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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일(2016-02-28 09:47:00, Hit : 1510, Vote : 416
 '말’이 ‘칼’처럼 아프다. (2016년 2월 22일)


‘말’이 ‘칼’처럼 아프다. (2016년 2월 22일)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모래네 시장을 산책한다.
이것저것 볼거리도 먹거리도 많다.
주머니에 천 원짜리 몇 장만 넣고 가도
뱃속까지 든든해지는 것 같다.

모래네 시장까지 가는 길에 Pet 스토어가 있다.
간판이 “뉘 집 갠지 멋 깔나네”이다.  
“멋 깔” 이 아니라 “맛 깔” 이라고 쓰면 보신탕 집인데...

어떤 목사님의 설교 중에
교회 건축을 하면서 “빚”을 많이져서
“빚”진 목사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빚”진 목사가 아니라
“빛”된 목사가 되고 싶다라는 말을 들었다.
“빛”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상황이라도
받침 하나만 바꾸면 “빚”은 “빛”이 된다.

“나”에다가 ‘ㅁ’을 아래에 받치면 “남”이 된다.
“나”와 “남” 은 전혀 다른 뜻이다.
“나” 에다가 조그만 상자 하나 올려놓은 것이 “남”이다.
그래서 항상 “나”는 “나” 보다
조금 더 높아 보이는 “남”을 부러워하면서 산다.
그런데 “남”이 “나”를 바라볼 때도 같은 생각 일 것이다.
‘남’을 전혀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둘 이상이 모인 새로운 ‘나’는 ‘우리’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우리’가 되면
목소리도 커지고 용기도 생긴다.
그런데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목소리를 조금 낮춰야만 ‘우리’소리가 들린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남”의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고
“나”의 목소리로 “남”을 아프게 한다.

우리나라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말 잘하자는 뜻이다.
이제는 말로 눈물을 흘리게 하지 말자.
‘말’이 ‘칼’처럼 아프다.  (박성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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