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나이가 들면서 남성 호르몬인 안드로겐이 줄어든다고 한다. 대신 여성 호르몬의 분비가 시작되면서 중년 이후남성은 남성 호르몬 부족 증후군이 생기는데 이것을 아담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약해 빠진 아버지가 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시대는 남성들은 무기력증과 나태함에 빠져 있다. 남자들이 여성스러워진다. 말투도 여성스러워지고 외모도 여성스러워진다. 옷을 입는 것도 여성스러워지고 장신구도 하고 예전에는 남자들이 화장을 하지 않았는데 화장하는 남들도 많이 생기고 책임적이 아니라 의존적으로 바뀌는 것을 본다. 유난히 늘고 있는 연상연하 커플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일부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누나가 좀 먹여 살려주세요’ 요즘 남자 애들이 남자가 아니다. 남자애들이 하는 얘기가 주로 ‘힘들어요, 무거워요, 혼자 있고 싶어요, 나가기 싫어요, 햇빛이 강해서 얼굴 타요’ ‘군대가기 싫어요’ 그래서 군대도 여자가 간다. 이게 남자가 할 얘기가 아니다. 바퀴 벌레 하나에 놀라서 도망치는 것이 남자인가
    미국의 유명한 가정회복 사역자 제임스 답슨의 책 Bringing Up Boys에서 미국사회의 모든 문제의 뿌리는 남자를 남자답게 키우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버드의 연구 기관에서는 미국의 청소년의 문제가 심각하게 일어난 것은 아버지의 역할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남성다움이 회복된다면 모든 문제들이 회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도 남성의 회복이 있어야만 진정한 부흥이 있을 수 있다. 남자의 마음, 남자의 열정이 회복되어야 교회의 풍성함 가정의 풍성함이 있다. 희생할 줄 알고, 섬길 줄 알고, 죽을 줄 아는 모습들, 피 흘리기까지 충성하는 모습들, 이런 남성상이 회복되어야 한다.
   느헤미야 4장 14절을 보니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독려하면서 그가 외쳤던 메시지가 두가지이다. 첫 번째 메시지는 ''저희를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기억하자'' 그리고 두 번째 메시지는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해 싸워라’ 누굴 위해서 싸우라는 것인가? 아내와 자녀와 집을 위해서 싸우라 그랬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일어난다. '우리가 보호할 대상이 아내와 자녀와 집이 있다,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 아내와 자녀와 집을 위해서 일어나자' 그러니까 남자들이 일어났다. 이게 남자이다. 그런데 책임지려고도 하지 않고 도전하려고도 하지 않고 희생하려고도 하지 않고 잔머리 굴리면서 힘들다고 무겁다고 피곤하다고 하면서 도망치려고 하지 말자. 남자다움은 그 여자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가 이게 남자다움이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서 죽으셨던 것 같이 남자들도 그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 죽을 수 있을 때 그게 남자다움이다. 죽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자.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자. 영적 자존심을 구기지 말자. 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어요 저는 잘못없어요 이렇게 비굴한 변명 늘어 놓지 말고 여자를 보호하고 책임질줄 알고 나와서 무릎꿇고 기도할줄 아는 남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남자들이여 여호와의 밤에 나와서 깨어서 기도하자.
(2)여자다움
    우리나라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살았기에 여성들이 눌려있었다. “그저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만 낳아라” 임신한 사람은 한번쯤은 들어본 말이다. 꼭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압력이 느껴지는 말이다. 아들을 낳지 못하면 씨받이라도 얻어서 낳으려고 하는 욕심들이 있었다. ‘아들 낳는 비법’ 이런 것들이 있어서 아들을 낳은 산모의 옷이나 물건을 훔쳐와서 지니기도 했고 사내 아이를 낳고 금줄에 매단 고추를 몰래 훔쳐 와서 다려 먹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금줄에 달린 고추를 도둑맞은 집에서는 그 아들의 장래에 좋지 않은 일들이 닥친다고 생각을 해서 금줄의 고추절도는 천금의 돈을 훔치는 것보다 더 큰 죄로 여겼다.
   얼마나 여자들을 잡았던지 태종 12년에는 여자들이 문밖출입을 할 때는 얼굴을 가리도록 했다. 그래서 여자들은 일년에 몇 번정도 흥겹게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그 놀이라는 것이 널뛰기 그네타기 이다 널을 띠면서 밖의 세상 좀 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눌리면서 살았기에 여자들은 남자다워지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21세기 사회 변동의 핵심은 여성이라고 했다. 존 나이스비트는 ‘21세기는 가상(Fiction), 감성(Feeling), 여성(Female) 등 ’3F‘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21세기는 감성의 시대이고 여성의 시대라는 말이다. 21세기의 여자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남자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더 많이 여자다워져야 한다.
   잠언 31장에 보면 현숙한 여인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현숙한 여인을 ‘진주보다 귀한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진주는 이 땅에서 ‘가장 귀한 보배’라는 의미로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런 현숙한 여인이 복될 뿐만 아니라, 이런 여인을 얻은 그 남편도 복되다는 말이다. 우리가 현숙한 여인이란 말을 흔히 말하는 ‘현모양처, 혹은 요조숙녀’로 이해하기 쉬운데, 성경의 원어 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본래 그 뜻은 ‘힘이 있다’라는 뜻이다.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지혜롭고 유능한 여인, 즉 능력이 있는 여인’을 의미한다. 여자도 여자다움이 되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야 한다. 잠언 31장에 보면  현숙한 여인은 1) 필요를 채워주는 여인(11, 15, 20절)이다. 남편과 가정과 이웃에게 필요를 채워주는 여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제일 먼저 강조하는 것은? 남편과의 관계이고 그 다음이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이다. 그러니까 현숙한 여인은 먼저 남편의 필요를 공급하는 것이고, 그 다음 나머지 가족과 이웃에게 필요를 공급해 주는 여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부부 상담가의 얘기가 있다. 어느 교회 부부인데 남편이 아내에게 평소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주일이 되면 일찍 곱게 차려입고, 어떨 때는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고 나가기도 하는데, 남편이 볼 때는 주일날 보는 아내가 다른 여자로 보인다고 한다. 평일에는 도무지 꾸미지 않는 부인이 주일에는 단장을 하고 나가는 부인이 상당히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가끔 남편의 신앙이 약한 상태라 그런 아내를 보면 “오늘은 저 예쁜 여자하고 어디 좀 놀러 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은  주일날 곱게 차려입은 아내에게 “오늘 당신 보니까 참 예쁜데 오늘 교회 하루 빠지고 데이트나 할까?” 했더니 부인 입에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더란다. 그 소리를 듣고 나니까 남편이 무슨 이런 여자가 있는가? 하고 상담을 받으러 왔다는 것이다. 그 상담가는 아내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지 말고, 평일이나 토요일 오후쯤에 주일처럼 예쁘게 단장하고 뱀같이 지혜로운 아내가 되세요. 그래야 주일날 남편을 교회에 잘 데리고 갈 수가 있습니다”했단다. 현숙한 여인이라고 할 때 초점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있다는 것이다.
    창 2:18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자를 창조하신 목적은 남자를 돕는 배필의 역할이었다. ‘돕는 자’를 일컬어 히브리어로 ‘에제르’라고 하는데, 이는 홀로 있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을 붙잡아 주는 사람을 말한다. 아내는 이처럼 남편이 쓰러지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렇게 현숙한 아내의 내조를 받는 남편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리더가 되어 존경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빌리 그레함 목사의 아내 루스 그레함은 “내 남편을 변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고, 내가 할 일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남편을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현숙한 여성은 자신을 가꾸는 여인이다.(22절)(여성다움, 현숙한 여인)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자신의 외적인 모습을 꾸민다는 이 구절은 세속적인 것 같지만, 이것은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말씀이다. 이 구절을 여 성도님들은 늘 묵상하시고 실천해야 한다. 젊을 때 가꾸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나이 들어서도 계속 가꾸어야한다. 그런데 여성들이 가족을 위해, 자녀들을 위해 허우적 거리다보면 자기를 가꿀 여유가 없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말씀을 읽으면서 자신을 위로한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 남편은 하나님이 아니다. 남자는 외모를 중시한다. 인간은 외모를 중시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꾸며야 한다. 하나님은 중심만 보시고도 만족하시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외모도 성의를 보여야된다. 아무리 사소한 것도 닦으면 윤이 난다. 옷도 단정히 입고 머리손질도 잘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다.
    예쁘면 용서가 된다고 외모의 아름다움을 끝없이 추구한다. 그래서 어떻게서 든지 살을 빼려고 하고 예뻐지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런 몸부림 중요하다. 텔레비전을 보면 거기에 나오는 여자들 다 예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자들이 기준이 되면 안 된다. 마이 프린세스에 나오는 김태희 머리핀을 했다고 해서 내가 김태희 처럼 예쁠 수 없다. 자기가 연예인처럼 그렇게 돼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여자들이 다 연예인처럼 몸이 좋은것 아니다. 다 초콜렛 복근 가지고 있는것 아니다. 저처럼 수박복근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김태희처럼 예쁘지 못할 바에게 착한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착한 여자가 시간이 지나면 얼굴 예쁜 여자보다 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도 남자이지만 남자의 눈은 예쁜 여자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웃는 여자에게 호감이 간다. 얼굴이 밝은 여자가 좋다. 원판 불변의 법칙있다. 그러나 웃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고사를 드릴 때 돼지 대가리를 놓고 고사를 드리는데 웃으면서 죽은 돼지 대가리가 가격이 더 비싸다는 것이다. 밝은 모습을 갖자.
   그리고 나는 기도하는 여자들이 그렇게 예쁘다. 믿음 좋은 여자가 좋다. 화장하는 시간만큼 기도하라는 것이다. 예쁘게 가꾸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 선천적으로 예쁜 것도 좋지만 후천적인 예쁜 것이 더 중요하다. 특별히 기쁨가지고 살고 열심히 새벽 나와 기도하고 금요일에 나와 기도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여자이다. 밝은 마음과 신앙생활유지하자.
   그리고 너무 강한척 하지 말자. 남자의 자리를 남겨두자. 남자는 너무 강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남자가 해야 할 일을 남겨두는 센스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여자는 무조건 약해야 한다. 왜 아줌마들이 매력이 없는가? 겁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무서운 것 보았으면 어머 하면서 무서워하자...손바닥으로 바퀴벌레 때려잡지 말라는 것이다.
   여자들이 자꾸 남성화 되면 안 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여성 호르몬이 잘 생성이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 목소리가 자꾸 남자들 목소리처럼 변화는 것이다. 그래서 갱년기 여성들의 목소리는 하도 집에서 소리를 질러대서 내목소리 비슷하다. 그래서 약을 의존하고 석류 같은 것도 먹는데 제 아내도 40대 중반이 넘어가니까 전에는 여성호르몬에 석류가 좋다고 해서 석류즙을 먹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제가 말씀을 준비하다가 자료를 찿다 보니까 석류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 칡이다. 학자들이 골다공증에 걸린 쥐에 칡 농축액을 9주 동안 먹였더니 뼈가 분홍색을 띠며 정상에 가깝게 변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 칡은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석류보다 625배보다 많아서 암예방, 골다공증에 좋으며, 특히 갱년기, 폐경기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칡은 갱년기로 오는 우울증을 풀어내는 여성에게 행복과 축복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한다. 칡 많이 먹어라 갱년기를 탈출하고 회춘하고 싶으면 윤장로님께 문의해라 힘들게 캐온 칡이다.
   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에게는 모든 것을 다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또한 투자한만큼 남자는 더더욱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 백원도 내지 말라. 절대 물질로 주지말고, "고마워."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 남자는 그 고마워 한마디에 여자에게 모든 것을 준다. 월급이 아내 통장으로 거의 들어가는데 그러면 그냥 꿀꺽하고 이것 떼고 저것 떼면 없고 그러면서 바가지 긁지 말고 작은 돈이라도 고마워 하면 그냥 녹아 버린다. 기를 살려주고 인정해 주면 남편은 아내의 영원한 종이 될 것이다.
(3)돕는 배필
    처음 아담과 하와는 사랑했다. 콩깍지가 낄 정도로 사랑했다. 서로 벗은 모습을 보고도 부끄러움이 없었고 하나님은 하와를 만드실 때 돕는 배필로 만드셨다. 나이가 들면 자꾸 외로우니까 개라도 키우면서 살아야겠다 하지만 사람하고 같이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오해 하는 것은 갈빗뼈를 취해서 여자를 만드셨다는 것인데 왜 하필 갈빗뼈인가? 복숭아 뼈도 있고 다른 뼈들도 많았는데 하필...그런데 갈빗뼈는 친구같은 사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여성이 남성의 갈빗뼈를 취하여 지음을 받았다는 표현은 여성이 남성의 생명이며 절대적 사랑의 대상이라는 뜻이다. 갈빗뼈는 사람의 심장과 폐를 보호하고 감싸는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남편은 남성대로, 아내는 여성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가질 때 자유롭게 배우자를 이해하고, 그의 역할을 도와 줄 수 있다. 그래서 처음 볼때 그 느낌 그대로 유지를 해야 한다. 사랑과 신뢰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멋진 남성과 멋진 여성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은 느낌이 아니라 명령이다. 마가복음 12장 30절을 보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랑이라고 할 때 감정적인 것, 마음도 물론 있지만 목숨도 있고 뜻도 있고 힘도 있고 의지적인 부분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할려고 의지를 가지니까 사랑하는 것이고, 느낌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 처음 만났을 때 그 느낌이 사라지면 “왜 살아” 이러는 것이다. 필링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항상 뜨거운 것만은 아니다. 의지적으로 고백을 하자. "봄은 너로 인해 존재하고 그 봄이 너의 아름다움에 도리어 밀리는구나!"라고 말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런 말을 반복하라! 그러면 여자는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행복에 겨워할 것이다.
   신승훈 노래 가사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다. 그대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너는 장미 보다 아름답지 않지만 그보다 진한 향기가 ..너는 별빛보다 환하지만 않지만 그 보다 더 따사로워 ....그대 나만을 바라보며 미소를 주네”
베드로전서 3장 7절에는 "남편된 자들아 지식을 따라 아내와 동거하라.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자의 속성을 이해하고 연약한 그릇같이 귀히 여기라는 가르침이다.
    남자는 여자를 귀히 여기고 지식을 따라 여자를 잘 섬기라! 여자는 남자를 그냥 놔두고 돌아올 수 있는 여지 남겨두라! 그리할 때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가정이 만들어질 것이다.





4. 선악과 - 치명적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
2. 명품 인간 그리고 짝퉁 인간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