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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04-07-05 20:42:28, Hit : 2436, Vote : 488
 냉수 한잔의 친절(창세기 24장 15-33)


냉수 한잔의 친절
창세기 24장 15-33                   (2004. 6. 27 주일오전 9시)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삭의 장가드는 이야기 중에서 아브라함과 늙은 종과의 서약체결식을 공부했다. 이삭이 장가드는 문제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요란을 떤다. 그러면서 아주 이상한 서약식을 하는데 주인의 다리 밑에 손을 넣고 늙은 종은 서약식을 한다. 그 서약식을 통해서 중대한 사명을 맡게 된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약속의 아들 이삭의 신부감 골라오기이다.
   아브라함은 삶의 원칙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가나안을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 내 아들이삭도 가나안 땅을 떠나지 않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내 며느리감은 내 고향에서 데리고 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명제를 다 소화시킬 수는 없다. 가나안 땅을 떠나지 않기 위해서는 가나안에 사는 여자들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며느리로 삼아야 하고 또한 고향 땅에서 신부감을 데리고 오려면은 가나안을 떠나야만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명제를 다 만족시킬 만한 방법, 혹은 그 대안은 아브라함 대신 이삭의 신부감을 데려오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대안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여자를 고향 땅에서 데리고 왔는데 아브라함의 마음이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혹은 이 먼거리를 따라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참 다행스러운 것은 아브라함이 종에게 제시한 신부감의 조건은 딱 한가지이다. 그것은 고향여자이다. 그 밖의 것은 전혀 말을 하고 있지 않는다. 어떤 조건도 없다. 생김새나 겉모양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우리는 왜 아브라함이 다른 조건보다도 고향 여자를 며느릿감으로 생각했을까 의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 조건은 알고 보면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이다. 아브라함이 원했던 것은 아브라함이 오래 전부터 걸어 왔던 그 길을 고스란히 뒤 밟아 걸어 올 수 있는 여인을 조건으로 찾고 있었던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뒤를 걸어 올 수 있는 사람, 그런 여자가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 온 것을 뒤로 한 채 자신이 갈바를 알지 못한 채 오직 하나님께 매달리어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갔던 것처럼 자기를 포기하고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그 길을 따로 올 수 있는 여자를 며느리로 삼고자 했다.
   이일을 감당하는 사람은 늙은 종이다. 아브라함의 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아브라함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자신의 눈을 가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 아내 같은 사람이 아브라함 곁에는 있었다. 모든 것을 믿고 맡기고 신뢰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집에 살아도 한 이불을 덮고 자고 한 교회에 다녀도 다른 방향을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우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야 한다.
   사람은 이렇게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아야 한다. 그 종은 기도의 사람이었고 자기의 맡겨진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33절에도 나오지만 리브가의 오빠인 라반이 일행들에게 식사를 대접해도 자신이 온 목적을 설명한 후에야 밥을 먹겠다고 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내 삶이 있는 자리에서 내게 주신 분량만큼 순종을 해야 한다. 내 자리에서 성실하게 하면 된다. 요셉이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했던 것처럼.... 한판의 역전승으로 아브라함의 신뢰를 얻은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쌓아온 신뢰의 벽이다. 이 사람이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사람은 한가지를 보면 10가지를 안다고 말을 했다. 한걸음 한걸음씩 그리고 천천히 내 자리만큼은 변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성가대를 하면 그 자리에서 내가 하는 일에 성실성을 보이면 된다. 세종문화회관에서 한번 연주회를 할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리허설을 하는가? 일반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도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연습과 리허설을 통해서 이런 일들을 감당하는가?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 집사람 같은 경우는 교사를 할 때 9년 동안 한번도 결석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인 줄 알았다. 무슨 일이 없어서 빠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주일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모든 것보다 항상 먼저 였기 때문에 그렇게 빠지지 않은 것이다. 프로패셔날한 교인이 되자는 것이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이런것의 문제가 아니다. 하기 싫어도 자기를 관리 해가면서 일하는 사람들이 프로아닌가? 매사에 프로정신을 가지고 살자.
   자신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하면 된다. 자기자리는 잘 지키지 않으면서 매일 교회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자리에서 먼저 충성을 하면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사용 하실지 모른다. 작은 일에 충성을 해 보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런 것을 통해서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먹는 것보다 우선이 자신의 일에 대한 사명이었다. 주인이 자기에게 맡긴 것이 더 중요하게 생각을 했다. 배가 고파서 눈이 핑핑 돌아도 자신이 온 목적을 설명을 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예배의 회복은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예배의 회복을 우리의 삶 가운데 우선 순위가 되자. 내가 예배를 통하여 변화되고 변화된 내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급한 일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먼저 생각하자는 것이다. 당장 지금 배가 고프니까 허기지니까 급한 것은 밥을 먹는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일은 밥을 먹는 일보다는 자신의 사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학교에서 일하는 분을 우리는 예전에 소사 아저씨라고 불렀다. 이 아저씨의 손길이 닿은 것은 무엇이든지 신비하게 새것으로 변했다. 큰일이 아니라 소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시는데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이다. 우리의 일이 무엇인지 망각하지 말자. 교회의 존재 목적은 전도이다. 안에서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나가지 말고 눈을 돌려 세상을 보자 그리고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깨닫자.
  대부분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깨닫지 못한다. 자기 사명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 이제 급한 일에 매달리지 말고 중요한 일을 깊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자 그것이 성공자의 모습이다.
   이 엘리에셀은 협상의 전문가 였던 것 같다. 일단 말을 잘한 것 같다. 우리는 그래서 설명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베드로와 할례자들의 논쟁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행 10장에서 베드로가 로마의 백부장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성령을 받은 것을 보았다. 제일 처음으로 이방인의 집에 구원이 임한 것이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그런데 11장에 보니까 할례자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들고 나온다. 사도행전 11장1절을 보니까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무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지금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가? 한 영혼이 구원을 받은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비켜가면서 이방인의 집에 가서 그들과 밥 먹었지...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런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치 이것은 오병이어의 사건 후에 그 의미는 생각하지 않고 그 때 떡 남았던 것 누가 가져갔지? 이런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이 사람들이 악하고 선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수준의 문제이다. 자신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똑똑한척 이야기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낮은 수준의 비판이다. 원래 수준이 낮은 사람은 수준이 높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작은 그릇이 큰 그릇을 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항상 하수는 뒷 통수만 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판단하거나 조언을 하는 것은 내가 그 사람보다 더 크다는 확신이 들 때 하는 것이 좋다. 내가 그 사람보다 크지 않을 때 계속해서 얘기를 하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비난이 되고 시기심의 표현이 될 때가 많다. 그리고 나중에 참 부끄러워진다. 무지의 발로라고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조언하고자 할 때는 현격하게 경험이 많거나 능력이 훨씬 탁월하거나 수준이 훨씬 높을 때 그럴 때에 자신의 생각을 나누어주면 진짜로 도움이 된다.
   이런 상황 가운데 베드로는 이런 무식한 놈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네 이렇게 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한다. “Peter began and explained everything to them precisely as it had happened”
   아브라함의 늙은 종도 밥상을 받아 놓고 자신이 여기까지 온 모든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런 긴 설명으로 인해서 창세기 24장이 길어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종이 그간의 과정을 다 설명했더니 라반이 이렇게 말을 한다. 50절에 보면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이렇게 진실을 말하니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좋은 사람을 만났다. 이런 사람은 길리워진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길리워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군대에서 남자가 다시 남자로 태어난다. 훈련을 통하여....우리 역시 자꾸 와서 듣고 훈련을 받으면 된다. 학자의 귀를 가지고 들어야만 한다. 아침마다 우리를 깨닫게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람을 세우는 인사에 이런 원칙이 있다고 한다.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면 채용하지 말라, 채용했으면 신뢰하라". 그런데 인사에 있어서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능력이 없는 사람은 채용하지 말라, 채용했으면 가르치고 훈련시켜 능력을 배가 시키라" 이런 사람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라 오랜 시간 훈련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같은 방향을 바라본 사람이 된 것이다.
   이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었는데 다시 앞으로 돌아가면 딸을 만나기 전에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늙은 종은 두려운 마음으로 기도한다. 기도중에 여인을 찾는다. 엄숙한 서약식을 통해서 그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여자를 찾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는 하나님께 맡긴다. 기도 중에 찾은 여인의 조건이라는 것은 마음씨이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우물가였다.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때 이 종은 리브가에게 물을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낯선 나그네에게 물을 준다. 여기에서 놀라운 것은 물을 달라고 하는 그 엘리에셀이란 사람에게만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엘리에셀이 데리고온 약대에게까지 물을 먹이려고 하는 것이다.
   엘리에셀이라는 종은 리브가에게 약대까지 물을 달라고 그렇게 부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인은 알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시키지 않은 것 까지 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전혀 주저함이 없이 자신의 일을 한다. 더 깊은 것들을 생각한다. 약대의 목마름까지 생각을 한다. 나그네의 초라한 모습의 이 노인에게 경어를 써 가면 이야기한다. 말소리가 상스럽지 않다. 말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음 속에 늘 더러운것들이 있으면 더러운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뒷통수 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인격적인 것이다. 요즘 인터넷 같은데 보면 아무렇게나 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누군지 알지 못하니까 막 자신의 생각을 상스러운 욕을 해대가면서 글을 써나간다. 한번 그렇게 올려진 글들은 다시 리콜 할 수 없다. 잘못된 보도 역시 마찬가지로 리콜 할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피해를 주는지 아는가? 그래서 자신이 쓴 글이라고 해도 여러번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그래서 정말로 이제는 이 글을 올려야겠다고 생각 할 때 올려야 한다. 그래서 연애편지는 밤에 쓰지만 일반 편지는 밤에 쓰면 안 된다. 밤에는 사람의 감정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판단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곱게 자란 리브가의 입에서 '주여'라는 말을 한다. 리브가 앞에 나타난 이 남자를 리브가가는 모르고 있다. 도대체 이 남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자기에게 접근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나그네를 대접하는 리브가의 마음은 선한 의도이다.  이 여인의 행동은 평소에도 다른 사람들을 접대하기를 좋아하고 또 서비스 정신이 아주 투철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아주 좋아하는 그런 성향의 소유자였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어쩌다 나타난 어색한 모습이 아니라 몸에 배어있는 친절함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사막은 아니라 할지라도 물이 귀한 지역이다. 그 깊은 우물에 내려가서 물을 끙끙대며 어렵게 길어왔는데 이것을 그냥 그 사람에게 쏟아 부어주는 것이다. 그것도 10마리에게 ..
   나그네에게 친절하고 기르는 짐승에게 자비로우며 자신의 것을 희생해서 남에게 주기를 좋아하는 성품의 여인을 찾은 것이다.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는 여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낙타 한 마리에게 물을 먹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10마리의 낙타에게 마실 물을 주다니 대략 시간적으로 낙타 한 마리는 10분정도 물을 마신다고 한다. 10마리가 10분정도 마실 물의 분량은 엄청난 물이다.
  목마른 나그네게 물 한 모금의 정성으로 대접하는 여인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자이다. 그러면 한 가정의 족장의 아내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낙타에게 물 먹이는 여인 가축을 돌볼 줄 아는 여인이다. 자기 살림 망가뜨리지 않고 잘 살림을 하는 여인은 충분히 자격이 된다는 말이다.
   잠언 31:11-30 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면 "남편은 진심으로 아내를 믿으며 가난을 모르고 산다. 그의 아내는 살아 있는 동안, 오직 선행으로 남편을 도우며, 해를 입히는 일이 없다. 양털과 삼을 구해다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일하기를 즐거워한다. 또한 상인의 배와 같이, 먼 곳에서 먹을거리를 구하여 오기도 한다. 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서 식구들에게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여종들에게는 일을 정하여 맡긴다. 밭을 살 때에는 잘 살펴본 다음에 사들이고, 또 자기가 직접 번 돈으로 포도원도 사서 가꾼다. 허리를 단단히 동여매고, 억센 팔로 일을 한다. 사업이 잘 되어가는 것을 알고, 밤에도 등불을 끄지 않는다. 한 손으로는 물레질을 하고, 다른 손으로는 실을 탄다. 한 손은 펴서 가난한 사람을 돕고, 다른 손은 펴서 궁핍한 사람을 돕는다. 온 식구를 홍색 옷으로 따스하게 입히니, 눈이 와도 식구들 때문에 걱정하는 일이 없다. 손수 자기의 이부자리를 만들고, 고운 모시 옷과 자주색 옷을 지어 입는다. 남편은 마을 원로들과 함께 마을회관을 드나들며,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의 아내는 모시로 옷을 지어 팔고, 띠를 만들어 상인에게 넘긴다. 자신감과 위엄이 몸에 배어 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입만 열면 지혜가 저절로 나오고, 혀만 움직이면 상냥한 교훈이 쏟아져 나온다. 집안 일을 두루 살펴보고, 일하지 않고 얻은 양식은 먹는 법이 없다. 자식들도 모두 일어나서, 어머니 업적을 찬양하고 남편도 아내를 칭찬하여 이르기를 "덕을 끼치는 여자들은 많이 있으나, 당신이 모든 여자 가운데 으뜸이오" 한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는다."
  지금 그 종이 생각하고 바라던 여인이 온 것이다. 기도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한 처녀가 우물가에 나타난 것이다. 고마우신 하나님이시다. 아무리 빨리 기도를 응답해 주셔도 이렇게 빨리 응답해 주시다니?
  노인은 말없이 그 여인이 하는 일을 보고 있었다. 두달 이상 아주 힘들게 헤브론에서 아브라함의 친척이 사는 동네까지 왔는데 일이 쉽게 풀려나간 것이다.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묵묵히 주목했다. 너무 감사한 나머지 과분한 선물을 주는데 여러분, 22절에 보면 "약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중 금고리 한개와 열 세겔 중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한 그릇의 물에 감격을 한 것이다. 자기의 은,금 패물을 아가씨에게 그냥 주는 것이다. 나중에는 자기가 가지고 온 모든 것들을 다 준다.
   자기가 나그네에게 물 한잔 대접한 것은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보물을 받고 있다. 냉수 한잔의 친절이 얼마나 큰가? 냉수 한잔의 친절이 냉수 한잔의 기적이다.
   마음에 남는 이야기 "사랑이 길을 밝힌다"라는 책에 우유 한잔의 친절이라는 내용이 있다. 어느날 가난한 청년이 학교 수업료를 벌기 위해서 물건을 팔러 다녔는데 잘 팔리지도 않고 허기가 져서 어느 집에 들어서 음식을 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했는데 그 집에서 예쁜 아가씨가 나왔다. 그래서 창피한 나머지 음식을 구걸할 용기가 사라져서 물 한잔을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 여자는 그가 배가 고픈 것을 알고 물이 아닌 우유 한잔을 가득 담아서 그에게 주었다. 그 청년은 주머니를 뒤져보니까 동전하나가 있어서 우유값을 지불 할려고 했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주실 필요가 없어요 제 엄마는 친절을 베푸는 대가는 절대 받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거든요" 이 일로 인해서 우유 한잔으로 새롭게 용기를 얻어서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다. 10년이 흐른 후 이 아가씨가 아주 희귀한 질병에 걸려 위독하게 되어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이 병의 전문가였던 하워드 켈리 박사는 그녀의 주소를 보고 그녀가 나을 수 있도록 정성껏 수술도 하고 간호를 해 주어서 병이 다 나왔다. 그녀에게 걱정거리는 입원비이다. 청구서를 받아 보고 어마어마한 병원비에 깜짝 놀랐는데 그 청구서 밑에 이런 글이 써져 있었다. "우유 한잔으로 완났되었음 - 하워드 켈리 박사"
그때 그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사랑이 인간의 가슴과 손을 통해 나타나는 군요"
   우리는 영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물 한잔의 친절을 통해서 리브가는 열국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며느리 그리고 이삭의 아내가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씀을 전하겠다. 다음 시간에는 늙은 종과 라반과의 대화와 리브가와 이삭이 만나는 장면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눌 것이다.





성공은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다.
(44)이삭 장가들이기(1)(창 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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