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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04-06-16 06:02:11, Hit : 2720, Vote : 486
 (43)인생은 나그네 길-사라의 죽음(창23:1-16)


(43)인생은 나그네 길-사라의 죽음
창23:1-16                           (2004. 6. 13 주일 오전 9시)
   오늘 창세기 23장은 사라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난번 설교는 아브라함의 시련에 관한 말씀을 드렸다. 아브라함의 허물벗기이다. 22장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새롭게 거듭났다는 말씀이다. 이삭의 드림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유심히 관찰하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셨다는 말씀을 드렸다.
  22장에서 23장의 시간적인 간격은 20년 정도가 된다. 이제 이삭의 나이가 37살 정도가 되었다. 20년간 아브라함의 가정은 정말 평화 그 자체였다. 사라의 얼굴에서 웃음을 가져다준 이삭이 아무 문제없이 어엿한 청년으로 자랐다. 그런데 아들이 장가를 가는 것도 보지 못하고 사라가 죽는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23:1절에 보면 "사라가 일백 이십 칠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그래서 오늘 우리가 들을 말씀은 사라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창세기에 보면 사라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것 같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지금이나 아브라함이 살던 시기나 최고의 가치였다. 사라가 평범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면 사라의 미모 때문에 아브라함의 가정에 어려움이 없었을 텐데 사라의 미모로 인해서 아브라함은 치명적인 거짓말을 두 번씩이나 한다.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일이었다. 나그네로서 아무런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했던 아브라함을 한편으로 이해를 해 보지만 그래도 아내를 누이라고 두번씩이나 거짓말을 한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상당히 두려워 하면서 나그네로 살았던 것 같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난민이 되어서 애굽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가는 말씀이 나온다.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서 아브라함의 가정만 애굽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많은 가나안 사람들이 먹거리를 찾고자 애굽으로 들어 갔다. 그 많은 난민 여자 중에 사라의 미모는 돋보였다. 눈에 확 띄는 여자가 사라였다. 그래서 사라의 아름다움이 온 애굽 사람들뿐만 아니라 바로의 신하들 그리고 바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를 결국 궁으로 취했고 그로 인해서 아브라함은 양과 소와 노비 나귀 약대 이런 것들을 수없이 얻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람의 아름다움이 그에게 큰 유익이 될 수 있다.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에게 젊음과 아름다움은 큰 무기이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나서 시간이 지나가는 그 순간 늙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대부분 노화되는 것은 비극이다. 거울을 보면서 내가 정말 싫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내 얼굴이 폭탄 수준으로 보여질 때도 있을 것이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늙어 가는 모습 눈에는 주름이 지고 턱과 목은 처지고 배는 불룩하게 나오고 그래서 한번 이것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온몸을 리모델링 한다. 겉모양의 리모델링이 아니라 속마음의 리모델링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어떤 사람이 사람의 몸을 완벽하게 꾸민다면 얼마나 들까 견적을 뽑아 보았다. 물론 병원마다 약간의 가격차이는 있겠지만 쌍꺼풀 80만원 큰 눈 만드는 것 60만원 콧대 높이는 것 (고어택스 삽입) 2백만원, 이빨을 하양게 하는 것 200만원, 턱교정, 튀어나온곳이나 넓적한 것 천200만원, 여자의 경우 가슴확대 (더불루멘 삽입) 8백만원, 배 지방제거, 윗배 300백 아랫배 400백 굵은 종아리 교적 3백50만원 주근깨 기미치료 3백80만원 전신피부 치료 5백만원 눈밑의 지방제거 2백만원 늘어진 뺨 목주름 8백만원 이 비용을 합하면 6천만원 정도 든다.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이런 성형의 유혹을 벗어나기는 정말 힘들다. 요즘 미니 홈피 열풍이 있는데 자신의 얼굴을 그곳에 올려놓는다. 그런데 못생긴 사람이 하나도 없다. 다 예쁘다. 마치 바비인형과 같다.
  완벽한 여성의 모델이 바비인형이다.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몸이다. 그녀의 몸도 중요하지만 그녀가 누리는 것, 호화 별장, 고급가구 드레스 의류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아바타의 경우 정말 아름답게 꾸미려고 노력을 한다. 거기도 도토리를 사가지고 연신 아름답게 옷을 입힌다. 아름다움이 이렇게 상품화된다면 여성의 몸은 인공적이다. 바비인형하고 다를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미니 홈피에다가 자기 얼굴 박아놓고 아이템을 사들이면서 아바타와 미니룸을 꾸미는 것을 보면 이런 이미지가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과 비슷하다. 소비주의의 변형과 같다.
   베드로가 여인들에게 당부한 말씀 가운데 벧전 3:3-5절까지의 말씀에 보면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사라의 육체적인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그의 행위의 아름다움을 말씀하고 있다. 결국 그녀는 노년에 열국의 어미로서 살다가 향수하고 죽었다. 아브라함이 살던 때에도 여성의 이미지는 아름다움과 성이 여성으로서의 가격이 매겨지는 시대였기에 아름다운 사라는 그녀의 미모로 인해서 두 번의 시련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웠던 사라도 때가 되니 늙고 죽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나그네이지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약 4:13-17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헨리 나웬은 인생이란 자아에 대하여 죽어 가는 기나긴 여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아가 얼마나 죽었느냐에 따라 그 인생을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죽는 순간까지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살았다면, 이런 사람이 만년을 살아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구약 창세기 5장에 보면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인데 그는 969세를 살았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가 한 일이라고는 자녀를 낳았다는 기록밖에 없다. 그러나 창세기 5장에서 가장 짧게 산 사람은 에녹이다. 365세 살았다. 므드셀라와 비교해서 짧게 살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얼마나 많이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
   사라의 생애가 훌륭한 것은 그가 오래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잘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고, 자기 남편을 주라고 호칭하면서 순종했다. 물론 주라는 호칭 자체가 여성신학자들이 듣기에는 거북한 칭호라고 할지라도 서로 서로 존경하면서 파트너로서 이런저런 큰 일 없이 살았다.
    잘은 모르지만 결혼해서 100년 가까이 그들이 부부지간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 많은 세월 기나긴 여정 남편 하나 믿고 갈대아 우르에서 60여년간 떠돌이로 살다가 결국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죽는다. 아브라함은 거부였다. 집에서 길리운 군사만 318명이었고 전쟁에서 이겼고 애굽에서도 많은 돈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나 60년을 가나안 지방에 살았지만 항상 나그네였으며 이방인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돈이 많은 부자라고 할지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특징을 떠나가는 나그네 인생으로 규정한다. 때가 되면 모든 인생은 흙으로 돌아간다.
   남겨진 두 남자 아브라함과 이삭은 자기의 부인과 엄마를 위해서 애곡을 한다. 그래도 아무리 사랑하는 관계라고 해도 죽은 사람과는 함께 살 수 없다. 아브라함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녀를 위해서 우는 일과 그녀가 매장될 매장지를 마련해 주는 길이었다. 지금의 땅이 영원히 머무를 곳이 아니다. 그래서 묻힐 땅도 없었던 사라를 위해서 아브라함은 땅을 구입한다. 이 땅을 구입하게 되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은 400백 세겔을 지불했다. 당시의 화폐 단위로 하면 거금이다. 헷족속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요구를 분명하게 말함.  헤브론-마므레 막벨라 굴로 불리워지는데 밭도 포함되었다. 중동 지역은 시체를 매장 한다기 보다는 동굴 속에 둔다. 한 동굴에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온 가족이 그 무덤을 사용함. 요즘도 사람이 죽으면 선산에다 묻는다.  장례식이 일어났는데 밭 귀퉁이에다 무덤을 마련한 것을 보았다. 즉,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자기 땅임을 표시한 것이다.
   댓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땅을 가지기 위해서는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댓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도 댓가를 지불해야 하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도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신앙 생활도 내가 20년 혹은 30년을 믿었어도 변화가 없으면 안 된다. 교회생활은 햇수를 거듭하면서 경력을 쌓는 장소가 아니다. 헌신의 댓가와 기도의 댓가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것은 상식적이고 평범한 이야기이다. 인생 자체가 씨를 심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 씨앗은 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씨앗 속 안에 있는 비전이다. 열매이다. 노자는 씨앗 속에 담겨 있는 것을 보는 것 그것이 바로 천재의 눈이라고 했다.
  이 땅을 아브라함이 산 것이다. 그리고 이 산 땅이 아브라함의 후손의 것이 된다. 사도 바울은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은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바울은 씨와 양식을 분명하게 구분을 하고 있다. 심을 것과 먹을 것을 구분한다는 것이다. 씨앗은 먹는 것이 아니라 심는것이다. 심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다. 씨앗을 먹어버리면 미래는 없는 것이다.
  창 47장에 요셉의 지혜를 보면 애굽 땅에 7년간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 사람들이 와서 씨앗(seed)을 달라고 한다. 이 씨앗이 결국 수고하여 먹을 것이 된다. 양식이 된다.(food)가 되는 것이다. 이 씨앗이 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한다. 그래서 농부에게 중요한 태도는 성실함이다. 땅이라는 것이 원래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피와 땀의 댓가 없이는 아무런 것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의 의미는 노력한 대로 얻는 것이 복이다. 그래서 happy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지만 blessing은 요행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흘림의 댓가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운전면허를 땃다고 다 운전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고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시 126편 5-6절에 보면 "눈물을 흘히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는 말씀이 있다. 분명히 계산을 치르고 댓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헷 사람들에게 가서 말하기를 "주여, 당신은 하나님의 방백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원하는 곳 어디든지 쓰십시오." 그런데 에브론 사람은 그냥 쓰라고 말을 한다. 이 사람들은 창세기 13장에 롯과 헤어질 때 아브라함은 사람을 택했는데 그 때 이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 롯이 동방원정군에게 포로로 잡혀 갔을 때에도 아브라함을 도와서 롯을 구해준 사람들이다. 그냥 주겠다는데 굳이 돈을 사겠다고 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시대의 통용대로 은 사백 세겔을 주고 그 막벨라 밭 굴을 사서 그곳에 사랑하는 아내를 매장했다.
  영어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은 '제 가치에 꽉 찬 값'(the full price)라고 되어 있다. '충분히 받을 만큼 받고 팔라'고 했다. 에브론은 아브라함에게 주라고 이야기한다. 상대방을 높이면서 부르는 말이다. 그저 받아주기만 해도 감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 아브라함의 반응을 보면 12절과 13절에 나와 있는데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 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창23:12,13). 돈을 지불하고 사겠다고 한다. 아마도 그 땅이 공시지가로 400세겔 된 것 같다. 15절 말씀에 보면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창 23:15)
   아브라함이 지금 헷 사람들로부터 이 정도의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지금처럼 계산할 것은 계산할 줄 아는 생활을 해왔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에 그냥 가지라 한다고 슬쩍 슬쩍 받아먹는 삶을 살았다면 그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그렇게 존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창세기 49장에 보면 야곱이 죽을 때도 야곱은 애굽에서 죽으면서 아들들에게 자기를 가나안 땅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지내 달라고 하면서 '그 굴은 아브라함이 헷 사람에게 산 것이라'고 했다. 이때 아브라함이 땅을 사 놓았기에 그 후손들이 마음놓고 산다. 그런데 그냥 받았다면 그 후손이 소유권에 대한 분쟁이 후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문서상으로 확실하게 하기 위한 아브라함의 조치였던 것 같다. 후손들이 떳떳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들은 물질에 대해서 분명했고, 불로소득을 거절했다.
   다윗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징계를 거두시면서 오르난의 타작마당에가서 번제를 바치라고 하셨다. 다윗이 오르난에게 가서 그 말을 하니까 오르난이 모든 것을 다 드릴 테니까 그냥 번제를 드리시라고 했는데 그때 다윗은 '왜 내가 나의 제사를 드리는데 너의 땅에서, 너의 소를 잡아, 너의 나무를 가지고 드리겠느냐'고 하면서 그 땅에 상당하는 충분한 값을 지불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 땅을 산 후에 솔로몬이 나중에 성전을 이 땅에다가 지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시달려와서 하나님이 기드온 사사를 세워서 미디안 군대를 물리쳐 주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좋고 고마워서 기드온에게 자기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했다. 그때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이겼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데 왜 내가 너희의 왕이 되겠느냐'고 거절을 했다. 아주 잘 한 것 같은데  기드온이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 세우고는 '너희들이 미디안 백성들에게서 탈취한 금붙이들이 있는데 그것은 나에게 주면 좋겠다'고 했다.
   왕이 안되겠다고 했지만 그냥 돌려보내려니 뭔가 아쉬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수고했으니까 그 정도는 챙겨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기드온의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즐거이 그것들을 기드온에게 주었다고 했는데 그때 받았던 돈이 금이 1,700세겔이나 되었다. 엄청난 돈이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다
    65세의 나이로 아브라함을 따라 가나안에 도착하고 가나안에 도착을 한지 62년만에 아들 이삭을 낳고 아브라함 곁을 떠난 것이다. 사라의 죽음 후에 아브라함은 사라를 위해서 애통하면서 울었다. 좋은 관계 속에서 노년의 삶을 보냈다. 가정 사역 연구소에서 설문 조사를 해 보았다. 40대의 기혼 여성과 남성들을 상대로 하여 "당신이 가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남편은 48%가 아내라고 대답을 했고, 여성들은 44%가 남편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 나머지는 자신과 자녀들과 부모님이었다. 이 설문의 응답이 옳다고 생각한다. 남편에게는 아내가 제일이어야 하고, 아내에게는 남편이 제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설문 조사는 그 대답이 달랐다. 즉 결혼한 직장 남성들에게 당신은 누가 제일 무서우냐고 물었더니 상당한 수의 남자들이 첫 번째로 아내를, 그 다음으로 직장 상사를 들었다. 왜 아내나 남편이 상대방에게 제일 무서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
    아내나 남편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생각하면서 살자는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내 아내 내 남편이다. 옆집에 있는 여자가 아름다워도 옆집에 사는 남자가 돈을 잘 벌어 준다해도 소용이 없다. 젊었을 때는 내가 대단한 존재 같지만 나이가 들면 그래도 오랫동안 함께 해온 아내가 최고인 것 같다. 나는 그래도 지금에서야 그것을 깨달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식들은 내 것이 아니다. 아내만이 내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내가 곁에 있을 때에는 아내의 중요함을 전혀 깨닫지 못했는데 세상을 떠나고 나니까 아브라함에게는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아내가 죽은 후에 다시 한번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나그네라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와서 부를 축적했지만 아브라함이 땅을 매입한 것은 아내를 위해서 뿐이다. 성경에 보면 그는 은, 금이 풍부한 사람이었고 육축이 심히 많은 사람이었다. 그를 따르던 사람도 많았다. 아브라함이 땅을 구입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언제든지 땅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그네로 살았지 땅을 구입하지 안았다. 그는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요즘 같으면 조금이라도 돈이 있으면 부동산에 투자를 한다. 가장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부동산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엄청난 부동산 거품이 들어가 있다. 집이 살기 위한 곳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곳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60년동안 제물을 모으는데 "나는 동산에는 투자하지만 부동산에는 투자 안 한다." 이게 아브라함이 재물을 모으는 방법이었다. 아브라함이 왜 가나안땅에 들어와살면서도 땅을 사지 아니했느냐? 이유는 한가지 이곳은 잠시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나안 땅은 자기가 살던 곳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났던 갈대아 우르와 비교 할 때 엄청나게 척박한 땅이었다.
   야후 코리아 대표인 이승일 사장이 그런 말을 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돈을 버는 것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돈벌이만 추구하는 것은 주주나 야후에 투자한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다. 땅을 사거나 건물을 사는 것은 우리의 메인 비즈니스가 아니다. 돈을 확실하게 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수익에는 부정적으로 본다 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기업은 다른 곳에서 이익을 내지 못했더라도 부동산에서 돈을 벌어서 그것으로 이익을 낸다는 것이다. 그러면 핵심사업에 충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나그네이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한줌의 재뿐이다. 사라의 죽음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많은 것을 생각했다. 아무리 아름다움이 뛰어난다 해도 모든 인생은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고의 댓가는 항상 지불해야 하며 우리 인생의 분명한 정체성을 갖자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모두가 나그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뒤엉킨 영성(이사야 48장 :12-18)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요한 1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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