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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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04-07-05 20:38:46, Hit : 2708, Vote : 480
 뒤엉킨 영성(이사야 48장 :12-18)


뒤엉킨 영성
이사야 48장 :12-18                        (2004. 7. 2 금요일 철야)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직접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나도 저런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데 뭐니 뭐지 해도 탕자가 제일 부러운 사람이다. 당시 유대교 법에 의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유산 이야기를 꺼내면 그 자식은 동네에서 왕따를 당한다. 집단 따돌림이다. 그 이야기는 아버지 빨리 죽어주세요 하는 말하고 같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작은 아들에게 갈 재산을 떼어서 내어준다. 그리고 그 아들이 나간 그 시간부터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버지가 먼길까지 나가서 아들을 기다리는데 왜 기다렸을까? 아마도 동네 사람들이 먼저 이 아들을 발견하면 저놈의 후레자식 하면서 돌을 던질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한 아버지의 또 다른 배려이다.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예상대로 탕자는 거지로 돌아온다. 탕자가 얼마를 가지고 간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돈을 다 쓰고 왔다. 세상사람들이 기준을 잡는 것은 돈이다. 돈이 기준이 된다. 특별히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일어났을 때 돈의 가치가 사람의 가치였다. 100파운드의 돈을 가지고 있으면 인격이 100이다. 200파운드의 돈을 가지고 있으면 인격이 200이다.
  그래서 탕자도 이런 기준에 섰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탕자가 돈이 많을 때는 탕자 곁에 늘 있었지만 돈이 떨어지자 탕자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의 가치가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값이 매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많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거지가 된 탕자는 결국 돼지새끼하고 먹을 것 가지고 싸운다. 본능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 음식을 가리지 못하듯이 지금 탕자 역시 돼지가 먹는 것도 그냥 먹는 것이다.
   그런데 탕자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좋은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한테...그런데 나는 참 좋은 아버지가 계시다. 우리 아버지, 또 하나님 아버지...선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아버지...모든 자식이 다 그렇겠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오랫동안 보아온 아버지이다. 언제나 다른 것 생각하지 않으시고 평신도 때에는 38살에 나사렛 교회의 장로가 되시고 제가 아는 아버지의 모습..그래서 나 같은 탕자이지만 나는 탕자가 부럽지 않다.
   내가 힘들어 할때 함께 울어 주시는 아버지...교인들이 아퍼할때 성일아 이것 어떻게 하냐 하면서 울먹이시는 아버지...강대상에서 바라본 아버지와 내가 가장 가까이 느끼는 아버지....
   어떤 때는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언제든지 침묵하시는 아버지...나는 내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지켜 주시고 나를 보호해 주시고 내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 감격과 감사 때문에 눈물이 난다.
   우리 어머니는 실수가 없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말이 없으시기 때문에 어느때는 나 조차도 다가서기 힘들 정도로...힘든 일이 있어도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는 어머니..나는 그 어머니가 너무 쌀쌀 맞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는 표면적으로는 쌀쌀 맞다고 생각되어질지라도 속에는 정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아들, 엄마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두 아이들의 아버지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다. 그리고 대광교회의 목사이다. 이것만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것만 생각하니까 나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위치에서 벗어나면 나는 죽는다. 하나님이 나를 가만히 나두지 않을 것이다. 좋은 아들 좋은 목사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은 나를 확실하게 아는 것일 것이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좋으신 아버지라는 것과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라는 것을 믿는다. 그 진심을 믿는다. 우리 좋으신 아버지 처음이요 마지막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아버지 이것이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다. 모든 것의 주인 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아버지...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아버지이다.
   그래서 우린 언제나 하나님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나 부터 시작되는 시작은 문제가 있다. 나부터 내 생각부터 출발 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도저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물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광야는 사람 살곳이 못되지만 그곳은 정말 좋습니다. 10명의 정탐꾼들도 그 땅이 좋다는 것은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나로 부터의 출발이다. 우리는 거기에 살고 있는 아낙 자손하고 키를 대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메뚜기입니다. 이것이 나로부터의 출발이다.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이 너 네가 너에게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알처럼 정말 많은 자손을 너에게 주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아브라함의 대답은 나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요 하나님, 이미 사라는 달거기라 끊어진지 오래 된 석녀입니다. 말라빠진 여인, 노쇠한 여자입니다. 하나님 웃기시는군요....우리도 가끔 '웃기지마' 이런 말을 잘한다. 우수워서 웃기지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 같지 않는 소리,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 실현 불가능한 소리, 너무 황당한 소리]를 빗대어서 [웃기지 말아라]고 말한다. 지금 오랜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 왔는데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을 들었지만 웃기지 마세요 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의 발목을 잡는 믿음이다. 도저히 지금 상황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웃기지 마십시오 아브라함의 생각에 내가 아이 가지지 위해서 얼마나 힘쓰고 애를 썼는지 아십니까? 이런 것들이 성장의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풀러스 알파는 별로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고 애쓰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반드시 노력하고 애쓴대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농부가 아무리 봄에 씨를 뿌리고 땀흘려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농사는 망치고 비가 너무 적게와도 망치는 농사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번에는 올백을 맞을 거라고 생각해도 시험전날 갑자기 아프면 시험 망칠 수 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미디안 광야에서 그럭저럭 살고 있었던 모세에게 하나님의 플러스 알파가 임했다. 80세에 민족의 지도자가 된다. 어린 나이에 거인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을 하였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예수 믿는 사람들은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들이 많이 있다. 말라비틀어진 사라의 몸을 보면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웃기는 일이다. 어떻게 저 여인의 몸에서 아이가 나올 수 있지? 웃기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90세에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  
   나로부터 출발하면 절망적이다. 나로부터 출발하면 한국 교회는 이미 종말을 고했다고 한다. 분석한다. 교회의 제도 개혁을 위해서 분석하면 문제만 보인다. 하나 하나씩 분석해 보자...하나님을 하나 하나씩 분석해 보고 늙으신 우리 아버지를 놓고 하나 하나씩 분석해 보자. 우리 아버지는 이미 늙으셨어...이제 말이 너무 많으셔 (잔소리) 이제 힘이 붙이시는 것 같아. 눈도 잘 안보이시고 혈압도 있으시고...이렇게 분석하는 것이다.
  우리교회는 어떻고 저떻고 이렇게 분석을 하면 문제만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전도 예배 선교 봉사의 출발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을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우리가 어떤 인간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엡2 장에 보면 인간의 모습이 나온다.
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나,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던 나,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나이다.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는 나..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나이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희망이 안 보인다. 내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나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이 나의 모습이다. 이렇게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나이지만
   4절부터 반전이 나타난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탕자가 부럽지 않다. 죽을 수 밖에 없고 불순종의 영이 역사하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그 큰 사람으로 예수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말이다. 복음의 진수 아닌가?
   기독교의 출발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주께로부터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한다.
  예수 오래 믿는 사람들이 속는 것은 세상을 모르고 사람을 모른다. 목회를 오래 하다보면 사람을 모르게 된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만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너무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잘못과 우리 믿는자들이 느끼는 잘못의 양은 다르다. 우리는 입속에서 더러운 말 한마디만 나와서 내가 엄청나게 하나님께 잘못을 했구나 라고 고백을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욕하다가도 또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추어 내는 것 조차 우리는 하나님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침묵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배째라는 식으로 덤빈다. 우리는 물총가지고 싸우는데 거기는 미사일 가지고 달려드니까 우리가 싸우면 늘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싸우지 않는 방법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우리교회도 개척교회 수준인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정말 교회에 많이 왔었다. 술먹고 들어온 사람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 칼 가지고, 활가지고 와서 목사 죽인다고 떠드는 사람들...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이곳 만수동은 인천시가 개발이 되면서 송현동철거민들이 이곳에 살았다. 그래서 저 위에는 맨날 싸우고 경찰들이 오고 술먹고 임신한 여자도 발로 차고...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들리는 것은 매일 싸우는 소리들뿐이다. 고고한 학처럼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특별히 개척교회에는 정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 큰 교회가면 목사님 만나기도 힘드니까 조그만 개척교회에 가면 기도를 받을 수 있겠지? 그래서 많은 문제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기도원이나 개척교회로 몰려들고 기도를 받으려고 한다.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가정적인 문제 ......문제 있는 사람들이 개척교회이다.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인간은 지독히 악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선을 베풀어도 악으로 갚고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뒤집고...이럴 때 느끼는 것이 절망이다.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절망만 할 것인가? 이럴 때 일수록 더욱 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된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가니까 그 차이들이 메꾸어진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될 때 역사가 나타난다. 교회가 성장하고 커지면 양질의 사람들이 많아진다. 규모가 커지면 기본적인 양식과 질서의식 희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늘 자기 멋대로 살던 사람들이 조직생활에 적응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희생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조직생활에 매인 사람들이 적응된 적당주의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우리교회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교회는 중형교회인 것 같은데 우리의 신앙적인 성숙도는 어떤가? 고린도 교회 사람들의 수준인가? 아니면 데살로니가 교회나 베뢰아 교인들의 수준인가? 고린도 교회는 맨날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뭉치는 교회였다. 그래서 바울파 인 사람 여기 붙어라. 아볼로가 좋은 사람 여기 붙어라 하면서 시기하고 ..싸우고 분쟁이 있는 교회 였다. 말씀이 들어가지 않은 교인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기도는 큰 소리로 한다. 방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 능력을 행하는 은사 이런 것은 잔뜩 받은 것 같은데 말씀이 없어서 울리는 꽹가리 수준으로 나가간다. 그런데 데살로니가나 뵈뢰아는 아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데살로니가 교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사도행전 17;1-5절까지 나온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강론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강론함을 듣고 변화된 것이 무엇인가? 덷전 1:3-8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것이 없노라"
   베뢰아 교인들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인가?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 신사적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어떠 했는가?
고전 1: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고전 3:1-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4:18 "어떤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
고전 4: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고전 5;1-2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5:11-13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6;1 "너희 중에 누가 다른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
6:7-10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9:1-4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10:5-12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1;19-22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이는 시장하고 어떤이는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
14:9-12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19-20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33-35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40 절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우리가 이런 모습에서 탈피해야 하지 않는가? 오늘 본문도 이와 같은 말씀의 배경에서 이해하면 된다. 분별치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디어야 한다. 부족한 모습 그대로...
    마이클 야콘 엘리  "뒤어킨 영성" 지저분한 영성..교회는 완벽한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헝클어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내가 나의 모습을 보더라도 일관성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다. 어떤 때는 거룩하게 어떤 때는 악한 모습이 들어난다. 이게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다. 본질적으로 진노의 자식이다. 생긴 것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맨날 나오는 말들이 남 욕하고 이간질 하고 미혹하게 하는 영으로 사람들을 넘어지게 한다고 생각해 보라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은 다 문제가 있다. 노아 같은 사람을 보면 사람들이 노아보고 120년 간 미쳤다한다. 미친 영감이라는 소리를 120년간 들으면서 살았다. 그는 당대의 의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술과의 싸움에서 졌다. ....술 주정 하는 것 노아이다...인간의 추한 모습이다.
  다윗 하나님의 합한 사람이다. 다윗도 똑 같은 남자이다. 여자보고 매력도 느끼고 그래서 간음하고 살인도 한다. 엽기 다윗 아닌가? 아브라함 거짓말하고..솔로몬 외교정책 의지하고 부인 1000명..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우리와 똑같이 생활한 사람이다. 얼마나 오염이 되어있는가? 우리는 성찬에 참여를 해도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예수 믿었다고 죄짓지 않고 고고하게 살았는가? 아니다.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주님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 잘못된 길이라고 하면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바라보면서 그 거룩성을 느끼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탕자가 어떻게 아버지에게 돌아왔는가? 그가 사는 것은 여전히 탕자였다. 그러나 탕자의  확신은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돼지 우리에서도 네게는 아버지가 있구나 아버지 생각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아버지께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우리를 용납해 주시는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의인은 하나도 없다. 완벽한자가 있는가? 이제 이상한 것 가지고 질문 하지 말자.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알자. 이상한 것 가지고 말하기 말자.
   하나님 살아계신데 왜 하나님이 침묵하셨는가? 이런 것 가지고 따진다.
  요9장에 이사람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우리가 이것 정답 아는가? 왜 이 가정은 이것 때문에 이렇게 힘든가? 우리는 항상 죄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다 아는가?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 이것이 죄 때문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장애인 가족을 둔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하면서 사는가? 서로 위하면서 사는 가정들이 많은가?  어떤 가정은 건강한 사람만 있다. 그런데 맨날 싸운다. 부족함, 연약함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 부족한 것을 덮어주면 그것이 오히려 강점이 된다. 수치스런 아버지의 약점을 건드리는 함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자. 노아처럼 아버지가 약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 건딜면 하나님이 노하신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한 것 모세가 잘못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미리암이 건딘다. 그런데 문제는 여자를 취한 것 가지고 건딜지 않았다.
민수기 12:1-2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모세의 지도력을 가지고 문제 삼는다. 하나 꼬투리를 잡고 지도력의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너만 하나님 한테 말하냐 나도 말한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한 사람이다...그래서 결국 누구 편을 들어 주시는가? 모세의 편을 들어주신다.
   9장에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 사람의 죄가 누구 때문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바리새인은 소경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쳐주는 일이다. 김선일씨 왔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지금 죽었는데 할 수 있는 일 뒷북치지 말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퍼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는가? 초대교회에 왜 부흥이 일어났는지 어떤 사람이 조사를 했는데 이런 예화를 한다. 전염병이 돌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도망가는데 기독교인들만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는 것이다.
    겸손하게 매 순간 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야 한다. 모이면 기도 하고 예의 바르게 인사라고 그렇게 만이라도 하자는 것이다. 목회자가 충격 받는데 신실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평신도 보면 나도 저렇게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약함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나는 잘 모릅니다. 부족함이 많습니다. 하나도 전도 못해도 영혼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열매 없는 거하고 여러번 시도하고 열매 없는 것 하고는 다르다. 여러번 시도해보고 안되면 기도하자 옷을 찢으면서 기도하자는 것이다.
   완벽하라는 것이 아니라 히12:2 절의 믿음의 주요 온전히 주님 바라보자는 것이다. 평탄함 속에만 있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갈등속에서 주님을 붙잡는 것이 신앙이다. 아무 문제없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두렵습니다. 아픔니다. 나 연약합니다. 나 이끌어 달라고 하는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쓰러져도 주님 날 받아 주십시오 탕자가 변화되어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아버지 품에 안기고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나를 지금까지 붙들어 주는 것이 있다. 어떤 나에게 기도를 해 주었는데 세계를 위해서 사용되어질 것이다. 그 사람의 축복이 나를 지금 붙들어 주었다. 우리도 다 축복을 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부족하다고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아 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평강을 하는 것이다. 축복하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사역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긍휼, 나자신으로부터 출발하면 문제가 보인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찾고 출발을 하자. 인간이 아무리 썩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바라보자. 암담한 현장 바라보지 말고 내 눈을 들어서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흘러넘치는 사람을 바라보아야 한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골리앗만 바라보니까 골리앗이 크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 바라보니까 작아 보이는 것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품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축복을 비는 것이다. 하나님의 충성과 충성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갈라디아서 6:1-10)
(43)인생은 나그네 길-사라의 죽음(창2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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